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도서출판 개마고원 블로그(http://blog.naver.com/kaema1989/220824787085, 2016년 9월 30일)에서 원본 복원 후 재등재한 것임.
 

프로바둑 기사들의 해설에 '돌의 체면'이라는 말이 가끔 등장한다. 착점을 잘못했다는 판단이 설 경우에도 자신의 그 착점이 잘못됐다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어 그 잘못된 착점의 의미를 살리는 방향으로 다음 수를 계속 두는 경우를 설명할 때 등장하는 용어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늪에 한 발을 잘못 내딛은 사람이 그 한 걸음의 체면을 살리기 위해 다음 한 걸음을, 나아가 계속 다음 발걸음을 내딛는 결과를 상상하면 충분할 것이다.
 
프로바둑 기사라는 최고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이 왜 이런 오류에 빠지는 걸까? 그들 프로바둑 기사들은 착점 하나 하나에 인생을 걸기 때문이다. 오류가 된 '인생의 낭비'를 쉽게 인정하기 힘든 것이다. 그래서 헛꿈을 꾼다. 인생의 실수가 된 그 악수를 오히려 묘수로 바꾸고 싶은 욕망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이제와 새출발을 한다 해도 승리는 기대하기 힘드니, 짐짓 모른 척하며 상대의 더 심한 악수를 기대하는 게 합리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해서일 것이다.
 
프로바둑 기사도 아닌 장삼이사들의 인생엔 '돌의 체면'을 살리려는 부질없는 욕망이 없을까? 예컨대 유신헌법에 찬성표를 던지고, 전두환의 정당을 지지하며 살았는데 그것이 잘못이었다는 것을 '발견'하는 역사의 시간이 왔을 때 우리는 순순히 과거에 착수했던 '돌의 체면' 포기할 수 있을까? 혹 어떻게라도 악수를 묘수로 돌변시키고 싶은 인생의 욕망은 작동하지 않을까? 왜 그러지 않겠는가? 나는 이렇게 썼다.

 

 

 

"영화 <26>에서 그 사람’[전두환] 경호에 목숨을 거는 마상렬의 대사가 노골적이다. “넌 죽으면 안 되지. 넌 끝까지 뻔뻔하게 잘 살아서 내 삶의 정당성을 확보해야 돼!” ‘그들은 자신들의 과거 인생을 스스로 단죄하는 상실감을 감당할 수 없다. 차라리 거꾸로 역사와 악착같이 싸우며 그 사람’[전두환]을 잘 먹이고 잘 살림으로써 상상된 보상을 받고 싶은 것이다." (<정치는 역사를 이길 수 없다> 48.)

 

나는 노년세대의 정치관에는 다분히 그런 요소가 스며 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래서 나는 (나를 포함해자신의 인생을 변명하고픈 인간적 욕망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관찰하며, 있는 그대로 비판한다.
 
나는 노년세대가 '돌의 체면' 살리려는 부질없는 욕망을 거두지 못하는 것처럼 친노세대가 그런 욕망의 추태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을 무자비하게 관찰하고 있다. 내 눈에 비친 그것은 더욱 위선적이고 파렴치한 방식의 답습이다하지만 역사가 골백번이 뒤바뀌어도, 박정희의 영남패권주의가, 전두환의 영남파시즘이노무현의 '영남패권주의에 투항한 지역주의 양비론'이 민주주의 역사 속에서 찬양받는 묘수로 뒤바뀔 가능성은 없다!
 
나는 친노세력을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돌의 체면' 살리려고 반민주주의의 늪으로 맹렬하게 돌진하는 무리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나로서는 놀라운 일이었는데겸허하게도 '돌의 체면'을 포기한 한 '느슨한 노빠' 독자를 발견했다. 예외적인 독자가 그뿐만은 아니겠지만 그런 독자를 발견하는 것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그의 다음 글을 추천한다. 그의 겸허한 성찰적 자세를 우리는 배워야 한다. 어쨌든 나는 이런 독자를 위해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http://blog.yes24.com/document/8469106

 

김욱, http://blog.aladin.co.kr/kimwook/8787053(원문), 2016년 9월 24일(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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