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종말
존 호건 / 까치 / 1997년 6월
평점 :
절판


도발적인 제목답게 참신한 주제로 접근한 '존 호건'의 '과학의 종말'은 내게 충격 그 자체였다. '과연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지식의 한계란게 존재할까?' 책을 사랑하고 끊임없이 지식을 추구해 온 사람이라면, 철학적 인식론의 냄새를 다분히 풍기는 이 의문으로 한 번쯤 고민했을 법하다. 과학저널리스트인 '존 호건'이 이 문제의 해결에 도전하였다. 그는 이름만 들어도 위압감이 느껴지는 세계적 석학들을 인터뷰하며 지식의 한계에 대한 그들의 의견을 듣는다.

이 엄청난 프로젝트에 앞서, 호건은 과학적 지식의 윤곽과 경계를 명확히 설정하고자 한다. 소위 '과학의 전도사'들이 과학과 사이비과학으로 규정했던 이분법적 도식을 극복하고, 그는 이 사이에 '반어적 과학'이란 것을 위치시킨다. 반어적 과학이란 기존 과학의 범주에 포함돼 있었던 '우주론' '카오스 이론' '초끈이론' '인공지능이론' 따위로서, 경험적으로 입증 불가능한 범주에 속한 과학영역이다. 이들은 철학적 심오성을 추구하거나 이론적 심미성으로 치장되지만, 전통적 경험과학으로부터 멀어지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열렬한 반어적 과학의 추구자들 중에는 지식의 지평을 무한한 것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호건이 '참된 과학'으로 규정한 것은 경험적으로 입증가능하며 실용성을 띠는 교과서적인 과학이다. 호건이 보기에 대체로 환원주의적 입장을 고수했던 과학자들이 이 부류에 포함될 수 있다. 이들은 현대과학의 정신이랄 수 있는 실험주의에 투철하며, 전체적 윤곽보다 미세한 부분의 분석과 해체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생명현상이나 인간의 심리현상까지 물리화학적 메커니즘으로 밝혀내려 한다. 당연히 반어적 과학자들은 심오한 철학을 무기로 그들을 공격한다. '환원주의자'들이라 비난하며!

반어적 과학자들의 공격은 거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과학적 진리추구가 종말에 다다르고 있다는 환원주의자들의 설득력있는 전망까지 비판한다. '과학의 종말'이 가까워졌다는 그들의 전망은 너무도 놀라우며 비극적이다! 사실 인간이 추구해야될 지식이 바닥난다면, 인간에게 무슨 삶의 의미가 있겠는가? 자 그렇다면 그들이 주장하는 논의의 요지를 따라가 보자.

진화생물학계에서 다윈의 유력한 후계자라 할 수 있는 '리처드 도킨스'는 진화론이상으로 생물계를 설명할 수 있는 강력한 이론은 더이상 발견되지 않으리라 확신한다. 그에 의하면 생물계의 거시적 윤곽과 틀이 세워진 상태에서 이제 남은 일이라곤, 세세한 부분을 채워나가는 식의 납땜질(토머스 쿤에 의하면 퍼즐맞추기)이라는 것이다. 다수의 이론 물리학자들 역시 동일한 견해를 표명한다.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발견에 뒤이어 통일장이론이 정립된다면, 이론물리세계의 궁극적 지식이 완성된다는 식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 인류의 역사가 무한히 지속될 지라도 납땜질식 퍼즐맞추기는 바닥나지 않을 것이다! 진리추구의 종말이 가까워졌다고 생각하는 과학자들은 어찌보면 '대박 이론'을 노리는 원대한 야심가들이 아닐까?

그렇더라도 과학을 사랑하는 팬들에게 이는 정말 씁쓸할 소식이다. 빅매치가 사라진 시대를 사는 권투광들의 절망을 생각해 보라! 인류도 아마 그러한 허무감에 시달리지 않을까? 더 씁쓸한 전망은 환원주의적 과학을 대체할 강력한 패러다임이 현재로선 없다는 것이다. 만약 '케이오 플렉서티'가 진정한 과학 즉 경험적이고 실용적인 과학으로 '입증'된다면, 그것은 이미 환원주의에 다름아니다. 논리실증주의와 합리주의 그리고 경험주의까지 장착한 소위 참된 과학(환원주의)은 그런 점에서 종교보다 더 극악무도한 폭군일런지 모른다. 과학과 다른 패러다임이 과학의 틀내에서 효율적으로 판단된다면 그것은 과학에 다름아니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과학에 의해 배척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과학에 매료되고 그곳에서 탐닉하길 즐기는 내 자신을 보더라도, 그것이 종교보다 더 강한 흡인력을 지녔음은 자명해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중독도 더 강력하고 자극적인 지식을 필요로 하는데, 하물며 과학에 종말이 가까워졌다니 인류가 허무의 세계로 추락할 숙명적 존재는 아닐런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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