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의 악마들 - 중앙아시아 탐험의 역사
피터 홉커크 지음, 김영종 옮김 / 사계절 / 200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장안에서 출발해 돈황을 거쳐 파미르 고원을 넘었을, 이름없는 상인들의 이야기는 실크로드의 전설로 오랜 세월 동안 역사 속에 묻혀 있었다. 천년의 세월 동안 수북히 쌓인 모래 언덕 아래 잠들어 있었을 그들의 전설은 기억하기조차 막막한 감이 있다. 그것은 너무도 오랜 과거의 이야기라서 전설이나 신화의 영역에 머물렀을 뿐, 어느 누구도 실크로드에 찬란한 고대문명이 꽃을 피웠다는 사실에 내기를 걸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위대한 역사는 도박과도 같은 무모한 도전에 의해서 개척되지 않아 왔던가? 때마침 실크로드의 전설을 입증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도전했던 위대한 고고학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목숨을 건 고고학적 탐험은 세계에서 가장 험하다는 타클라마칸사막을 겨냥한 것이었다. 이들이 바로 자신의 운을 시험하기 위해 목숨을 담보로 내걸었던 실크로드의 개척자들이었다.

이 책 '실크로드의 악마들'은 타림분지의 고고학적 발굴과정을 자세히 소개함으로써, 실크로드 유적의 중요성을 환기시키는데 기여하였다. 실크로드가 동서 문명의 가교였다는 주장은 단지 소수학자들의 가설 정도에 머물러 왔는데, 그 발굴과정을 통해 명백히 입증되었다. 따라서 실크로드는 중앙아시아 유목민들의 이동경로에 지나지 않았다는 편견을 극복하고, 동서 문명이 교류하고 충돌한 세계사의 중핵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천 년의 세월 동안 모래 속에 묻혀 있었던 찬란한 고대의 도시들이 새로이 부활하게 된 것이다.

이 책 '실크로드의 악마들'은 실크로드의 고고학을 개척했던 위대한 탐험가들의 이야기이다. 저자 '피터 홉커크'는 마치 소설처럼 흥미롭게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그것은 저자 스스로 선문답과도 같은 수수께끼를 넌지시 던지며실마리를 추적해가는 방식이다. 이 이야기들이 논픽션이란 점으로 인해 독자들은 더더욱 이야기에 매혹될 수밖에 없다. 피터 홉커크는 탐험가들의 활약, 고고학적 발굴과정, 실크로드 유물의 세계사적 의의, 고고학적 발굴의 도덕적 평가 등에 이야기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그가 가장 주목하면서도 끝까지 판단을 유보한 것은 고고학적 발굴의 도덕성에 관한 대목이다. 그러한 행위가 과연 발굴인가 약탈인가의 문제는 당사국들의 관점에 따라 매우 상대적인 문제였다. 20세기 초 낙후한 국가였던 중국은 고고학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으며, 유럽의 고고학자들 역시 그러한 중요성을 중국에 인지시키려는 노력이 없었다.

오직 무차별적 발굴에만 몰입함으로써 유적을 황폐화시켰다는 사실은 그들 또한 도덕적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시사한다. 영국인 저자 피터 홉커크는 중도적인 입장에서 이 문제를 관망하고자 조심스런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대영제국 발물관에 소장된 실크로드의 유물을 변호하기 위해선지, 그러한 고고학적 발굴 방식의 합리성을 최대한 부각시킨다. 즉 당시의 중국이 고고학적 유물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으며, 이러한 이유로 무지 몽매한 농부들로부터 대부분의 유물이 파괴되버릴 운명에 처해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결과적으로 영국이나 독일 혹은 프랑스에 의한 실크로드의 유적 발굴에 의해 상당 수의 유물이 극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고, 충분히 연구됨으로써 실크로드의 역사가 복원될 수 있었다는 주장이다.

물론 이것은 '유물 보호'라는 가면을 쓴 속물적인 태도이자, 결과론을 중요시함으로써 고고학적 발굴의 도덕적 측면을 무시한 처사라 할 수 있다. 과연 중세 영국 수도원의 서고가 중국인들에 의해 약탈되었다면 그런 논리를 취할 수 있을 것인가? 저자는 이러한 비판에 직면할 처지를 감안하고 있는지 하나의 절충안을 제시한다. 그것은 타국에서 홀대받는 실크로드의 유적을 다시 중국에 반환하자는 입장으로, 중국은 환수된 자국의 유적에 더 많은 투자를 할 수 있으리란 소박한 희망이다. 이러한 비판의 여지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과거 제국주의가 자행했던 유적 약탈에 대해 그 당사국의 한 시민으로서 저자는 모국의 범죄행각을 반성 및 고발하며, 세계시민들에게 그 사실을 널리 환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