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엄마 다산책방 청소년문학 9
스즈키 루리카 지음, 이소담 옮김 / 놀 / 202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혼자 나즈막히 불러봐도 뭉클해지는 이름, '엄마'. 금세 가슴 한 켠이 먹먹해지고, 머리 한 구석이 아련해지는 이름이다. 가족의 시작이자 끝인 엄마는 자식이 어디에 있건 함께 존재한다. 굳이 표현하지 않는 사랑이 더욱 세심한 배려이며, 거대한 희생이라는 것을 십대 소녀가 그린 이야기에서 일러 준다.


스즈키 루리카(鈴木るりか)의 <엄마의 엄마>는 '엄마', 그리고 '가족'에 대한 세 가지 에피소드로 엮여있다. 원제는 '태양은 외톨이(太陽はひとりぼっち)'다. 불행한 가족사, 종교성, 성 정체성 등 다소 무거운 주제임에도 재미있고도 경쾌하게 풀어냈다. 2003년 도쿄 출생의 현재 고등학생인 작가의 재능이 부러울 정도다.



누가 봐도 씩씩하고 밝은 중학생 소녀 하나미를 중심으로 '태양은 외톨이', '신이시여, 헬프', '오 마이 브라더' 등 세 개의 단편이 이어진다. 풍족하진 않아도 평화롭던 모녀 앞에 또 한 명의 가족이 느닷없이 찾아든다. 하나미가 막연히 꿈꿔온 '반대의 삶'에서의 '할머니'와는 성격이나 행동이 거리가 먼 사람. 죽은 줄로 알았던 '엄마의 엄마', 즉 하나미의 외할머니다. 갑자기 한지붕아래 모이게 된 세 모녀가 주고 받는 대화에서 그들이 간직하고 있는 아픔의 깊이와 사랑의 크기가 가늠된다.


"아주 가끔은, 예를 들어서 해 질 무렵에 강변을 따라 걷다 보면 무심코 '엄마'하고 중얼거릴 때가 있어. 그냥 '엄마'라고 말하면 마음이 촉촉해져서 울고 싶어지더라. '엄마'는 참 대단하고 좋다고 생각했어...(중략)... 하나가 '엄마'라고 불러줄 때마다 나는 엄마가 됐단다. 엄마가 될 수 있었어. 하나, 나를 엄마로 만들어줘서 고마워." - <엄마의 엄마> 가운데



진학 과정에서 생긴 가족과의 갈등을 이겨내고 신앙심을 찾아내 신부가 되기로 결심한 소년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신이시여, 헬프'. 하나미의 초등학교 시절 친구인 미카미의 여름방학을 배경으로 짧은 성장소설처럼 읽힌다. 가족과의 어색한 만남에도 안주하지 못하던 미키미는 하나미와의 짧은 데이트를 경험한 덕분에 불과 '하루 만에' 나태, 색욕, 질투, 교만까지 여러 죄악을 한꺼번에 저지르는 자신을 발견학게 된다. 청소년기 귀엽고 명랑한 심리 묘사가 달콤하다.


하나미의 멘토와도 같았던 기도 선생님의 이야기 '오 마이 브라더'는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 형의 사연을 다뤘다. 형을 찾기 위해 들였던 모든 가족의 엄청난 노력과 고통은 시간이 흐를수록 안정을 되찾고, 동생 기도는 형을 대신해 '착한 아들'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형의 실종'을 설명할 무언가를 찾기 위해 애쓴다. 형제의 애틋한 추억이 저녁놀처럼 뜨겁고 붉게 물들어 가는 과정이 섬세하다. 



세상에, 이런 이야기를 경험해보지도 못했을 고교생이 풀어냈다니! 그것도 여고생이 남자들의 심리를! 루리카는 줄거리나 플롯을 짜는 일이 없이 글을 쓴다고 고백한다. 작가의 말에서 그는 "글을 쓰기 시작하면 등장 인물들이 얼마나 잘 움직여주느냐에 모든 것이 달렸는데, 이번에도 다들 자기들 삶을 생생하게 살아줬다"고 밝혔다. 말 그대로 '생생하게 살아준 등장인물'의 힘. 솔직하고 담백하기에 더욱 편하게 감동이 다가오는 건지도 모르겠다. 루리카에게, 그리고 <엄마의 엄마> 등장인물들에게 감사하다. 


"혼자면 쓸쓸하지 않아요?"

"태양은 언제나 외톨이야."


그렇다. 아무리 멀리 떨어진 곳에 있어도 태양은 늘 같은 태양이다. 엄마처럼.(*)


* 컬처블룸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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