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 속: 종교의 본질 - 학민글밭 4
멀치아 엘리아데 지음 / 학민사 / 198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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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인들과 원시인들에 비해 현대인들은 어떤 점에서 우월하다고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 아마 많은 사람들은 현대인들이 소유한 '합리성'이라고 답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합리성으로 말미암아 우리 선조들은 무지몽매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고도의 과학을 발전시킴으로써 산업화에 성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 현대인은 고대의 종교적 인간이나 원시인들의 삶과 세계관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더 나아가 '합리성'으로 대표되는 우리 '인식의 틀'은 저들의 주술, 종교행위, 식인풍습에 대해 야만성과 미개함이라는 낙인을 찍는다. 그러나 야만적으로 느껴지는 그들의 삶과 세계관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런 삶의 방식을 우리 선조들이 포기했기에 현대인들은 진정한 자유를 상실하게 된 허무한 존재들이라 한다면 과연 지나친 억측일까?

이 책 '성과 속'의 저자인 탁월한 종교학자 '멀치아 엘리아데'는 이에 대해 단호히 거부하는 입장을 피력한다. 우리의 삶이 가진 근본적인 결함들을 그 근거로 내세우면서 말이다. 그렇다면 그는 어째서 현대인들의 삶이 원시인보다 못하다고 보았을까? 엘리아데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먼저 현대인들이 고대의 종교적 인간이나 원시인들과 어떻게 다른지 추적해 보자. 현대인들은 원시인들의 사회에서 볼 수 있는 성화된 삶과 종교적 세계관을 완전히 거부함으로써, 자신을 비극의 구렁텅이로 몰아 넣었다. 그들은 원시인들의 삶과 사고방식이 산업화와 기술발전에 장애가 된다는 신념아래, 과거의 원시적 삶을 포기하고 종교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산업화와 기술의 발전을 이루었지만, 더 커다란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 대가란 무엇일까? 먼저 현대인들의 합리적 세계관이 가진 모순부터 짚고 넘어가자. 우리들의 합리적 시각은 원시인들이 미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제공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일상 삶에 과거의 원시적 잔재가 남아 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이다. 그 사례들은 장례식 결혼식 입사식 집뜰이 집의 구조 등등 일일히 열거할 수도 없을 정도다.

이러한 과거의 유습을 우리가 늘상 지니고 있는 까닭은, 분명 그것도 효율적 측면이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그렇다면 원시적 종교적 잔재가 어째서 이로운 측면이 있다는 말인가? 이에 대해 엘리아데는 답한다. 원시인들은 현대인들이 불결하다고 느끼는 그들의 삶을 성화함으로써, 우주를 창조하는 신들의 작업에 동참할 뿐만 아니라, 이로부터 절대적 자유를 획득했다고 말이다.

그러나 현대인은 이 모두를 폐기한 대가로 점점 규제에 속박되고 위안을 얻지 못하는 허무한 존재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예를 들어 원시인들의 성행위는 풍요를 위한 신적 결합의 모방이었지만, 현대인들의 성행위는 은밀하고 규제가 따르는 것이 돼 버렸다.

그렇다면 현대인들에 무엇이 필요한가? 자유를 상실한 그들이 구제될 방법은 전혀 없는 것일까? 놀랍게도 엘리아데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원시인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열린 마음으로 세계에 대한 지평을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 즉 현대인들의 삶이 원시인들의 세계이자 신들의 창조행위와 마찬가지로, 우주적인 맥락으로 위치되기 위해 '상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그것은 현재의 삶을 포기하고 원시인들의 삶을 모방하기 보다, 원시인들의 삶을 이해하기 위한 정신적 지평의 확장을 뜻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현대인과 원시인 간의 화해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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