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와 잠수복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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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오쿠다 히데오(奥田英朗)가 그려낸 사람냄새는 '코로나 블루'를 날려버리기 충분했다. 다섯 단편이 묶어진 <코로나와 잠수복(コロナと潜水服)>은 오쿠다 히데오 특유의 경쾌한 유머와 따뜻한 인간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중년 작가, 힘없는 직장인, 욕심과 질투 사이에 방황하는 여성, 코로나로부터 가족을 지키려는 아버지, 꿈꾸던 애마를 갖게된 아저씨 등 어쩌면 평범할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다섯 편의 이야기는 저마다 신비하고도 놀라운 사연을 담고 있다.




정신과의사 이라부의 엉뚱한 활약이 돋보이는 단편집 <공중그네(空中ブランコ)>가 연상될 정도로 가득한 재미 속에 간결한 메시지를 던진다. <코로나와 잠수복>에 담긴 이야기는 영혼, 유령 등 신비감을 갖는 매개가 등장하면서 조금은 더욱 멋진 동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바닷가의 집(海の家)'은 아내의 외도를 알게된 중년 작가가 집을 떠나 오랜 고택을 빌려 살게 되면서 겪은 미스터리한 사연을 담았다. 짧게 빌린 곧 철거될 집에 애정을 갖게된 작가는 '쿵쿵쿵' 집안을 뛰어다니는 어린 남자아이-남자로 느껴진- 소리에 반응하게 되고, 가족의 의미를 되찾게 되는 스토리다.


"어쩐지 스위치가 켜진 느낌이랄까."


회사에서 퇴물 취급을 받아 퇴직 압박을 받는 남성들이 사연이 그려진 '파이트 클럽(ファイトクラブ)'. 공장의 방범 보조 등 허드렛일이 주어진 그들이 권투라는 스포츠의 매력에 빠지면서 새로운 활력을 얻게 된다. '바닷가의 집'과 마찬가지로 무기력하던 남자들의 변화가 잔잔한 감동을 불러 일으킨다.




장래가 유망한 프로야구 선수를 애인으로 둔 여성의 내면을 다룬 '점쟁이(占い師)'편은 보다 신랄한 풍자의 느낌이 강하다. 남자친구가 잘나가면 다른 여자에게 빼앗길까 질투심에 바둥거리고, 남자친구가 바닥을 치면 불안한 미래를 걱정하며 흥미를 잃어버리는 주인공. 남자를 통해 '신분상승'을 노리던 한 여성을 비판한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면서 또 다른 나와의 대화에 집중하기까지 변덕의 심리가 재미있다.


'판다를 타고서(パンダに乗って)'는 <코로나와 잠수복>에 실린 단편 가운데 개인적으로는 가장 따스한 기운을 전해준 사연이다. 여기서 '판다'는 우리가 잘아는 귀여운 동물이 아니라, '피아트 판다'라는 자동차 모델이다. 출시된지 무려 30년이 지난 '판다'를 기어코 찾아내 중년의 꿈을 이룬 주인공이 자동차를 인수하면서 겪게 되는 신기한 경험을 다뤘다. 오랜 인연의 깊이를 느끼며 그 시절의 시간을 회상하게 한다.




그리고 표제작인 '코로나와 잠수복(コロナと潜水服)'. 팬데믹으로 인한 위기로 불황이 닥치고, 사람들의 불안과 공포가 강하게 늘어난 것은 일본역시 마찬가지. 그 속에서 주인공은 코로나로부터 가족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코로나 위험을 직감하는 능력을 가진 아들, 뱃속에 둘째를 가진 아내를 위해 주인공은 방호복 대신 잠수복을 마다하지 않는다. 가족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등에 땀이 차고, 숨이 가빠지는 것 따위는 별 일 아니다. 잠수복을 입고 거리에 나선 그는 '화제의 인물'이 되기도, '수상한 인물'이 되기도 하지만 결국 '위대한 가족의 승리'를 가져오는 주역임은 분명하다.


이 시기애 오쿠다 히데오의 새로운 작품을 만나게 된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우울하고 답답한 현실을 그처럼 유쾌하고 발랄하게 해석해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코로나와 잠수복>에서 다시 확인할수 있다.(*)


*리뷰어스 클럽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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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을 얻은 개 - 진정한 자신을 만나는 이야기
도네 다케시 지음, 강소정 옮김 / 21세기문화원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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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네 다케시(刀根健)의 <깨달음을 얻은 개(さとりをひらいた犬)>의 부제는 '진정한 자신을 만나는 이야기(ほんとうの自分に出会う物語)'다. 설명처럼 책은 사냥개 존이 지금까지의 삶에서 벗어나 진짜 자신, 진짜 자유를 찾아 떠나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너는 무엇인가?"


존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주인 '매의 깃털', 사냥개 동료들과 함께 사냥터로 나섰다. '탕'하는 소리와 사냥감을 쫓아 나선 존. 쓰러져있던 늑대 나르샤와의 만남은 '사냥개로서 길러지던' 존을 바꿔 놓는다. 나르샤가 던진 그저 생존하고 있는 지, 정말 살아있는 건지 근원적인 질문은 현재와 미래의 경계가 된다.


이제 '영혼의 소리'에 따라 진정한 자신과 진정한 자유를 이해하는 자만이 도달하는 장소 '하이랜드'를 향해 길을 나선 존. 늑대와 들개, 부엉이, 불곰, 여우와 쥐 등 존의 깨우침을 위한 여행의 길잡이와의 만남을 이어가며 자신의 모습을 일깨운다.




<깨달음을 얻은 개>는 동물의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거나, 인간을 묘사하는 소설이 아니라 사냥개 존의 여정을 통해 삶의 의미에 관한 메시지를 전하는 우화소설 또는 고독한 구도(求道)소설로 읽힌다. 자본주의의 개가 아닌 주체적인 삶을 찾는다는 해석까지는 과할 것 같다.


폐암 말기를 선고받은 저자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자기 자신을 철저히 되돌아보는 중대한 전환기를 마련하게 됐다고 한다, 진정한 나를 찾아 멀고도 험한 여행을 거친 '내면 기행'의 산물이라는 역자의 설명에 따르면 존은 저자 자신이 투영된 주체일 수도 있겠다.




"진짜 중요한 건 '어떻게 살았나'이다. 죽는 순간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질문을 받는 순간이다.  그것뿐이다."

-흰색 늑대 게트릭스


하이랜드를 향해 나아가며 존은 육체와 자아(에고), 영혼의 차이를 깨닫고 공포와 불안을 극복하는 과정을 터득하게 된다. 삶과 죽음 속에 잊지 말아야할 가치, 그리고 사랑으로 넘치는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 그것조자 우주와 조화를 이루도록 영혼을 키우는 길.


모든 것이 새롭고, 모든 것이 아름답고, 모든 것이 진실이고, 모든 것이 자유이고, 모든 것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음을 깨닫는 순간 존은 알게 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나였다'는 것을. 위대한 존재, 존과 그의 여정이 <깨달음을 얻은 개> 자체다.(*) 


* 컬처블룸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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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한 과부들을 위한 발칙한 야설 클럽
발리 카우르 자스월 지음, 작은미미 외 옮김 / 들녘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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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 스리 아칼."


그녀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솔직하다. 고유의 문화를 존중하고, 가족을 사랑하고, 환경에 순응하며 성실히 살아가는 그녀들을 향한 억압과 통제, 그리고 야만적인 차별이 역했을 뿐이다.


발리 카우르 자스월의 <정숙한 과부들을 위한 발칙한 야설 클럽>은 영국에 살고 있는 인도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다. 원제는 '펀자브 과부들을 위한 에로틱 스토리(Erotic stories for Punjabi widows)'다. 우리말 제목이 책과 아주 잘 어울린다.


펀자브 출신이지만 독립적이고 자유분방한 삶을 원하던 니키는 부모님이 기대하던 법과대학을 중퇴한 뒤 펍에서 일하고 있다. 전통적인 규율 속에 어머니와 살고 있던 언니 민디는 어느날 니키에게 신랑감을 구하기 위해 사우스홀 사원 게시판에 자신의 프로필을 붙여줄 것을 부탁한다. 사우스홀은 펀자브 사람들의 모여 사는 마을이다.


'중매결혼은 여성이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권리를 망쳐놓는 결함있는 제도'라고 생각하던 니키는 언니의 부탁을 마지못해 받아들이고, 사우스홀로 향하게 된다. 우연히 발견한 '여성을 위한 글쓰기 강좌' 교사 모집 공고. 니키는 새로운 직업에 도전하면서 의도치 않게 '발칙한 야설 클럽'이 시작하게 된다.


"인도에서 우린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에요."

"영국에 있다고 해도 다르지 않아. 우린 이런 것들을 생각해서도 안 되는 사람들이니까."


학생들은 전부 과부다. 이유와 사정은 다르지만 어찌됐건 남편이 없는 여성들은 하나둘 니키의 교실로 모여 들고. 인도와 영국, 펀자브어와 영어,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 방황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 진다.


'남자와 전통'의 눈을 피해 과부들이 풀어놓는 거침없는 '야설'이 외설적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을 눌러왔던 부당한 억압과 통제가 더욱 도드라져 보일 분이다. 어디서도 출판된 적이 없는 그들의 이야기가 복사, 스캔되어 이메일과 팩스로 런던 구석구석으로 흘러 들어가게 되면서 니키와 과부들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정숙한 과부들을 위한 발칙한 야설 클럽>은 제목처럼 경쾌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 속에 이민자의 서러움이 숨어 있고, 지금까지도 심심찮게 뉴스에 올라오는 '명예 살인'이라는 무자비함에 대한 문제의식이 제기된다. '책 속의 책'과 같은 야설클럽의 이야기, 마야라는 여성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가 책의 몰입도를 더한다.


"난 아무것도 망치지 않아." 니키와 펀자브 과부들이 당당히 자신을 표현하고, 진실을 찾아내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과정이 멋스럽다. 그들의 '야설클럽'으로 인해 온 세상이 '무해한 흥분'으로 가득찰 것이라는 상상을 응원할 수밖에.(*)


*컬처블룸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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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증인 - The Last Witness
유즈키 유코 지음, 이혁재 옮김 / 더이은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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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반전이 오히려 차분한 느낌을 주는 아이러니. 진실을 밝혀내는 것만이 정의는 아니라는 메시지가 통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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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증인 - The Last Witness
유즈키 유코 지음, 이혁재 옮김 / 더이은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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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밝혀내는 것만이 정의는 아니다."


유즈키 유코(柚月裕子)의 <최후의 증인(最後の証人)>은 한 호텔에서 스테이크 나이프로 대립하고 있는 남녀의 장면으로 시작한다. 살인사건의 현장이다. 검사복을 벗고 변호사로 등장하는 사가타는 이 사건의 진실, 그 바닥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원인을 찾아 나서게 된다.




변호사 사가타가 사건을 받아들이는 기준은 남다르다. 보수나 승소 가능성이 아니라 '사건이 재미있느냐, 없느냐'에 따른다. 재미있는 사건이란 검찰이 쉽게 간파할 수 있는 단순 범죄가 아니라 속으로 들어가면 들어갈 수록 새로운 얼굴이 드러나는 사건을 뜻한다.


무언가 속 시원하게 밝혀지지 않는 복잡한 감정과 사정이 감춰진 사건. 피고인을 불리하게 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진실을 규명한다는 것이 사가타가 세워둔 원칙이다.




의사 다카세와 그의 부인 미쓰코는 하나 뿐인 아들 스구루를 잃었다. 어느 비오는 날 평소와 같이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스구루는 만취한 운전자가 몰던 자동차에 치어 그 자리에서 세상을 등졌다. 그러나 가해자는 혐의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을 받게 되고, 부부의 원한은 점점 깊이를 더해 간다.


"아무도 죄인을 벌하지 않는다면 내가 죄를 처벌하는 사람이 되면 된다. 죄를 저지른 자는 처벌 받아야 한다. 그게 바로 평등이란 것이다. 그것이 사회질서를 지키고, 우리를 지켜준다"-쇼지 검사


"왜 그 죄가 저질러졌고, 왜 그 인간이 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는지를 밝혀내지 않는다면 진정한 의미에서 죄를 재단할 수 없다. 물 위에서 치는 파도만 보는 것으론 부족하다. 바닥까지 파고 들어가 파문을 일으킨 원인을 찾지 않는다면 죄에 대한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없다."-재판장




<최후의 증인>은 후반부 엄청난 반전을 마련해뒀다. 부부의 복수심이 달려간 마지막은 충격적이다. 사가타 변호사와 쇼지 검사의 진검 승부. 치열한 법리공방과 심리게임의 결말은 '인간이 짓는 죄'를 판단함에 있어 간과해선 안될 주요한 무언가를 지적한다. 


그래서 다시금 기억해낸다. "진실을 밝혀내는 것만이 정의는 아니다."는 <최후의 증인>이 주는 메시지의 숨은 의미를.(*)


*리뷰어스 클럽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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