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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술의 세계사 - 한 잔 술에 담긴 인류 역사 이야기
미야자키 마사카츠 지음, 정세환 옮김 / 탐나는책 / 202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한 잔 먹세 그려 또 한 잔 먹세 그려.
꽃을 꺾어 술잔 수를 세면서 한없이 먹세 그려.
- 정철, 장진주사(將進酒辭) 가운데
'마치 하늘을 마시는 것과 같다'는 칭송을 받은 샴페인, 가난으로 인해 젖먹이 아기에게까지 물렸던 진, 권투의 그로기(groggy) 상태라는 말을 나오게 한 럼주, 고급술의 대명사로 변신에 성공한 코냑, 산업혁명 이후 전 세계시장 석권을 위해 각국에서 대표선수로 개발된 위스키 등 다양한 술에 얽힌 이야기가 넘쳐 난다. 미야자키 마사카츠의 <처음 읽는 술의 세계사>.

<처음 읽는 술의 세계사>에서 저자는 '술'을 통해 인류의 문화, 산업, 기술, 음식, 무역, 전쟁을 풀어 낸다. 인류사상 가장 오래된 술, 봉밀주부터 시작해 우리 식탁을 지배해온 술의 종류와 탄생 배경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으며, 술로 인한 세계사의 변화도 가벼운 터치로 표현했다. 또 여러 가지 술과 관련한 흥미로운 뒷이야기도 가득하다.
"18세 이전에는 절대 와인을 마셔서는 안된다. 서른 살까지는 적당히 마셔도 되지만 술주정을 하거나 과음을 해서는 안된다. 마흔이 되었다면 들뜬 기분으로 소란을 피워도 좋다. 와인이야말로 그들이 짊어지고 있는 인생의 무거운 짐을 가볍게 하고, 괴로운 마음을 치유하며 젊음을 되찾아주어 절망적인 생각을 잊어버리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의 '와인예찬'이다. 무거운 인생의 무게를 잠시나마 덜어내고, 괴로운 일상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술'에 대한 플라톤의 말이 수천 년이 지난 지금의 '술에 대한 생각'과 거의 흡사하다는 점이 재미있다. 연령대에 따라 술에 대한 절제를 강조하는 모습역시 마찬가지다. 보다 따뜻한 인간관계를 형성하게 하고, 보다 편하고 자유로운 대화를 이끌어내며, 새로운 아이디어마저 도와주는 술의 장점을 플라톤은 알고 있었나보다.

특히 기원전 17세기 고대 바빌로니아 왕국시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로 유명한 함무라비 법전에 술집에 대한 규정이 기록돼있다는 사실은 놀랍기까지 하다. 맥주의 판매와 외상에 대한 기준을 정해놓았고, 술집에 숨어든 범죄자를 보호하면 안된다는 점까지 기술돼있다고 한다.
각종 술의 기원에 더해 음주법에 소개도 눈길을 끈다. 태양이 작렬하는 남미의 대표적인 술로 잘알려진 데킬라 이야기다. 레몬 또는 라임을 동그랗게 썰어 엄지와 검지로 집고 두 손가락 사이 밑동 부분에 소금을 올린다. 레몬이 내는 신맛을 입안에 머금고 소금을 핥은 후 원샷으로 마신다. 소금에 마게이에 붙어사는 붉은 나비 유충을 태워 분말로 만들어 넣으면 좋다고 한다. 뭔가 인간적인 음주법으로 데킬라는 더욱 세계에 알려지게 됐다.
<처음 읽는 술의 세계사>가 설명하는 술집의 분류역시 새롭다. 에디슨의 백열전구 발명 이후 '제 2의 낮'으로 재탄생한 밤을 점령한 술집. 초기 숙박시설의 일부였던 술집이 여러 형태로 분화되는 과정을 책은 설명한다. 본디 지역 와인을 판매하던 '캬바레'가 프랑스에서 선술집을 의미하게 되고, 나아가 쇼를 즐길 수 있는 대규모 홀 '물랭루주'로 변화하는 과정이 눈에 띈다. 미국 서부 개척 전선에서는 손님 접대용 방을 뜻하는 단어 '살롱'이 술을 판매하는 음식점으로 거듭난다. 맥줏집 '에일 하우스'에서 시작된 '퍼블릭 하우스(펍)'은 이미 유명하다.

'바'가 생겨나게 된 이유도 재미있다. 미국 서부의 음식점에서 취객이 주인의 눈을 속여 마음대로 술통에서 술을 꺼내 마시는 경우가 늘어나자 술통과 손님을 가로지르는 봉을 설치하면서 '바'라는 이름이 생겨났다고 한다. 이와 달리 술집 앞 말을 묶어놓기 위한 '바'에서 시작됐다는 설도 있지만 <처음 읽는 술의 세계사>의 설명은 이렇다. 손님과 술통 사이의 바, 그리고 바를 지키는 감시자 '텐더'가 합쳐져 '바텐더'라는 직업까지 나오게 됐다고.
술이 사람에게 주는 선물은 '취기'일 것이다. 사람의 긴장을 풀어줌으로써 평소와는 다른 편안함과 넉넉함까지 제공하는 술의 취기. 사람과 사람을 보다 가까이 이어주는 매개로서의 술. 아주 오래 전 벌꿀이 발효된 봉밀주를 처음 맛보았던 인류가 느꼈을 취기, 그 취기를 적절하고 편리하게 느끼고자함이 술 제조법, 보관법의 발전을 가져왔을 것이다. <처음 읽는 술의 세계사>가 전하는 풍부한 이야기는 '술'을 더욱 즐거운 상대로 여기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