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저녁 뜻밖에도 이 시가 생각났다.
어릴적 집에 하나쯤은 있었던 흔하디 흔하게 만들어 버린 이 시가
조용히 한번 외워 보았다.

좋은 시는 누구에게나 암송되어지고 긴 생명령을 갖는 것 같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
우울한 날들을 견디면 :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Should This Life Sometime Deceive You..." 1825

Should this life sometime deceive you,
Don't be sad or mad at it!
On a gloomy day, submit:
Trust -- fair day will come, why grieve you?

Heart lives in the future, so
What if gloom pervades the present?
All is fleeting, all will go;
What is gone will then be pleasant.

 

갑자기 생각 난것처럼 이 시인의 삶이 궁금해져서 서치를 해봤다.
안다고 생각만 했을뿐 정말은 모르고 있었다.

* 푸쉬킨의일대기
1799년 5월 26일, 모스크바의 니에메쓰카야 가(街)(현재의 바우만 가)에서 탄생.
1811년 8월 12일, 뻬쩨르부르크 교외, 짜르스코예 셀로에 창설된 학습원에 입학.
1814년 7월 4일, 『유럽통신』지 13호에 시「친구인 시인(詩人)에게」를 발표.
1815년 1월 8일, 학교 진급시험에서 자작시「차르스코에 셀로의 회상」을 낭독, 당대의 대시인 제르자빈의 격찬을 받다.
1817년 6월 9일, 학습원 졸업. 6월 외무성 8등관에 임명. 9월 문학서클‘알자마스’회에 가입.
1819년 7월 농노제의 참상을 노래한 시「농촌 마을」을 쓰다.
1820년 3월, 학습원 시대에 쓰기 시작한 최초의 서사시「류드밀라와 루슬란」완성. 뻬쩨르부르크 총독에게 혁명적 정치시의 건으로 소환, 신문을 당하다. 5월 6일, 남러시아로 추방. ‘자유애호’의 정치시를 퍼뜰린 혐의.
1822년 8~9월, 「카프카스의 포로」간행.
1823년 5월 9일, 운문소설[예브게니 오네긴]을 쓰기 시작하다. 7월 3일 오데사로 전근.
1824년 3월 10일, 장편시「바후티사라이의 천수(泉水)」간행. 6~7월, 콘스탄티노플을 거쳐 국외로 탈출을 계획. 7월,시「바다에」.알렉산드르 1세의 명령으로 미하일로프스코예 촌(村)으로 추방됨. 11~12월, 다시 국외 탈출을 계획.
1825년 2월 15일,「예브게니 오네긴」제1장 간행. 장편시「집시」완성. 11월7일,「보리스 고두노프」완성. 12월 13~14일,서사시「누린 백작(伯爵)」을 쓰다. 12월30일,「알렉산드르 푸쉬킨 시집」간행.
1826년 1월 3~4일,「예브게니 오네긴」제4장 완성. 8월 27일, 니콜라이 1세, 푸슈킨을 모스크바로 소환. 9월 8일, 모스크바 도착.「예브게니 오네긴」제3장 간행.
1828년 1월,「예브게니 오네긴」(1825)에 관한 사건으로 푸쉬킨에게 비밀 감시가 붙다. 8월 3~5일, 무신론적 서사시「가뷔리아드」(1821)에 관해 뻬쩨르부르크 총독의 신문을 받다.
10월 2일, 니콜라이 1세에게 서한을 올려「가뷔리아드」의 작가임을 고백.
11월 4일,「예브게니 오네긴」제 7장 완성.
1829년 3월 27일,「뽈따바」간행. 5월 27일,「알렉산드르 푸쉬킨 시집(詩集)」제1부 간행.
6월 26일,제2부 간행.
1830년 3월 11일, 잡지「북방의 밀봉」에 브르가린이 푸쉬킨 비방문 게재. 이때부터 푸쉬킨의 공격이 시작되다. 5월 6일, 나탈리아 콘챠로바와 약혼.
9월9일,「장의사(葬儀社)」,14일,「역장(驛長)」완성. 20일,「가짜 농부 딸」,25일,「예브게니 오네긴」제9장을 쓰다. 이것으로「예브게니 오네긴」제10장을 소각. 20일,「눈보라」완성. 23일,「인색한 기사(騎士)」,26일,「모차르트와 살리에르」완성,
11월4일,「석상(石像) 손님」완성.
12월22~23일,「보리스 고두노프」간행.
1831년 2월 18일, 나탈리아 콘챠로바와 결혼. 5월27일,벤켄도르프에 신문 발행을 신청했으나 거부당함. 9월13일,「사제(司祭)와 그 하인 바르다의 이야기」완성. 11월14일, 외무부에 들어가다. 11월,「베르킹 이야기」간행.
1832년 1월 10일, 헌병 사령관으로부터 모든 작품을 집필할 때마다 검열을 맡을 것을 명령받다.
1월 말,「예브게니 오네긴」마지막 장 간행. 5월19일, 장녀 마리아 출생.
1833년 1월 7일, 러시아 아카데미 회원이 되다. 1월31일,「대위의 딸」을 기고(起稿). 2월19일, 장편시「코롬나의 오두막」간행. 3월 25일,「예브게니 오네긴」전장 처음으로 함
7월6일,장남 알렉산드르 출생. 10월14일,「어부와 물고기 이야기」
24~27일,「안젤로」. 30일,34세로서「연소 시종」에 임명되다.
1834년 1월 17일, 푸쉬킨의 부인 궁중(宮中)에 소개되다. 3월 1일,「스페이드의 여왕」발표(1833년 말~34년 초의 작품). 8월,「알렉산드르 푸쉬킨 이야기집」간행.
9월 2일,「금계(金鷄)」를 쓰다. 11월,「푸가초프 반란사 (反亂史)」간행.
1835년 3월 1일,「서부 슬라브인의 노래」간행. 4월12일,차남 그레고리 출생. 6월1일, 재정적 애로를 타개키 위해 3·4년간 시골에서 살고 싶으니 허가해 달라는 서신을 베켄 도르프에게 냈으나 니콜라이 1세 허가치 않음.
7~8월, 정부 대여금 3만 루블을 받다.
1836년 3월 29일, 어머니 사망. 4월,「금계」간행. 4월11일,푸쉬킨의 개인 잡지『소브레멘니크} 제1호를 발간. 5월23일 차녀 나탈리아 출생. 10월19일,「대위의 딸」완성,『소브레멘니크』제4호에 전재(全載). 11월4일,‘오쟁이 진 사나이’라는 비방문을 받다. 11월5일,아내에게 구애(求愛)하는 러시아 군(軍)근무,망명 프랑스인 단테스에게 결투를 신청. 11월6일,양부(養父)인 홀란드 공사(公使)헤켈른이 푸쉬킨을 방문,결투 15일간의 연기. 2월 13~14일,단테스가 처형 예까쩨리나와 결혼할 의향이 있다는 것을 알고 결투신청을 철회. 2월16일,재차 결투를 신청.
11월17일,주선인끼리의 타협으로 재차 철회.
1837년 1월 10일, 단테스,푸쉬킨의 처형 예까 쩨리나와 결혼. 그 후도 단테스는 노골적으로 아내에게 구애함. 1월26일,푸쉬킨,헤켈른에게 모욕적인 서신을 보내자 이번에는 단테스가 결투를 신청. 1월27일,하오 4시 반 결투. 푸쉬킨 치명상을 입다.
28일,빈사의 푸쉬킨은 아내,자식,친구들과 고별. 29일 하오 2시 45분 사망.
2월 1일, 교회에서 장례식. 정부는 일반 민중의 참열을 금지하는 동시에 과격한 추도 기사를 못쓰게 언론기관에 명령. 2월5일,유해는 헌병들에 의해 스바야트 골스키 수도원으로 옮겨, 2월6일 새벽에 매장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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