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와 상징 - 주술적-종교적 상징체계에 관한 시론 까치글방 137
미르치아 엘리아데 지음, 이재실 옮김 / 까치 / 199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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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 문화의 태동 이후 근대에 이르기까지, 인간이성의 절대성과 인간문화의 보편성은 의심의 여지없이 타당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20세기의 역사는 이에 대해 강력히 반발하면서, 특수하고 상대적이며 미시적인 주변상황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20세기에 등장한 이러한 인식의 전환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따라서 우리는 진리의 상대성을 수용하며, 인간문화양식의 특수성을 인정하고, 위로부터의 거시사보다 아래로부터의 미시사에 더 매력을 느낀다. 그야말로 우리들은 20세기의 그늘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의 전환에도 불구하고 '이미지와 상징'을 다루는 종교사가들은 여전히 인간에게는 보편적이며 절대적인 '그 무엇이 실존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에 의하면 우리가 사는 감각적 현상세계는 '실재하는 그 무엇'이 아니다. 실재하는 것은 시간과 공간의 영원성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고 보존되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이 형이상학적이긴 하나, 존재론적 관점에서 인간이 진정으로 추구해야할 '그 무엇'에 대해 시사하고 있다. 그 무엇이란 바로 '이미지와 상징' 같은 것이다.

이미지와 상징은 인류가 탄생한 이래 세계도처에 걸쳐 명맥을 유지해 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란 점에서 보편성을 지닌다. 하지만 이들이 진정으로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는 인간의 의식구조의 본질에 대해 말해줄 뿐만 아니라, 삶을 관조할 수 있는 철학을 부여하며, 세계도처의 인류가 교감하고 의식을 교류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주기 때문이다. 즉 인간이 정녕 추구해야 할 것에 대해 말해준다는 의미이다.

가령 상징의 보편성은 달의 형태변화로부터 순환의 이미지를 추출해내고, 조개로부터 여성 성기의 이미지를 얻으며, 물로부터 혼돈과 잠재성의 이미지를 생각하는 것과 유사한 것이다. 그것은 어느 지역 어느 시대의 특수한 산물이 아니라, 인류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이미지이다. 때문에 인류는 이러한 이미지를 주술적-종교적 의식에 활용함으로써 우주의 리듬을 회복하고, 영혼의 안식과 위안을 얻는 것이다.

미르치아 엘리아데는 바로 이 지점에서 '이미지와 상징'의 중대한 의의를 발견하고, 그 구체적 사례 및 의미와 역할에 대해 해명하고자 한다. 뿐만 아니라 엘리아데는 특수하고 구체적인 인간을 발견했다고 자부하는 서구인에 대해, 단순하고 삭막한 '지역주의자들'이라 비판한다. 그럼에도 그는 이미지와 상징이 시간적 공간적 경로를 통해 전파되었을 가능성 - 동시보편적으로 발생했다기 보다 - 즉 역사적 특수성을 굳이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미지와 상징'은 인간의 한계상황에 대한 인식을 반영하므로, 동일한 우주에 살고 있는 인류의 의식구조는 유사한 것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상징의 구조는 역사에 의해 새로운 의미가 덧붙여질 지라도, 불변하는 보편성을 지닌다고 단언할 수 있다. 가령 기독교는 기존 종교의 상징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지만, 근본적 변화는 아니었고 또한 상징의 보편성을 유지했기 때문에 세계적 종교로 성장했던 것이다.

인간은 비록 덧없이 짧은 생을 살다가는 존재이기에 어쩌면 실재하지 않는 그 무엇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류의 등장이래 면면히 이어져온 '이미지와 상징'은 보편적이며 실재하는 존재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시각은 다분히 철학적 존재론에 근거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그러나 덧없는 세상을 등지고 종교적 수행 속에서 위안을 찾는 사람들은 분명 우리에게 무언가를 시사해 주고 있다.

비록 우리는 인도의 수행자들처럼 이러한 철학을 극단까지 밀고 나갈 수는 없지만, 현실세계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그에 참여하는 동시에, 삶의 철학으로서 상징이 가진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삶은 더 의미있고 값진 무언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상징의 긍정적 기능에도 불구하고 우려되는 측면이 있다. 그것은 사이비 종교인들의 상징관이다. 그들은 상징의 의미를 깊게 음미하려 하지 않고, 곧이 곧대로 해석한다. 그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위험한 종교적 해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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