문화의 패턴 까치글방 5
루스 베네딕트 지음, 김열규 옮김 / 까치 / 199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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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상대성과 보편성에 대한 해묵은 논쟁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듯 하다. 놀랍게도 그 논쟁은 문화인류학이나 민족학 내에서 전개되기 보다, 인문과학 대 자연과학(진화심리학, 진화생물학)의 대결양상으로 발전하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본성을 탁월하게 파헤친 '매트 리들리'의 '이타적 유전자'에 의하면, 문화인류학자들은 정작으로 중대한 인간문화의 보편적 양상을 외면한다고 비판한다. 리들리는 '사냥하는 남편과 채집하는 아내'야말로 인간의 문화는 물론이고 인간의 인간다운 길을 개척한 시원이라 강조한다. 리들리의 책에 매료되었을 때, 나는 그의 주장이 정말 참신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 책 '루스 베네딕트'의 '문화의 패턴'을 읽다 보면, 인간의 문화에 과연 보편성의 여지가 들어설 곳이 있겠나하는 회의가 밀려 든다. 탁월한 과학저널리스트인 '매트 리들리'도 어찌보면 문화인류학에 문외한이었던듯 하다. '루스 베네딕트'는 '푸에블로족' '도부족' '콰키우틀족'의 문화를 비교대조하며, 인간의 문화가 어떻게 그처럼 극적으로 분기해 나갈 수 있었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풀고자 한다.

'루스 베네딕트'는 '푸에블로족'을 살펴보기에 앞서 '아폴로형 문화'와 '디오니소스형 문화'를 규정한다. 그녀에 의하면 전자는 합리성을 근간으로 형성된 문화이고, 후자는 환각상태 등의 무의식적 비이성적 요소를 미덕으로 삼는 문화라 규정될 수 있다. '푸에블로족'은 그나마 현재 인간의 상과 가장 유사한 '아폴로형 종족'이라 할 수 있다. 푸에블로족의 주변문화가 대부분 디오니소스형이란 사실을 감안하면 이는 매우 놀라운 것이다.

'도부족'은 '주술'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종족처럼 보인다. 그들은 주술을 재산처럼 상속하며, 일상의 모든 일에 주술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믿는다. 주술 소유자들이 자신의 재산에 주술을 걸어 도둑을 막는가하면, 주술을 풀어 그것을 훔쳐가려는 이들도 있다. 정말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방어와 도둑질 사이에 존재하는 사고의 형태만은 약간이나마 합리적 게임으로 보인다. 놀랍게도 그들은 풍작을 몹시 두려워 한다. 왜냐하면 풍작은 누군가가 작물에 주술을 걸어, 작물이 스스로 밭을 옮기지 않고선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콰키우틀족'의 문화는 인간의 이성으론 도저히 납득하기 힘들다. 자신의 우위를 과시하여 타인을 모욕하려는 그들의 기행은 재산을 모조리 불사르는 축제에서 절정에 달한다. 초대받은 손님은 자신이 주관하는 축제에서 더 많은 재산을 불살라야 이전의 모욕을 앙갚음 할 수 있다. 그러한 소모전은 둘 중 누군가의 재산이 탕진될 때까지 지속된다. 그야말로 악순환이다! 그러나 승리자는 대부분의 재산을 탕진했음에도 불구하고 더 높아진 명예로서 다시 재산을 축적할 수 있다.

이들 세 부족의 문화는 현대 서구적 관점에서 볼 때 너무도 상식을 벗어나 있다. 더 놀라운 것은 그들의 문화가 지향하는 목적보다, 수단을 - 그것이 얼마나 극단적이고 비상식적인가에 관계없이 - 통해 해소하는 방식에 더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합리성이 결여된 것으로 보이는 그들 부족에서 합리성의 유일한 흔적은 문화의 소멸을 막기 위해 극단으로 치닫기 전 일종의 중도적 감각을 회복한다는 점이다. 아니 어쩌면 중용을 유지하지 못한 수많은 문화들이 소멸되었을지 모른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문화의 무한한 다양성과 상대성에 비해, 보편성의 흔적은 들어설 여지가 없어 보인다. 문화의 보편성이란 것도 어찌보면 그 외형이나 형식이 아니라, 문화를 추동해 나가는 내재적 원리속에서 발견될 수 있을 것 같다. 즉 문화가 어떻게 통합되고 어떠한 유형으로 정립돼가며 어떠한 특성에 가치를 부여해 극단으로 치닫는지 등, 문화일반의 발전양상이 '문화적 보편성'의 의미에 가장 근접한 규정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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