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관함에 담기는책들은 거의 일정하다.
감성을 자극하는것 보다 행동하게 하는 책 위주로 시집이 가장 많고, 다음으로 여행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지난 토요일 동네서점엘 갔는데 눈에 띄는 책들은 표지디자인과 마음에 드는 제목 혹은 카피순이었다. 내용이나 저자는 상관없었고 일단 눈길을 끄는 책에 손이 먼저 갔다. 온라인이 표지에 무관심한 반면 오프라인은 달랐다.

길에는 먼저 간 사람의 자취가 있다 - 고은의 세상이야기
사색기행 - 나는 이런 여행을 해 왔다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사람 풍경  김형경 지음
기적의 도서관 학습법

 

얼마 전에 대학 친구와 이야기 나누던 중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얘, 난 마흔이 넘어도 마음이 이럴 줄 몰랐어."
나는 친구가 말한 ‘이럴’는 의미를 한순간에 확연히 공감할 수 있었다. 우리가 이십대의 미숙과 혼돈을, 삼십대의 현실 적응 노력과 무력감을 서로 지켜보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는 이제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그와 같으며, 그 마음이 죽는 순간까지 계속될 수도 있음을 짐작한다.
"얘, 나는 예순이 되어도 마음이 그럴 거라는 사실이 더 그래."
우리는 '이럴'이나 '그럴'에 내포된 의미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서로 공감하는 시선을 나누며 웃었다.
마흔으로 넘어서는 고개에서 그런 '마음' 때문에 외국 여행을 했다. 누구나 하는 여행인데 다소 화제가 된 것은 집을 팔아서 여행한다는 사실 때문인 듯했다. 내가 집을 판 것은 오직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는데 어떤 이들에게 그 일은 삶의 터전을 정리하는 듯 비장하게 들렸던 모양이다. 그것 역시 서로 다른 '마음'에서 비롯된 해석과 수용의 차이였을 것이다.

애초에 여행기는 쓰지 않을 생각이었다. 취재하는 일을 직업으로 갖고 있던 이십대 내내 내 소원은 관찰하거나 기록하지 않고, 활자화하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고 대상과 만나고 싶다는 것이었다. 오감을 열고 어떤 사람이나 사물을 온전히 받아들일 때 온몸과 마음에 전해지는 감각과 감정들을 느껴보고 싶었다. 여행은 바로 그 소원대로 진행되었고 나는 아무것도 기록하거나 기억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책을 쓰게 된 것 역시 '마음' 때문이었다. 마음 속에서 수런거리는 것들을 한번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이십대 중반부터 정신분석과 심리학 책을 읽어온 마음, 생의 한 시기에 정신분석을 받았던 마음, 그 뒤 끝에 여행을 떠났던 마음들이 이 책을 계기로 일단락지어진 듯하다.
책을 쓰는 동안 비전문가로서 배타적 전문 영역을 침해하는 듯한 ‘마음’이 있었다. 그런 마음 때문에 전문 분야에 대해 언급할 때는 책의 출전을 밝히고 직접 인용하는 방식을 택했다. 따옴표 속에 들어 있지 않더라도 전문 개념들은 <정신분석용어사전>, <융 분석비평사전>, <라캉 정신분석사전> 등 세 권의 책에서 인용했음을 밝힌다.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이 서로 잘 소통되지 않고, 각 학문 분야 내에도 여러 학파들이 존재하면서 서로 다른 이론을 주장한다고 알고 있다. 비전문가로서 편리한 점은 그들의 주장이 어떤 것이든 간에 ‘마음’에 드는 대로 내 것으로 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 점, 모든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감사드린다. ( 사람 풍경  저자의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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