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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하버드까지 (10만 부 기념 스페셜 에디션) - 나의 생존과 용서, 배움에 관한 기록
리즈 머리 지음, 정해영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10월
평점 :
0세. 아빠와의 첫만남. 아직 엄마의 뱃속에 웅크린 채 교도소 수감 중이던 아빠를 면회한다.
5세. 엄마 아빠가 빠져든 하얀 가루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
6세. 따뜻한 식사를 먹고 싶고, 따뜻한 코트를 갖고 싶지만 갈라진 아빠의 운동화를 외면할 수 없다.
8세. 집에서 '착한 딸'이 되려면, 친구들에게 '정상적'인 사람이 되려면 나의 일부를 숨겨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9세. 먹을 것을 위해 나도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운다.
12세. 어디에도 편히 쉴 곳은 없다. 학교와 집, 두 가지 종류의 결석이 늘어 난다.
13세. 집단시설에 구금된다.
15세. 죽음을 맞기 위해 병원으로 간 엄마, 홀로 남은 아빠. 그들로부터 벗어난 거리 생활이 시작된다.

6살의 리즈에게는 하루 한 끼라도 따뜻한 식사, 그리고 작은 몸 누일 수 있는 낡은 매트리스마저 허락되지 않았다. 정부 보조금마저 리즈의 부모가 견딜 마약을 사는데 들여야하기 때문이다. '무대에서 사람들을 위해 웃기는 얘기를 하는 코미디언'이 되고 싶었던 어린 아이.
리즈 머리의 실화, <길 위에서 하버드까지(원제 : Breaking Night)>. 소녀의 가슴에서 전하는 한 마디 한 마디에 잠시도 딴청 피울 수가 없다. '나의 생존과 용서, 배움에 관한 기록'이라는 부제처럼 책은 리즈가 겪고 이겨낸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다.
흔한 처세에 관한 얄팍한 기술도 아니며, 자신의 성취를 자랑하는 성공담도 아니다. 현재의 자신의 삶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감정과 사실을 그저 지나칠 정도로 무덤덤히 기록했을 뿐이다. 엄마 아빠를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꼬맹이' 리즈에게 '생활'은 애초에 없었다. 오직 '생존'만이 작은 가슴과 머리를 지배했다. 먀약 중독자를 부모로 둔 리즈와 언니 리사에겐 평범함이란 존재하기 힘들었다.

정부 보조금이 온 날로부터 단 사나흘이 지나면 다시 배고픔의 시기로 되돌아가버리는 집. 한 번 사용할 마약을 구입할 5달러에 인생을 걸고 있는 엄마와 아빠지만, 리즈는 그들에게 '무언가'를 요구한 적이 없다. 따뜻한 식사와 자식들에게 더 잘해주는 것을 원했지만 리즈는 자신이 하루 종일 따뜻한 음식을 먹지 못할 때, 아빠와 엄마는 2~3일 동안 먹지 못한다는 사실을 생각했다. 대여섯살의 리즈가 말이다.
"부모님이 우리에게 상처를 줄 의도는 없었다. 단지 우리가 부모님에게 바라는 것을 갖지 못했을 뿐이었다. 그러니 어떻게 두 사람을 탓할 수 있겠는가." 여덟살 리즈는 자신의 삶에서 뭔가를 미워했다면 그것은 마약과 중독 자체였지 부모님은 아니었다고 한다. 리즈는 부모님을 사랑했고, 부모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았고 이를 확신했다.
"인생이 최악으로 변할 수 있다면, 어쩌면 좋은 쪽으로도 변할 수 있는 것이 인생이란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거부하는 사람들로 가득 찬 세상, 그 벽을 깨뜨리고 새롭게 나아가기 위해서는 결국 '자신의 몫'이란 것을 리즈는 깨닫는다. 어린 시절 수없이 들어왔던 그 무책임해보이던 낯선 이들의 이야기가 그녀의 가슴 속에 '도전'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살아나게 한 것역시 리즈 자신이었다.

불행이라는 이름보다 더욱 불행했던 리즈의 어린 시절을 관통한 것은 '부모님에 대한 사랑', 그리고 '책'이다. 비록 자식들에게 평온하고 안전한 가정을 제공하진 못했지만, 그들의 사랑만큼은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현실을 이해하고, 자신마저 희생하고자 했던 리즈였기에 긍정과 변화의 삶이 주어졌으리라. 또 한가지. 친구들의 놀림, 나와는 다른 사람들의 눈빛을 피해 학교를 거부했던 리즈였지만 도서관으로부터 빌려온 아빠의 책, 친구들과의 거리생활에서도 잊지않고 찾았던 공공도서관은 그녀의 삶에 다른 한 축이 되었다.
건물 층계참과 옥상, 그리고 지하철에서 잠자리를 해결하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리즈. 수많은 장애물을 해결해야하는 것을 당연한 일로 여겨버린 강한 의지는 결국 '하버드'라는 꿈에 그녀를 안착하게 한다. 리즈의 '생존'은 여기서 끝이 아닐 것이다. <길 위에서 하버드까지> 엄청난 트랙을 달려온 그녀의 '생활'이 또 다시 어찌 변화할 지는 모를 일이다. 다만 언제든 새로운 출발과 도전이 두렵지 않은, 현실을 타박하거나 타인에 책임을 돌리지 않는 그녀의 모습은 변함 없으리라 믿는다.
많은 뉴욕 브롱크스 빈민가의 가족이 그랬듯 성공을 위해 발버둥 치는 많은 가족이 여전히 세상 곳곳에 존재한다. 그 출발선이 다르더라도, 설사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더라도 "언제나 벽을 깨며 나아가라"고 리즈는 말하고 있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