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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의 집
래티샤 콜롱바니 지음, 임미경 옮김 / 밝은세상 / 2020년 10월
평점 :
큰 산불이 나자 숲에 사는 동물들은 넋이 나가 그 재앙이 무기력하게 바라보고만 있었다. 오직 작은 벌새 혼자 부지런히 부리로 물을 떠날라 불길에 몇 방울씩 떨어뜨렸다. 그런 벌새를 보고 아르마딜로가 말했다.
"어리석긴, 그래서는 불을 끄지 못해."
"나도 알아." 벌새가 답했다.
"하지만 어쨌거나 내가 해야 할 몫은 하고는 있잖아."
피에르 라비의 우화에 나오는 이야기라고 한다. 위기에 닥친 사회, 위기에 처한 사람을 위해 우리의 모습은 아르마딜로일까, 벌새일까. 우리는 오늘 '내가 해야 할 몫'을 하며 살고 있을까. 래티샤 콜롱바니의 <여자들의 집>은 프랑스를 배경으로 이같은 물음을 던진다. 작가는 주인공 솔렌이 집이 없는 여성들을 위해 '내가 해야 할 몫'을 기필코 해내는 과정에서 답을 구해낸다.

부유한 동네에서 법학교수 부모님아래 부유한 동네에서 태어난 명석한 아이, 스물두 살에 변호사 자격증을 따고 유명 로펌에서 일하고 있는 솔렌. 작가의 꿈은 일찌감치 접었지만 현재의 삶에 큰 불만은 없었다. 솔렌의 눈 앞에서 소송에서 패한 의뢰인의 갑작스런 투신 자살 사건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그랬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사건을 맞닥뜨린 솔렌은 '번 아웃 증후군'에 빠져 모든 일에 자신을 잃어버린다. 지금까지 그녀의 삶 자체에 대한 의문마저 갖게 될 즈음 '자기 안에 갇혀서는 안 된다.'는 의사의 조언에 따라 사회 봉사에 관심을 갖게 된다. '글을 대신 써 줄 작가'를 찾는 구인 광고는 솔렌을 프랑스의 새로운 세상 속으로 한발 다가서게 만든다.

솔렌이 맡게 된 일은 여성 쉼터에 머물고 있는 입소자들을 위해 글을 대신 써주는 것. '팔레 드 라 팜므(Palais de la Femme)'. 이른바 '여성 궁전'이다. 경계심이 강하고 배타적인 여성 궁전 거주자들과 솔렌은 '서로 알아가기'를 조심스레 시작한다.
<여자들의 집>은 여성 궁전에서 벌어지는 솔렌의 시간, 그리고 100년 전 1925년 가난한 자들을 위한 구세군 페롱 사령관 부부의 헌신이 교차되면서 전개된다. 온 몸에 암 세포가 퍼지기 직전까지 거리의 여성을 위한 '여성 궁전' 설립에 모든 것을 바친 블랑슈, 그녀의 남편이자 전우인 알벵의 노력이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그려진다.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한 빈타는 남겨둔 아들을 위한 '엄마의 편지'를, 잡동사니를 가득 실은 쇼핑카트를 끌고 다니는 크베타나는 영국 여왕에게 사인을 부탁하는 편지를 요구한다. 한 번도 자신의 방을 가져본 적이 없는 라 르네는 침실보다 베낭에 둘러싸인 채 세탁실에서의 수면이 편하다. 성 정체성 혼란으로 인해 소중한 모든 것을 버렸던 이리스, 남편의 과도한 폭력으로부터 탈출한 뜨개질하는 비비안, 어머니의 비뚤어진 집착으로부터 도망친 릴리. 솔렌은 점점 그들의 삶을 공유하고 눈물을 함께 하는 존재로 변해 간다. 빈타의 딸 수메야가 말없이 건넨 젤리 하나로 시작된 솔렌의 봉사활동은 점차 깊이를 더해 간다.
최근 한 미혼모가 신생아를 중고물품 거래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입양시키겠다는 글을 올려 사회적 파장을 불러 왔다. 철없는 엄마의 행동을 비난하고, 부적절한 게시물을 걸러내지 못한 앱 운영자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넘쳐났다. 그러나 왜 그녀가 가장 먼저 선택한 것이 우리 사회가 마련한 안전망일 수는 없었는지, 이것부터 따져봐야할 문제가 아닐까. '내가 해야 할 몫'은 무엇인지 생각하는 일 말이다. <여자들의 집>에서의 '여성 궁전'에 날아든 진짜 궁전 '버킹검 궁'으로부터 온 답신처럼 절실한 '희망'을 기다리는 사람은 여전히 많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