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도서출판 개마고원 블로그(http://blog.naver.com/kaema1989/2206237289372016년 2월 11일)에서 원본 복원 후 재등재한 것임.

 

 

나는 <영남민국 잔혹사>에서 페렝기라는 캐릭터를 소재 중 하나로 삼았다. 1966년 미국 NBC에서 첫 방송을 시작하여 이제는 기념비적 작품이 된 <스타 트렉(Star Trek)>에 나오는 페렝기(Ferengi)라는 외계종족이다나름 유명한 캐릭터다. 다음은 책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그들 페렝기족은 싸워도 될 일을 가지고 말로만 다투는 것을 가장 싫어하는 클링온Klingon족이나 머릿속이 인간적으로 복잡한 지구탐험대가 자신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누군가와 끊임없이 좌충우돌하는 장면에서 가장 짜증이 난다. (...) 페렝기족에겐 이익, 더 정확히 말하면 상업적 이익이 없는 행동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만약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자신들이 이익과 관련된 모종의 정보를 몰라 속고 있는 것이거나 아니면 그들이 미친 짓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이익이 있는 곳에 반드시 페렝기가 있으며, 이익이 없는 곳에 절대로 페렝기는 없다!"(21.)

 

나는 인간이 아무리 이해관계에 민감하다고 해도 '모든' 인간이 이익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경우에 따라서는 손해가 되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렇게 하거나 해야 할 때가 있다. 그게 인간이다.

 

한데 문제는 인간의 행동동기가 모호할 경우다 판단을 하는 건 생각보다 중요하다. 인간의 행동동기를 파악할 수 있어야 거기에 걸맞는 대응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의명분을 중시한 행동에 대해 이익추구의 관점에서 비난한다면 예의가 아니고, 이익추구의 행동임에도 불구하고 무슨 큰 대의명분이나 있는 것처럼 착각해 대우한다면 그 또한 낭패가 아닐 수 없다. 단순한 낭패가 아니라 인간사회의 공정한 질서를 어지럽히는 계기를 추가하는 것이다.

 

광주학살을 자행한 전두환 쿠데타권력의 국보위에 참여한 전력을 가지고 더불어민주당의 비대위원장이 된 김종인은 20161 22"지금까지 국보위 뿐 아니라 어떤 결정을 해 참여한 일에 대해 스스로 후회한 적 없다"(<연합뉴스>, 2016122)고 말했다하지만 이후, 5일이 지난 127"광주 분들께 굉장히 죄송하다"(<연합뉴스>, 2016127)며 공개사과했다.

 

흥미로운 일이다. 한 인간의 마음이 자신의 인생의 의미를 규정짓는 결정적 사안에 대해 단 5일만에 "스스로 후회한 적 없다""굉장히 죄송하다" 사이를 이렇게 쉽게 배회할 수 있을까? 페렝기라면 이 어려운 수수께끼에 대해 1초의 고민도 없이 간단히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신념표현은 이해관계의 사용설명서일 뿐이다!' 울대 교수 조국도 이렇게 거든다.

 

"안철수 주장처럼, 노무현은 현재의 더민주 상황에서 국보위 참여 전력을 이유로 김종인을 데려오지 않았을까? 노무현은 후보 시절 위기 상황에서 전격적으로 재벌 오너이지만 이회창의 경쟁자였던 정몽준과의 단일화 승부수를 던졌다노무현은 강고한 원칙주의자였지만 동시에 영리한 전략가였다김대중 역시 그러했다. 이들은 '사자'이자 '여우'였다정치인은 유연해야 하고 그것은 미덕으로 칭찬받아야 한다."(인터넷 <국민일보>, 2016120.)

 

<뉴스1> "오전엔 광주, 오후엔 봉하마을로 광폭 행보를 벌인 김 위원장에 대해 광주에선 격분과 반발을, 봉하마을에선 환대를 나타냈다"(<뉴스1>, 2016131)고 보도했다. 광주와 봉하 사람들의 다른 행동도 모두 각각의 이해관계에서 나온 각각의 페렝기적 행동일 뿐일까?

 

인간이 아무리 페렝기를 닮았다 하더라도 인간은 인간이다. 모든 가치판단을 그저 이해관계의 맹목적 포장이라고만 치부할 수는 없다. 만약 그렇다면 그건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페렝기 철학에만 아주 가까이 근접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인 나는 김종인에 대한 광주의 반발을 그저 가치맹목적인 이해관계의 표출이라고 보지 않는다.

 

다행히 김종인을 극구 옹호했던 조국은 국민의당 창당준비위원장 한상진의 '이승만 국부' 발언에 대해서는 인간적 태도로 가치판단을 명확히 했다. 이런 식이다.

 

"사실 어떤 이가 대한민국의 '국부'라 불리기 위해서는 그의 사상와 철학이 현재에도 계승해서 마땅한 사람이어야 하지 않겠는가."(인터넷 <국민일보>, 2016114.)

 

난 위 조국의 인간적 가치판단에 이의가 없다. 마찬가지로 국보위 전력이 있는 김종인이 당당하게 더불어민주당을 이끄는 것을 "미덕으로 칭찬"할 수가 없다. 내가 보기엔 김종인의 행적이나 한상진의 발언이나 둘 다 문제다. 굳이 더 심각한 문제를 꼽으라면 자신의 잘못된 개인적 역사관을 '표현'한 한상진의 발언보다 쿠데타 핵심과정인 국보위에 직접 '참여' 김종인의 행적을 선택하겠다. 그런데 가치판단을 하는 조국의 눈엔 한상진의 발언'' 문제인 것이다.

 

, 그러고 싶다니까 조국이 권하는 것처럼 김종인의 발탁'' '마키아벨리즘'이라고 일단 이해해보자. 그런데 여기서 사정이 바뀐다면 그의 마키아벨리즘은 어떻게 될까? 즉 만약 국민의당에서 김종인을 당대표로 앉히고. 더불어민주당의 비대위원장이 된 한상진이 '이승만 국부' 발언을 했다고 하자. 이 상황에 대해 조국은 뭐라고 했을까? 국민의당의 김종인을 '마키아벨리즘'으로 이해하고, 더불어민주당의 한상진에 대해서만 이해할 수 없다고 했을까? 그의 지금까지의 당파적 태도로 미뤄보건대 상상이 가질 않는다.

 

물론  가정은 실험실의 상황이 아니므로 단언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난 조국의 가치판단을 맹목적 당파성에서 떼내 따로 생각할 수가 없다.

 

사실 페렝기는 인간으로부터 천박하다는 조롱을 받을지언정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철학을 일치시키는 것을 결코 부끄러워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쓸데 없는 위선이다. 속으로는 뭔가 모를 세속적 이익(물론 당파적 이익도 포함된다)을 추구하면서 겉으로는 대의명분으로 포장하며 사태를 어지럽게 만드는 인간의 정신세계를 이해하지 못한다.

 

말하자면 "페렝기는 자신들의 이익 없이도 남을 위해 싸울 수 있다고 주장하는 종족들을 가장 위선적이고 추하다고 생각한다."(20.) 정확히 말하면 모두가 페렝기를 잘 알고 있으므로 그들 페렝기들은 그런 위선으로 더 많은 이익추구를 하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가 없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인간사회만이 혼돈에 싸여 있다. 세속적 이익과 대의명분이 혼란스럽게 뒤섞여 있다. 모든 인간은 그 모순 속에서 살아가므로, 심지어 스스로도 자신의 행동을 쉽게 분리 설명하지 못한다. 하물며 다른 사람이 누군가의 행동을 정확히 단정짓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래서 난 이렇게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우리 모두는 페렝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단 페렝기의 철학으로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 예외적인 행동요소의 경우만 인간의 독특한 철학의 발현이다.' 사실은 나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대부분 그렇게 생각할 것이기 때문에 내 주장과 행동에 대해서도 인간의 독특한 철학만을 시현하는 것으로 믿는 순진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또 당연히 나도 그런 과분한 '인간적' 평가를 기대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김종인에 관대한 조국이나 봉하마을 사람들도 기본적으로 모두 페렝기다. 다만 나는 그들이 자신들의 대부분 행동이 페렝기 철학에서 나온다는 것을 부정하고온갖 개혁적 언변으로 스스로를 포장하여 오직 자신들'' '인간적'이라고 선전하고 싶어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만약 그렇다면 그건 고도로 진화한 '위선적 페렝기' 탄생일 것이다. 설령 그렇다한들 '위선적 페렝기' 페렝기일 뿐이란 걸 모두가 알기만 한다면 그들의 위선을 두려워할 게 뭐가 있겠는가?!

 

김욱, http://blog.aladin.co.kr/kimwook/8217892(원문), 2016년 2월 7일(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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