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제 이산의 책 16
조너선 D. 스펜스 지음, 이준갑 옮김 / 이산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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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너선 스펜스'의 책을 접할 때마다 항상 기대가 앞선다. 그의 작품은 어느 것을 막론하고 참신한 방법과 새로운 실험이 시도되기 때문이다. <천안문>에서 스펜스는 역사와 문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심미안으로 찬사를 받았고, <마테오리치 ; 기억의 궁전>에서는 전기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했다는 - 마테오리치의 기억의 세계에 배치된 이미지에 따라 리치가 살던 시공간의 세계를 재구성한 방식 - 점에서 충격을 주었다.

그는 탁월한 실험정신을 발휘해 역사의 대중화에 기여함으로써, 수많은 문외한들이 아름다운 역사세계를 엿볼 수 있도록 길을 터주었다. 또한 그는 끊임없는 영감을 불러 일으킴으로써 직업적 역사가들의 분발을 자극하기도 한다. 그의 모든 작품이 언제나 다양한 실험과 영감의 원천이었으므로, 이 책 '강희제'에 대한 나의 기대는 클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을 읽고 한참이 지난 지금도, 강희제의 인자한 모습과 위엄있는 육성이 또렷이 느껴질 정도로 그는 바로 내 앞에 있는 듯 하다. 도대체 역사의 시인, 스펜스가 어떤 농간을 부렸길래! 사실 강희제의 삶을 재구성한 이번 실험에서, 스펜스는 강희제가 독자들에게 직접 회고담을 들려주는 식의 '자서전적 전기'의 형식을 시도하였다. 혹 독자들은 역사학에서 시도된 '일인칭 주인공 시점'에 의해, 역사의 객관성이 훼손되지 않을까 우려할런지 모른다. 하지만 스펜스는 이미 중국사에 정통했을 뿐만 아니라 풍부한 사료를 섭렵함으로써, 역사적 객관성과 문학적 심미안이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 있는 셈이다.

사실 전기에서의 일인칭 시점은 주인공의 내면세계를 묘사하는데 효과적인 방법이다. 마치 주인공의 인생 역정을 자신이 직접 고백하는 효과를 자아내기 때문이다. 스펜스가 이 책에서 왜 그러한 실험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것은 중국의 유서깊은 관료체제 하에서 거의 모든 황제들이 인격체라기 보다 제도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데 반해, 강희제는 끊임없이 번민하는 너무도 인간적인 자취를 남겼기 때문이다. 사실 황제로서의 강희제라기 보다, 인간으로서 강희제의 개성을 생생히 드러낸 스펜스의 기교야말로 이 책의 최대 묘미가 아닐까 한다.

따라서 우리는 그의 내면세계에 더 가까이 접근함으로써, 그가 인자하고 자애롭고 합리적 식견을 가진 항상 고뇌하는 한 인간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특히 황위 계승을 둘러싸고 드라마틱하게 돌아가는 베이징의 정치세계 속에서 분노하고 번민하는 강희제의 모습은 우리 보통사람들의 감정과 다를 바 없다. 강희제 자신이 말하는 그의 인생역정에 대한 이야기가 우리에게 시적이고 문학적이며 드라마틱하게 와 닿지만, 그것은 스펜스의 문학적 심미안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한 것이었음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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