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롯의 거미줄 시공주니어 문고 3단계 35
엘윈 브룩스 화이트 지음, 가스 윌리엄즈 그림, 김화곤 옮김 / 시공주니어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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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롯의 거미줄이라는 책이 나왔다는 신문 기사를 보고 탄성을 질렀다. 유난히 책을 좋아했던 어린 시절, 시험 잘 봤다는 상으로 청계천의 헌 책방에서 골라잡았던 보물이 바로 이 책이었다. 어린시절, 심심해서 '내가 추천하고 싶은 책'의 목록이라도 작성할 때면 절대 빠지지 않았던 게 '프란다스의 개',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그리고 '샬롯의 거미줄'이었다. 이 세 권의 책은 나를 눈물 때문에 페이지를 못 넘기는 상황으로까지 몰아넣었던 경력을 가지고 있다.

다른 두 권에 비해 '샬롯의 거미줄'은 전반적으로 굉장히 명랑한 분위기를 띄고 있다. 각 종 동물들이 나누는 유머러스한 대화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그 명랑함 때문에 마지막 장면이 더욱 슬펐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20대 중반이 되어버린 지금 이 책을 다시 읽는다면 나는 과연 예전처럼 웃고 울 수 있을까 싶다. 고등학교 때 문학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면 어떤 책은 특정한 시기에 읽어야만 그 참 맛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이 글을 읽는 이들 중 아직 촉촉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는 이가 있다면 더 늦기 전에 샬롯의 거미줄을 꼭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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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영웅전설 6 - 비상편 은하영웅전설 6
다나카 요시키 지음, 윤덕주 옮김 / 서울문화사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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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 밤을 세워가며 읽었던 책이다. 지금 다시 읽으라고 하면 솔직히 유치하다는 느낌이 없지 않겠지만 최근 횡행하는 터무니없는 내용의 무협지, 엉터리 환타지물 따위와는 결코 견줄 수 없는, 상당히 잘 쓴 작품이다.

이 책에서의 대결구도는 은하제국과 자유행성동맹 둘인데도 항상 SF삼국지라 불리곤 한다.(출판사 측에서도 광고 차원에서 그렇게 선전하고 있다.) 아마 삼국지의 장대한 스케일에 비유하느라 그런가보다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다나카 요시키가 이 작품을 쓰며 전체적인 골격을 삼국지에서 빌려온게 틀림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결코 놓쳐서는 안되는 것이 지구교도와 페잔의 존재다. 라인하르트와 양 웬리의 카리스마에 혹한 사람들은 지구교도와 페잔을 스토리상에 나오는 잔챙이로만 여기고 있지만 사실 이들이야말로 은영전을 진정한 SF삼국지로 만들어주는 제 3의 주인공인이다.

은영전의 각 국가를 삼국지의 나라에 대입해보자면

은하제국 - 위,
자유행성동맹 - 오,
페잔(지구교도) - 촉이 된다.

① 삼국지에서의 촉은 이미 무너져버린 한나라의 부흥을 외치는 보수집단이었다. 페잔의 실질적인 배후세력인 지구교도 역시 마찬가지다.

② 삼국지에서의 위나라는 사마염에 의해 찬탈되어 진나라가 성립하고 실제로 삼국을 통일한 것은 위를 계승한 진나라였다. 골뎀바움 왕조의 은하제국은 라인하르트에 의해 찬탈되어 로엔그람 왕조가 성립하며, 전 우주를 통일하는 것은 결국 로엔그람의 은하제국이다.

③ 은하제국의 쌍벽이라는 로이엔탈과 미터마이어의 숙명적인 대결은 삼국지의 등애와 종회를 연상케 한다.

④ 얀 웬리 사후의 후계자가 되는 율리안은 제갈량의 유지를 잇는 강유를 연상케 하는 측면이 있다.

머리가 굵어진 대학생이 읽기엔 세계관이 지나치게 단순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중,고등학생이 읽기엔 이만한 읽을거리도 없다는 생각이다. 은영전의 캐릭터들이 내뿜는 매력은 책을 읽은 지 10년이 넘은 지금도 가슴을 설레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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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의 진자 1 - 개정판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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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1학년 때 친구녀석이 등하교 할 때마다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것을 본 게 <푸코의 진자>와의 첫 만남이었다.(그 때는 <푸코의 추>라는 제목이었다.) 수학 내지는 과학관련 서적인가보다 하고 무심히 넘어가고 나서 얼마 후, 우연히 <장미의 이름>을 읽게 되었고 그제서야 비로소 <푸코의 진자>가 움베르트 에코라는 사람이 쓴 소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가난한 학생 신분이었던터라 <장미의 이름>이나 <푸코의 진자>나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지만 개정판이 나오자 결국은 앞 뒤 안가리고 구입해버렸다.

<장미의 이름>이 그렇듯이 <푸코의 진자>도 여느 소설 읽듯이 흥얼거리며 죽죽 읽어 내려가는 그런 책이 아니다. 에코는 읽는 이가 질려버릴 정도로 자신의 박학을 책장 이곳 저곳에 토해버렸다. 사람에 따라 짜증이 날 수는 있겠으나 이 점이야말로 에코 소설의 매력이 아닌가 생각한다. 모르면 모르는 대로 읽으면 그만이다. 유난히 학구적이고 부지런한 성격의 사람이 있어 책 이곳저곳에서 등장하는 낯선 용어, 성단 기사단에 대해 일일이 공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좋을 것이요, 성단 기사단 따위에 흥미가 없다면 대략적인 줄거리만 따라가도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 같은 경우 책을 읽으며 가장 집중했던 부분은 3인방 중 언제나 자신의 비겁함에 자괴감을 가지고 산다는 점에서 공감대가 느껴지는 벨보라는 인간과 자신들이 만들어낸 관념과 환상의 포로가 되어 되려 그것으로 현실의 가치를 판단하고 지배하려드는 인간들의 성향에 대해서였다.

벨보는 자신이 어렸을 때 이미 현실에 당당하게 맞선 경험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채
자신의 비겁함에 대한 수치심을 껴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의 생애 마지막 순간, 죽음까지 동원된 위협에 당당하게 맞서며 장엄한 상징으로 거듭나지만 그는 이미 그 전부터 수치심의 노예가 될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그릇된 믿음 때문에 실존하는 자신에게 무의미한 자학을 가했다는 점에서 그 역시 자신을 살해한 미친 신비주의자들과 똑같은 함정에 빠졌다고 할 수 있다.

중세의 호르케 수도사는 '광신'이라는 병에 걸려있었고 성단기사단의 후예랍시고 결성된 트레스 단원들은 까소봉, 벨보, 디오탈레비가 창조해낸 환상에 중독되어 있었다. 즉, 그들은 자신들이 믿고 싶은 것만을 굳게 믿고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믿고 사는 걸까. 그리고 그 믿음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이며 과연 정당한 것일까? 혹시 우리는 우리가 창조한 것들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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콧수염
엠마뉘엘 카레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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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내내 불안함, 더 나아가 불쾌감을 느껴야했다. 해도 너무한다. 자신의 책을 사준 독자들을 이렇게까지 괴롭혀도 되는건가. 믿을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작가는 바로 앞에서 주인공이 행했던 행동들을 행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우긴다. 주인공만 미쳤다고 하는게 아니라 주인공의 행적을 따라가고 있는 독자들까지 정신병자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도대체 독자들에게 무슨 죄가 있는가. 죄가 있다면 신문서평에 혹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사읽은 죄밖에 없다. 그 대가가 이렇게 참혹한 것이라니!

어렸을 때 모파상의 단편들을 읽고 공포에 떨었던 경험이 있다. 모파상의 단편이 무서운 이유는 괴물이나 귀신이 튀어나오기 때문이 아니다. 당장 오늘저녁에라도 나에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일이다 싶은 기분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런게 미친다는 거로구나 하는 기분을 철저하게 가르쳐준다. 식스 센스의 브루스 윌리스가 자신이 유령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미친 사람은 자신이 미쳤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 점이 이 책을 읽는 이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더구나 한 명의 미쳤는지 안 미쳤는 지 헷갈리는 사람 하나가 최후로 행하게 되는 행동, 소설의 마지막 6페이지에 걸쳐 묘사되는 행동은 신문서평에 나와있는 '냉혹하다'는 따위의 표현으로는 충분치 못한 소름끼치는 장면이다.

이제 이 책을 책장 구석에 꽂아놓고 읽지 않을 생각이다. 내 신경은 이 책이 던져주는 충격을 다시 견뎌낼만큼 굵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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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백제 신라는 한반도에 없었다
정용석 / 동신출판사 / 199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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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이 책의 서평을 써야하는가 하는 망설임이 적지 않았다. 서점에는 미안한 일이지만(특히 서평 쓰는 란을 마련해준 알라딘측)이런 책이 계속 팔린다는 건 문제가 있다는 생각에 자판을 두드린다.

이 책의 정체는 한마디로 말해서 '이성을 상실한 쇼비니즘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자기중심적인 음모론으로 일관되어 있다. 내용은 지극히 간단하다. 우리 민족은 원래 중국 대륙에 자리잡고 있던 비할데없이 위대한 민족이었는데 타민족에 의해서 한반도로 밀려났고 역사마저도 왜곡당해 처음부터 한반도에서 살았던 것처럼 집단 기억상실증에 걸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이 책은 소설이 아니다.(소설로 나왔더라도 유감이긴 마찬가지였겠지만)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역사서적'다. 최소한의 논리성이라도 갖추었다면 도저히 나올 수 없는 무책임한 주장들이 곳곳에 포진해있다. 내가 읽어본 중 손꼽히는 악서, 졸서라고 감히 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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