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엄마 다산책방 청소년문학 9
스즈키 루리카 지음, 이소담 옮김 / 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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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혼자 나즈막히 불러봐도 뭉클해지는 이름, '엄마'. 금세 가슴 한 켠이 먹먹해지고, 머리 한 구석이 아련해지는 이름이다. 가족의 시작이자 끝인 엄마는 자식이 어디에 있건 함께 존재한다. 굳이 표현하지 않는 사랑이 더욱 세심한 배려이며, 거대한 희생이라는 것을 십대 소녀가 그린 이야기에서 일러 준다.


스즈키 루리카(鈴木るりか)의 <엄마의 엄마>는 '엄마', 그리고 '가족'에 대한 세 가지 에피소드로 엮여있다. 원제는 '태양은 외톨이(太陽はひとりぼっち)'다. 불행한 가족사, 종교성, 성 정체성 등 다소 무거운 주제임에도 재미있고도 경쾌하게 풀어냈다. 2003년 도쿄 출생의 현재 고등학생인 작가의 재능이 부러울 정도다.



누가 봐도 씩씩하고 밝은 중학생 소녀 하나미를 중심으로 '태양은 외톨이', '신이시여, 헬프', '오 마이 브라더' 등 세 개의 단편이 이어진다. 풍족하진 않아도 평화롭던 모녀 앞에 또 한 명의 가족이 느닷없이 찾아든다. 하나미가 막연히 꿈꿔온 '반대의 삶'에서의 '할머니'와는 성격이나 행동이 거리가 먼 사람. 죽은 줄로 알았던 '엄마의 엄마', 즉 하나미의 외할머니다. 갑자기 한지붕아래 모이게 된 세 모녀가 주고 받는 대화에서 그들이 간직하고 있는 아픔의 깊이와 사랑의 크기가 가늠된다.


"아주 가끔은, 예를 들어서 해 질 무렵에 강변을 따라 걷다 보면 무심코 '엄마'하고 중얼거릴 때가 있어. 그냥 '엄마'라고 말하면 마음이 촉촉해져서 울고 싶어지더라. '엄마'는 참 대단하고 좋다고 생각했어...(중략)... 하나가 '엄마'라고 불러줄 때마다 나는 엄마가 됐단다. 엄마가 될 수 있었어. 하나, 나를 엄마로 만들어줘서 고마워." - <엄마의 엄마> 가운데



진학 과정에서 생긴 가족과의 갈등을 이겨내고 신앙심을 찾아내 신부가 되기로 결심한 소년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신이시여, 헬프'. 하나미의 초등학교 시절 친구인 미카미의 여름방학을 배경으로 짧은 성장소설처럼 읽힌다. 가족과의 어색한 만남에도 안주하지 못하던 미키미는 하나미와의 짧은 데이트를 경험한 덕분에 불과 '하루 만에' 나태, 색욕, 질투, 교만까지 여러 죄악을 한꺼번에 저지르는 자신을 발견학게 된다. 청소년기 귀엽고 명랑한 심리 묘사가 달콤하다.


하나미의 멘토와도 같았던 기도 선생님의 이야기 '오 마이 브라더'는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 형의 사연을 다뤘다. 형을 찾기 위해 들였던 모든 가족의 엄청난 노력과 고통은 시간이 흐를수록 안정을 되찾고, 동생 기도는 형을 대신해 '착한 아들'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형의 실종'을 설명할 무언가를 찾기 위해 애쓴다. 형제의 애틋한 추억이 저녁놀처럼 뜨겁고 붉게 물들어 가는 과정이 섬세하다. 



세상에, 이런 이야기를 경험해보지도 못했을 고교생이 풀어냈다니! 그것도 여고생이 남자들의 심리를! 루리카는 줄거리나 플롯을 짜는 일이 없이 글을 쓴다고 고백한다. 작가의 말에서 그는 "글을 쓰기 시작하면 등장 인물들이 얼마나 잘 움직여주느냐에 모든 것이 달렸는데, 이번에도 다들 자기들 삶을 생생하게 살아줬다"고 밝혔다. 말 그대로 '생생하게 살아준 등장인물'의 힘. 솔직하고 담백하기에 더욱 편하게 감동이 다가오는 건지도 모르겠다. 루리카에게, 그리고 <엄마의 엄마> 등장인물들에게 감사하다. 


"혼자면 쓸쓸하지 않아요?"

"태양은 언제나 외톨이야."


그렇다. 아무리 멀리 떨어진 곳에 있어도 태양은 늘 같은 태양이다. 엄마처럼.(*)


* 컬처블룸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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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죽음이 내게 말해준 것들
고칸 메구미 지음, 오시연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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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며 자주, 그리고 반드시 해야만하는 말. 스스로 '죽음'이란 것을 마주했거나, 사랑하는 이가 그러한 상황에 놓였을 때 이 말들은 더더욱 절실해진다. 고칸 메구미(後閑愛実)는 16년 간 간호사 생활, 특히 요양병원에 근무하며 직접 겪은 1000개의 죽음을 통해 이를 설명해내고 있다.



<천 개의 죽음이 내게 말해준 것들>의 원제는 <후회없는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後悔しない死の迎え方)>이다. '천 명을 직접 간호한 간호사가 가르쳐주는(1000人の看取りに接した看護師が教える)'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죽음 앞에 두고 '난 그래도 후회없는 삶을 살았어'라고 느끼게 된다면, 아마도 두려움과 슬픔보다는 죽음역시 삶의 일부로 인정하게 되지 않을까.


"우리 모두는 죽음을, 소중한 사람과의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


저자는 책을 쓴 이유를 이렇게 밝힌다. 모두가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꺼리고, 마치 자신에게는 다가오지 않아야할 일로 미루려고 하지만 누구나 언젠가 다다를 수밖에 없는 '인생의 종착역'에 순조롭게 이르기 위해서 우리는 '준비'라는 것을 해야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각자의 인생에서 주인공은 바로 자신이며, 이는 죽는 순간까지 잊어서는 안될 사실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어떻게 살고, 어떻게 마무리지을 지 스스로 생각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고칸 메구미는 모든 이가 "이만하면 꽤 괜찮은 인생이었어"라고 삶을 추억하길, 행복하고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는 힌트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천 개의 죽음이 내게 말해준 것들>은 바로 그런 마음을 담고 있다.


마지막 순간 평생을 함께 해 온 아내에게 전한 "고마웠어"라는 한마디가 죽음으로 인한 이별의 순간을 두 사람의 삶이 행복과 안정이었음을 확인하는 시간으로 변화한 이야기, 멀리서 달려오고 있을 자식과 임종을 함께 하기 위해 하악호흡을 이어가며 버텨내준 할머니의 심정, 항암치료가 너무나 힘들어 머지않은 죽음마저 더욱 당겨보려 자살까지 시도했던 고단한 환자의 고통 등 가슴 먹먹한 사연들이 이어진다.



분명 죽음은 남겨진 이에게 슬픔으로 남겠지만, 떠나는 이가 마지막 삶의 행복을 느끼고 소중한 추억을 간직할 수 있도록 우리가 준비해야한다는 저자의 생각은 옳다. 고칸 메구미가 연이어 강조하는 태도는 '주위에 대한 감사'와 '긍정적인 생각'이다. 외로운 죽음, 서글픈 죽음, 후회하는 죽음, 죄책감 가득한 죽음이 아니라 안도의 죽음, 새로운 희망의 죽음으로 서로를 위로할 수 있는 방법이다.


"수많은 걱정거리를 안고 살아온 것

무언가에 깊이 빠져 몰두해보지 못한 것

조금 더 도전적으로 살지 못한 것

감정을 솔직하게 주위 사람들에게 표현하지 못한 것

사랑하는 이에게 더 많이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한 것

친구들에게 더 자주 연락하지 못한 것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지나치게 신경 쓴 것

과거의 선택이나 후회에 사로잡혀 있던 것

사랑하는 사람과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않은 것

결국, 행복은 내 선택이라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는 것"

고칸 메구미의 <천 개의 죽음이 내게 말해준 것들> 가운데 '죽을 때 가장 많이 후회하는 10가지


고칸 메구미의 <천 개의 죽음이 내게 말해준 것들>은 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스스로를, 주위를 다시 한 번 둘러보게 한다. 감동 가득한 사연이 펼쳐질 때마다 죽음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은 삶에 대한 새로운 고마움으로 변화함을 느끼게 한다. 청력은 마지막까지 유지된다는 가르침은 놀랍다. 이미 늦었다고 여기기보다 아직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을 그에게 "고마워요" 한 번 더 이야기하라는 뜻일 것이다.(*)


* 문화충전200%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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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에
수잰 레드펀 지음, 김마림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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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다.


생존의 갈림길에 놓인 사람의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한 이기심을 비난할 수 없다면, 그 사람이 평온한 환경에서 알던 착한 모습과는 다른 결정을 할지라도 이해할 수 있다면 나 역시 좋은 사람이 아니다. 나도 과거의 나와는 다른 모습으로 나와 내 가족의 안전을 우선하느라 타인을 생각하지 않을테니까.


수잰 레드펀의 <한순간에>는 극한의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민낯, 그리고 그 이후 '선하지 못했던' 행동에 대한 책임과 치유의 과정을 그렸다. 우리 주변에 늘상 벌어지는 일이지만 깊숙히 고민하지 않았던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 분명히 반드시 생각해야만 하는 문제를 제대로 짚어 냈다. '우리는 좋은 사람인가'라는 질문이다.



활화산처럼 5분만 같이 있어도 폭발할 것 같은 가족이 사흘간의 '단합여행'을 떠난다. 열여섯살 고등학생인 주인공 핀의 가족은 친척처럼 가까운 이웃 캐럴 이모 부부와 그들의 딸 내털리, 핀의 단짝친구 모와 캠핑카를 타고 캘리포니아 북부 스키장이 있는 산장으로 향한다.


그러나 그들의 들뜬 여행은 눈보라 속 도로 위에서 마주친 수사슴과 함께 갑작스레 마감된다. 툭. 툭. 툭. 마치 바늘땀이 뜯어지듯 강철 가드레일은 무너지고, 캠핑카는 미사일처럼 산과 나무와 눈을 뚫으며 아래로 곤두박질친다. 작은 날숨을 마지막으로 핀은 자신이 차 밖에 있음을 알아챈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얼떨떨하지만, 그런 기분은 아주 잠시뿐이다. 나는 죽었다. 충격적이지만 아주 자연스럽다."


조수석 처참한 자신의 주검을 뒤로하고 핀은 깊은 슬픔에 빠진 채로 남은 이들을 위해 기도한다. 크고 작은 부상에 신음하고 배고픔과 추위,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살아남은 이들의 모습은 핀을 괴롭힌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고통받는 광경을 더 이상 목격하지 않아도 되는, 평화가 있는 곳으로 보내 달라고 빌고 또 빌어본다.



이제 <한순간에>는 핀의 영혼이 바라보는 관점에서 그려진다. 오로지 자신의 가족만 생각하는 캐런 이모 일행, 나이에 맞지 않게 타인을 배려하며 위기를 견뎌내려는 모의 희생, 모든 상황을 통제하면서 구조를 위해 자신을 헌신하는 엄마, 자신의 부상을 숨기면서까지 묵묵히 타인을 돕는 마을 청년 카일. 


어제까지 핀이 알던 '좋은 사람'은 이제 없다. 그 사실 자체가 슬프고 두렵다. 책을 찢어 태워 눈을 녹여 만든 물을 모로부터 받아 마시는 캐런 이모에게 핀은 분노라는 감정을 느낀다. 왜 어린 모가 힘겹게 만들어낸 물을 멀쩡한 몸으로 먼저 마시는지. 캐런 이모의 남편 밥이 동생 오즈를 속여 빼앗은 두꺼운 장갑은 이제 태연하게 내털리의 손에 끼여 있다. 엄마와 카일의 영웅적인 희생으로 가족은 구조되지만, 단 한 사람만은 끝내 찾을 수 없었다.


<한순간에>는 재난 자체에 앵글이 맞춰져 있지 않다. 오히려 사고 그 이후, 남은 이들이 치러야할 대가에 시선이 쏠린다. '가시나무로 뜬 담요를 덮은 것처럼' 사고로 인한 상처투성이의 후유증은 생존자들의 인생에 습관처럼 자리를 잡고,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던 절박한 감정은 완전히 다른 무언가로 변형되어 간다. 


바로 '후회'라는 단어다. 살아 남은 이들의 양심은 끊임없이 아우성을 치고, 그들의 뇌에서는 '했어야 할 일'과 '했으면 좋았을 일'들이 끊임없이 떠오른다. 때로는 자신을 학대하고, 때로는 타인을 비난한다. 그러면서 참회하고 회복한다. 서로 애증의 어깨를 기대면서. 어느듯 상처를 보듬을 수 있을 즈음 모와 핀의 영혼은 그날의 사고를 다시 종합하고 정리한다. 다시 되새기고 싶지 않은 기억이지만 완전한 극복을 위해 그들은 진실을 찾아갈 수밖에 없다.



"풍족할 때는 누구나 관대할 수 있다. 가진 것이 많으면 누구든 이타적일 수 있다. 그러나 엄마는 맨손으로 캠핑카의 창문을 막았다. 죽은 딸의 옷을 벗겨서 단 한 겹도 자기의 몸을 따뜻하게 하는 데 사용하지 않았다. 용감하게 자기 아들과 남편을 내버려 두고 구조를 요청하러 떠났다. 캐런이 캠핑카 뒤쪽에서 내털리와 내내 앉아만 있는 동안.두려움은 변명이 될 수 없다."


포춘 쿠키에나 나올 것 같은 아빠의 바보같은 철학은 엄마를 비롯한 핀의 가족을 버티게 해줬다. '모든 여행은 한 걸음부터 시작된다. 안 된다는 생각을 버려라. 두려움이 우릴 멈추게 만든다. 우릴 전진하게 만드는 것은 용기다.' 손가락, 발가락 몇 개가 동생과 함께 사라졌고 악몽같은 기억은 가슴 한 켠 아직 남아있지만 핀의 가족과 모는 다시 태어난 듯 행복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간다.


저자는 "끔찍한 사고에 대한 이야기지만 사실 진짜 이야기는 그 사고가 발생한 이후, 그 재앙의 여파 속에서 일어난다. 그 참사의 생존자들이 했던 선택의 결과가 그들을 괴롭히러 다시 되돌아오는 시기부터"라며 "언제나 후회란 마음 속에 지니고 살기에 가장 힘든 감정이라고 생각해 왔지만, 후회란 감정도 양심이 있을 때에나 가능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뭔가 잘못을 저지른 후에, 양심이 없는 가장 나쁜 사람이 가장 적게 고통받게 되는 불공평한 모순은 '한순간에' 모습을 드러낸다.(*)


* 컬처블룸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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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론 심리학으로 말하다 1
얀-빌헬름 반 프로이엔 지음, 신영경 옮김 / 돌배나무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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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택시 기사 제리 플레쳐는 많은 신문을 들여다보고 각각의 뉴스를 열심히 분석, 재구성해 자신만의 음모론을 만들어낸다. 손님들에게 자신의 이론을 이야기하고 그들이 믿게끔 만드는 일에 큰 재미를 느낀다. 그러던 어느날 제리의 추론 중 하나가 실제 음모와 맞아 떨어지면서 엄청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모튼 하켓(Morten Harket)의 'Can't Take My Eyes Off You'가 잘 어울렸던 영화 멜 깁슨 주연의 '컨스피러시(conspiracy)'다.


우리가 음모론에 끌리는 것은 '그럴듯하기 때문'이며, 그 이면에는 본질에 관한 부족한 정보와 불확실성에 대한 공포가 자리잡고 있는 까닭일 것이다. 얀 빌헬름 반 프로이엔의 <음모론>은 하나의 사회현상으로서 음모론을 바라보고, 음모론을 대하는 사람들을 심리학적 관점에서 분석했다. 음모론이 '진짜인가, 가짜인가'에 시선을 두기보다는 '누가 믿고 누가 믿지 않을까' 또는 '어떤 상황에서 더 믿을까',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라는 질문에 기초한다. 음모론 뒤에 숨겨진 심리학에 관한 이야기다.



저자는 <음모론>에서 '모든 음모론은 비슷하고 인식할 수 있고 예측 가능한 심리과정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을 주장한다. 개인 차원에서 음모론을 가정하는 유형-나에게 피해를 주기 위한 동료들의 모의, 나를 게임에서 지게 하려는 상대편과 심판의 공모 등 과학계에서 '피해 망상'으로 분류되는 경우-보다 사회집단 차원에서 풀이했다.


책은 '음모론과 심리학', '사람들은 언제 음모론을 믿는가', '믿음의 구조', '음모론의 사회적 뿌리', '음모론과 이념', '음모론 줄이기' 등 6개 장으로 구성됐다. 음모론의 정의, 음모론이 힘을 발휘하는 상황, 음모론과 다른 믿음의 차이와 공통점,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음모론의 근거, 정치적 배경의 음모론과 신뢰 성향, 그리고 음모론에 의한 폐해를 막기 위한 수단 등 저자의 연구가 담겨있다.


'비합법적이거나 악의적이라고 인식되는 숨겨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여러 행위자가 비밀리에 합의하여 협력하고 있다는 믿음'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툭 떨어진 개념이 아니라, 오랜 역사 속에서 존재해온 음모론에 대한 정의다. 


저자는 음모론을 더욱 명확히 정의하기 위해 패턴, 행위자, 연합, 적대감, 비밀 유지 등 다섯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가운데서도 다른 형태의 믿음과 구별되는 음모론이 가진 핵심 요소는 '적대적이고 비밀스러운 행위자 집단'의 존재 여부다. 이를테면 '세계를 지배하려는 한 집단이 비밀 연구소에서 한 나라와 결탁해 생화학 무기를 만들어 퍼뜨리는 것이 치즈'라는 식이 되겠다.


9.11 테러, 2020 도쿄올림픽 실패, 우한 코로나 발생 등을 예언하고 있다는 '일루미나티 카드'. '하나된 세상'을 꿈꾸며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프리메이슨' 등 저자가 말한 요소에 들어맞는 음모론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겠다. 저자는 2016년 도널드 트럼프가 생산한 무수한 루머, 9.11테러를 둘러싼 의혹, 영국의 브렉시트 탈퇴 등을 음모론의 대표적인 예로 들고 있다.



"음모론은 양극화된 정치적 분위기와 관련이 있으며, 이념이 다른 집단들은 반대 집단을 적으로 그려낸다."


강력한 통신 기반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과거에 비해 음모론에 쉽게 노출되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광우병 파동' 당시 '미국산 소고기를 먹으면 뇌가 숭숭 뚫린다'는 명쾌한(?) 저주는 방송과 인터넷을 타고 전국민을 공포로 불어 넣었다. 물론 이 같은 주장을 했던 사람들이 자녀를 미국 유학 보냈다거나, 미국산 소고기가 주원료인 버거를 먹는 장면을 자랑하는 등 희한한 행태로 이어지는 경우를 보기도 했지만.


모바일 시대 이러한 불안은 더욱 크다. 특히 과거에 비해 엄청난 양의 정보를 더욱 빠르고 쉽게 접하고 있기에 '음모론'의 확산과 소비역시 같은 속도를 유지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저자는 <음모론>에서 전파되는 속도가 증가한다고 해서 음모론을 믿는 사람의 비율도 증가하는 것은 아니라고 단언한다. 어차피 퍼져나가야할 음모론은 속도와 무관하게 전파됐음을 역사 속에서 확인할 수 있고, 음모론에 대한 신뢰는 주관적이고 심리적인 상태에 뿌리를 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정치적 의도를 가진 '음모론'에 대한 저자의 분석이 눈길을 끈다. 현대 민주주의에서 정치적 극단주의는 흔히 의회에서 포퓰리즘의 형태로 나타나며, 음모론이 극단주의나 포퓰리즘을 지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더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는 대목이다. 그만큼 미디어를 장악한 세력에서 생산된 음모론은 더 강력하며, 그만큼 더 위험하다.


포퓰리스트가 제시하는 '이것이 사실이다'는 주장은 복잡한 사회 문제에 대해 단순한 해결책처럼 비쳐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저자는 명료함을 가장한 행태에 대해 경계해야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유대인에 대한 히틀러가 품어왔던 음모론까지 갈 것도 없이 우리 사회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취창업이 어려운 청년에게 현금을, 코로나로 힘든 소상공인에게도 현금을, 경제활동에서 은퇴한 노년층에게도 현금을!" 근원적이고 난해한 대책보다 간단 명료하며 뿌리치기 힘든 유혹은 음모론만큼이나 위험할 것이라고 <음모론>은 경고한다.(*)


* 컬처블룸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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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센스 노벨
스티븐 리콕 지음, 허선영 옮김 / 레인보우퍼블릭북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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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식' 헛웃음이 읽는 내내 터져 나온다. 잉글랜드 출신으로 미국과 캐나다에서 활동한 유머 작가 스티븐 리콕의 단편소설 <난센스 노벨>은 각박한 현실을 너무나 쉽고 재미있게 풍자한 작품이다. 모든 단편은 마치 잘 짜여진 개그 프로그램을 보는 듯하다. 어쩌면 책 표지 그림에 표현된 것처럼 서커스 공연을 즐기는 느낌일지도 모르겠다.


<난센스 노벨>은 여덟 개의 짧은 이야기로 구성됐다. 각 편의 제목과 부제부터 '난센스'라는 점을 기억하며 읽다보면 유머 작가의 의도와 편안한 공감대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



'여기 해초에 묻히다(광활한 바다 위 대혼란)', '넝마를 걸친 영웅(히스가야 헤이로프트의 고군분투 생존기)', '어느 순진한 여인의 슬픔(마리 머시너프의 회고록)', '무너진 장벽(푸른 섬에서 싹튼 위험한 사랑)', '하일랜드 아가씨 해나와 오처라처티 호수의 지주', '누가 범인일까?(미궁의 살인사건)', '캐롤라인과 불사조 아기의 크리스마스', '석면 옷을 입은 사나이' 등 주인공도, 배경도 모두 다른 기묘한 이야기가 펼쳐 진다.


<난센스 노벨>의 유머는 첫 편에서부터 잘 드러난다. '커다란 구레나룻, 무성한 턱수염과 두꺼운 콧수염만 빼면 깔끔히 면도한 얼굴'을 가진 선장'과 항해사 블로우하드의 보물을 향한 항해가 시작되지만 선원들의 연쇄 실종 사건이 발생하면서 대혼란에 빠져든다.



기술도 능력도 없는 한 청년의 뉴욕 생존기를 그린 '넝마를 걸친 영웅'. 일자리를 구하던 그에게 벽돌공은 벽돌을 던지고, 길을 묻는 그에게 경찰은 옆통수를 후려친다. 심지어 말도 꺼내기 전에 귀를 물어뜯는 성직자까지 만나게 되고. 일자리를 향해 온 몸을 던지는 무모한 히스가야 헤이로프트가 마침내 비정함과 지독함으로 가득한 뉴욕에서 자리잡는 과정이 괴이하다.


'나는 왜 태어났을까? 모르겠다'. 결혼을 앞둔 한 처녀가 벌이는 너무나 철없는 애정 행각을 다룬 이야기 '순진한 여인의 슬픔', 여객선의 침몰로 만난 한 여인과 무인도 생활을 시작하는 '무너진 장벽', 그리고 원한관계에 놓인 스코틀랜드의 두 가문이 등장하는 '하일랜드 아가씨 해나와 오처라처티 호수의 지주' 등은 각 편의 주인공들이 저지르는 어처구니없는 사랑과 현실을 풍자하고 있다.


"아들아,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아무렴 네가 제일 잘 알겠지."


익숙한 대사가 등장하는 '캐롤라인과 불사조 아기의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를 앞둔 날 간난아기를 안은 여인을 집으로 받아들인 부부의 사연은 인물간 기막힌 연결과 의외의 결말로 큰 재미를 준다. 오래된 농장을 잃어버릴 위기에서 벗어난 남편이 아들들에게 새로운 인생관을 설파하는 장면이 압권이다. 


"자, 아들들아. 이제부터는 우리는 가늘고 길게 살자꾸나. 좋은 책에 이르기를 '직선은 양 극점 사이에 반듯하게 놓인 선이다'라고 하더구나." 그가 말하는 '좋은 책'은 유클리드의 기하학원론이다.



마지막편은 <난센스 노벨>의 작가 자신이 등장하는 느낌을 준다. 굉음을 내는 기계와 노동자 계층의 끊임없는 노역, 계층 간의 갈등, 빈곤 문제, 전쟁, 잔학 행위가 만연한 오늘날의 세상을 볼 때마다 간담이 서늘해짐을 느끼는 작가는 먼 미래 다시 깨어나는 꿈을 꾼다. 마침내 '자연의 위대한 정복 시대'를 찾은 작가는 인간과 기계가 자연에게 승리를 거둔 세상을 경험하게 되고, 오래전 자신이 살았던 삶에 대한 값어치를 다시 생각한다.


여덟 편의 이야기가 순식간에 지나간다. <난센스 노벨>은 거침없는 설정, 더 거침없는 인물, 더더욱 거침없는 전개 속에 당황스러울 만큼 유머가 가득하다.(*)


* 리뷰어스클럽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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