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당 조만식 회상록
고당기념사업회 / 조광출판인쇄주식회사 / 199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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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식처럼 일제와 영합하지 않고 끝까지 저항한 민족진영의 지도자는 흔치 않다. 인촌 김성수 등의 민족주의적 지도자들이 대다수 일제에 타협했으며, 이광수 모윤숙 노천명 등의 대다수 문인들이 친일행위를 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런 이유로 조만식과 김구를 비롯해 변절치 않고 일제에 항거한 지도자들의 이야기는 우리들의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다.

해방이 된 후, 조만식선생은 은거를 끝내고 북한정치의 전면에 나선다. 서울에서 여운형에 의해 결성된 건국준비위원회의 지부격으로 선생은 평남건국준비위원회를 결성하게 된다. 그러나 소련군이 북한에 진주하면서, 건국준비위원회는 인민위원회로 개편되고 민족주의계열이 우세를 점하였던 간부구성 역시 공산주의자와 민족주의자의 지분이 동등하게 배분된다. 소련은 조만식을 국가의 수반으로 염두에 두고 있었으나,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을 조만식이 반대하자 그를 정치무대에서 은퇴시킨다.

그후 조만식은 평양의 고려호텔 연금생활을 하게되었고, 한국전쟁중 유엔군의 진공시 도주하는 인민군에 의해 사살되었다 한다. 선생은 우익계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균형있는 정치가였다. 초기 김일성과 연합하는 등 부분적으로 사회주의적 개혁에 공감을 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모스크바 결정 소위 신탁통치를 반대했던 것은 그 자신의 견해가 아니었고, 민족주의계열의 대다수 공론이었기에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소련과 공산주의자들은 그가 민족주의 인사들을 설복시키길 원했지만, 조만식은 받아들이지 않았고, 끝내는 정치무대를 떠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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