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문 이산의 책 8
조너선 스펜스 지음, 정영무 옮김 / 이산 / 1999년 2월
평점 :
품절


예일대학의 중국역사학 석좌교수인 '조너선 스펜스'는 한국에도 두터운 독자층을 가지고 있다. 그의 역작 '왕여인의 죽음' '현대중국을 찾아서' '칸의 제국' '마테오리치' '강희제' 등은 이미 중국학 고전의 반열에 올랐을 정도로 인기를 모은 바 있다. 그의 글이 한국에서도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만의 독특한 역사기술 방식에 기인한듯 싶다. 그것은 바로 역사와 문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역사학의 심미주의'를 추구하는 방식이다. 그의 어떤 저작보다도 이 책 '천안문'이 높이 평가받은 이유는 바로 그만의 심미주의적 역사학이 여기에서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스펜스가 당대의 역사적 사건들을 포착함에 있어, 주요 소재로 삼은 것은 중국의 역사와 아무런 관련이 없을 듯한 당대 작가들의 작품들이다. 이러한 작품들은 소설 시 수필 편지 비망록 비평일 수도 있지만, 주된 요소로서 시대상을 반영하는 리얼리즘적 요소를 갖추어야 한다. 그것은 자유주의적 혹은 부르죠아적 세계관을 반영하는 국민당 통치하 작가들의 작품일 수도, 혹은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을 추구하는 옌안 작가들의 작품일 수도 있다. 이데올로기적 대립을 보여온 현실 역사에서 반대진영 작가들의 활동은 결코 용납될 수 없었지만, 역사가로서 중립을 유지하는 스펜스의 영역엔 모든 진영의 작가들이 포괄되어 있다. 이 작품들에 스펜스의 감각적이고 심미적인 펜이 거쳐가면 시대상을 펼쳐주는 한 편의 극적인 파노라마이자, 감동적인 중국 근현대사가 재구성된다.

스펜스의 역사학은 매혹적인 연결고리를 가지고 마치 이야기처럼 연결되고 있다. 따라서 문학과 역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의 시도는 결코 지루한 법이 없지만, 문학이 가진 추상성에 의해 다소 어렵기도하고 모호하기도 하다. 그렇다고 이러한 역사적 방법론이 역사학의 문학화를 초래함으로써 역사를 속류화하거나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하지는 않을 것이다. 스펜스는 - 이 책을 집필할 당시 40대의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 방대한 중국 관련 자료를 섭렵하여 중국사의 시대적 흐름을 이미 통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적 배경을 바탕으로 그는 여러 작품들 속에서 중국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구절들을 감각적으로 포착해 낸다. 이 점이 바로 역사학자로서 스펜스만이 지닌 탁월한 문학적 심미안이다. 이 절묘한 기술이야말로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그만의 독창적이고 심미적인 세계가 아닐까 한다. 또한 그가 역사학자로서 높이 평가받는 것은 적당히 추상적이고 적당히 현실을 포착해 얼버무리는 문학 작가들과 달리, 방대한 자료를 섭렵한 지적 배경, 작품을 감정할 수 있는 탁월한 비평력, 감각적이고 심미적인 혜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 '천안문'은 중국 근현대사의 인상적인 장면을 포착하기 위해, 주요 등장인물로 캉유웨이 루쉰 딩링 량치차오 추진 원이둬 선충원 라오서 모택동 손문 장개석 등에 주목하고 있다. 중국을 뒤바꾼 혁명의 주역인 모택동 주은래 주덕 등도 여기에서 만은 조연에 지나지 않는다. 단지 그들의 비중은 중국사의 흐름을 원할히 서술할 수 있는 가교의 역할에 국한되고 있다. 그보다 루쉰 딩링 문일다 라오서 선충원의 문학작품에 초점을 맞춤으로서 그들의 문학이 보여주었던 리얼리즘 속에서 중국사의 흐름을 읽어 나간다. 따라서 스펜스는 현대의 중국이 자랑하는 사회주의 혁명의 역사 계급투쟁의 역사에 주안점을 두기보다, 국민당 통치하의 우익민족주의 세력과 옌안에 집결한 사회주의 세력 및 중도적인 역사관을 지향했던 모든 중국인들을 포용하고 있다. 정치를 주도한 소수인물 중심의 영웅주의적 역사인식을 뒤로 하고, 그들보다 덜 알려졌지만 그들만큼이나 역사의 진보에 기여했던 평범한 대중들의 삶을 포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이야말로 진정한 아래로부터의 역사학이며 지금의 역사가들이 지향해야할 이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역사와 문학 중국학에 관심있는 독자라면 반드시 읽어야할 작품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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