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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과 개
하세 세이슈 지음, 손예리 옮김 / 창심소 / 2021년 2월
평점 :
사람에게 개는 어떤 의미인가, 혹은 개에게 사람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여러 각도에서 생각하게 한다.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사람이 천만을 넘어섰다는 현실은 '공존의 가치'에 대한 고민을 더욱 부추긴다.
<소년과 개(원제:少年と犬)>의 작가 하세 세이슈(馳星周)는 25년이 넘게 개와 함께 살고 있다. 그는 세 마리의 개를 떠나보냈고, 현재도 두 마리의 개와 살고 있다. 죽음과 이별에 결코 익숙해지지 않지만 개와 함께 사는 삶을 선택했고, 후회는 없다고 한다. 이같은 그는 "개에게 배우며, 개와 살아가는 사람은 극히 적다"고 지적한다.

<소년과 개>에는 한 마리의 개가 등장한다. 세퍼트의 모습을 조금 가진 잡종견인 개가 여러 사람과 함께 한 일생을 다뤘다. 쉽사리 개가 가졌을 생각이나 느낌을 표현하지 않았다. 그저 개를 둘러싼 사람의 행동과 변화가 이를 짐작하도록 했다. 센다이 출신의 '다몬'이라는 개가 주인공이다. 사천왕 중 하나인 다몬천(多聞天)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한다.
다몬은 완벽한 개다. 정작 자신이 동의할지, 다른 개가 보기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다몬과 함께 삶을 나눈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절대 요란한 법이 없으며, 존재자체만으로 사람에게 위안이 되는 다몬이다. 마치 사람 속을 훤히 들여다보듯 품위있고 점잖게 동행할 뿐이다. 자신이 가야할 길을 절대 잊지 않은 채.

동일본대지진은 아직도 일본인에게 큰 상처로 남아 있다. <소년과 개>의 배경역시 대지진의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센다에서 시작한다. <소년과 개>는 5년 간 이어지는 다몬의 여정을 그렸다. '남자와 개', '도둑과 개', '부부와 개', '매춘부와 개', '노인과 개', 끝으로 '소년과 개' 등 여섯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됐다.
센다이 공항 근처 장물애비의 심부름꾼 역할을 하며 근근이 살아가던 가즈마사는 편의점 앞에서 다몬을 발견하면서 이야기는 출발한다. 각 편에서 등장하는 사람들은 다몬을 자신의 삶 또는 죽음, 희망 또는 절망을 지켜봐주는 수호신처럼 여기게 된다. 한편으로 그들은 다몬의 행복을 진심으로 기원하는 조력자가 된다.
다몬과 함께 하는 행운을 갖게되는 남자, 도둑, 부부, 매춘부, 노인, 그리고 소년은 모두 과거 개와 인연이 있던 사람들이다. 또 치매 걸린 어머니, 고향에서 자신을 기다릴 누나, 무책임한 철부지 남편, 죽이고 싶은 동거남, 췌장암으로 먼저 떠나보낸 부인을 둔 힘들고 고단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현실에서의 고통과 미래의 희망을 다몬에게서 발견한다.
"너희들의 마법은 사람을 웃음 짓게만 하는 게 아니구나.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사람에게 용기와 사랑을 주는구나." 다몬을 통해 사람은 느꼈다. 자신의 삶을 부정하고, 혐오하고 있던 그들은 다몬으로부터 존재의 가치를 새롭게 생각하게 된다. 그러하기에 다몬의 말없는 시선은 따뜻하면서도 시린 감동을 전해 준다.

센다이부터 니가타, 시가, 교토를 거쳐 구마모토까지 다몬은 한 명의 사람을 향해 달려 간다. 절대 무리하지 않고, 절대 조급하지 않지만 묵묵히 자신의 길을 떠난다. 레오, 클린트, 툼바, 노리쓰네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고 가이토, 쇼군, 마사카도와 같이 이미 세상에 없을 개를 기억하는 사람들을 위로하면서. 어떤 이름을 갖게 되건, 어떤 사연을 가진 사람이건 다몬은 그저 한 곳을 바라볼 뿐이다.
그래서 다몬은 누군가의 개면서도 누군가의 개가 아니다. 다몬으로 존재한다. 사냥개를 잃은 아이치는 얼마남지 않은 자신의 생을 짐작하면서 다몬을 두고 "사람이라는 어리석은 동물을 위해 하느님 또는 부처님이 보내 준 생명체"라고 표현했다.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사람에게 다가와 준다. 이런 동물은 또 없다"는 그의 말은 옳겠다.
하세 세이슈는 <소년과 개> 서문에서 "바람직한 사람과 개의 모습을 담으려 노력했다"고 밝혔다. 바로 이기적인 사육과 지배가 아닌 배려와 공존의 가치를 설명코자 했을 것이다. 소년을 만난 개, 개를 만난 소년은 행복했다. 그들이 겨우 찾은 행복은 동거의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된 인연에 있었다.(*)
* 문화충전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