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출 정 < 1번대>
               
저벅, 저벅, 저벅.

“츠시마(대마도의 일본명)대는 승선하라. 대열을 유지하라.” 


어둠이 채가시지 않은 새벽녘이었다. 동편의 해는 아직 떠오를 기미도 보이질 않아, 주위는 어두컴컴했다여명의 바다는 시커먼 빛을 뿜어냈다
대마도의 오우라 (尾浦)항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서쪽 구릉 위에는 갑옷으로 무장을 한 왜장이 착잡한 표정으로 군사들의 승선을 지켜보고 있었다
조선정벌군 제 1대 총대장 고니시 유키나가 (小西行長), 그가 앉아있는 의자 뒤쪽으로 둥그렇게 장막이 둘러쳐져 있었고, 양옆으로는 허리에 칼을 차고 무장을 한 근위장들이 부동자세로 서 있었다. 앞쪽으로는 초병으로 보이는 자들이 창을 곧추 세우고, 횡렬로 도열해 사방을 경계하고 있었다. 군막 안팎의 공기는 사뭇 삼엄하면서도 무거웠다. 


 “지금 승선하는 대열이 츠시마대인가?
 
“예, 그런 것으로 보입니다. 주군. 


  무언으로 선착장을 내려다보던 유키나가가 무거운 분위기를 깨려는 듯 낮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유키나가의 느닷없는 질문에 옆에 있던 근위장 하나가 황공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얼른 답했다. 


  “흐으음.


 유키나가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새어나오는가 싶더니 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휘이익. 파락파락.


쌀쌀한 새벽 바람이 듬성듬성 이어 놓은 군막의 빈틈을 파고 들어오는지, 바람소리에 이어 천막이 떨리는 소리가 군막 안으로 울려 퍼졌다. 얼굴에 와 닿는 바람은 차가웠다. 새벽 냉기를 애써 외면하듯, 유키나가는 미동도 않고 언덕 아래 선착장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의 나이 당시 서른넷이었다. 윤곽이 뚜렷하고 얼굴빛이 희어 겉으로 보기에는 무장보다는 학자에 가까운 이지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전장에서 잔뼈가 굵었던 터라, 웬만한 일에는 꿈쩍도 않던 그였는데, 오늘따라 그의 표정에 비장함이 감돌고 있었다.

언덕 아래 선착장 앞쪽에는 조선 출정의 명령을 받고 대마도에 모여든 병사 일만 팔천이 군선에 올라타느라 분주했다. 병사들은 모두 창과 칼, 철포 등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살풍경이었다.


“승선이 끝나는 대로 바로 출항한다. 우리 츠시마대가 선두에 선다.


요시토시(宋義智-소 요시토시)는 부장들에게 선두에 서라는 명령을 내렸다. 대마도의 젊은 도주였다. 선대인 요시시게가 병사하자, 양자였던 그가 약관의 나이에 도주의 자리를 물려받아 대마도를 통치하고 있었다. 조선 출병 제1번대 총대장 유키나가의 사위이기도 했다.


“명일 새벽 조선으로 출정할 것이네.


조선 출정은 전날 전격적으로 결정되었다. 약 한 달간을 대마도에 머물며 조선 출병을 가늠하던 총대장 유키나가가 결단을 내린 것이다. 출정을 결정한 유키나가는 요시토시를 따로 불러들였다.


“히데요시(豊臣秀吉-도요토미 히데요시) 전하로부터 즉시 출정하라는 명령이 내려왔네. 이젠 더는 머뭇거릴 수 없음을 이해하게. 더꾸물거리다간 우리 모두의 목숨이 성치 못할 것이야.


유키나가는 다다미방 상좌에 앉아 사위 요시토시를 굳은 얼굴로 바라보며, 조선과의 화평 교섭을 이제 그만 체념하라는 듯 명령반 조언반의 말투로 말을 꺼냈다. 구절마다 힘이 들어가 말의 매듭이 딱딱 끊어졌다. 자신의 말에 토를 달지 말고 따르라는 무언의 강요가 배어 있었다.


“잘 알겠습니다. 장인어른, 그럼 명령에 따라 내일 미명에 출정하도록 준비하겠습니다.


도주 요시토시도 출정을 저지시키는 것이 무리임을 알았다. 이젠 조선과의 화평을 유지해야 한다는 자신의 주장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출정을 위해 각오를 새롭게 해야 했다. 장인의 곤혹스러워하는 얼굴에서 그 입장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말을 아꼈다. 장인의 심기를 어지럽게 할 것 같아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한 후 그대로 물러 나왔다. 요시토시 역시 히데요시의 독촉이 없었다 하더라도 출정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지경이었다. 화평 교섭을 위해 조선에 파견한 사절로부터는 여전히 아무런 답신이 없었다.
게다가 약 이 만에 가까운 군사가 한 달여를 대마도에 머물다 보니 양식에서 뿐만 아니라 여러 문제가 발생했다. 병사들의 폭행, 약탈, 강간 등이 끊이질 않았다. 도민들에 대한 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각 부대는 출정 준비를 하고 명일 미명까지 오우라항으로 집결하라.


유키나가는 사위인 요시토시에게 가장 먼저 출정을 알린 후, 곧 전령을 띄웠다. 각 부대를 끌고 있는 영주들에게 군령을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군령에 이의를 다는 영주는 없었다. 그만큼 군령은 엄격했다.


“주군. 각대의 영주님들이 군막 쪽으로 올라오고 있습니다.


군막 안에 앉아 있던 유키나가에게 근위장이 다가와 보고하였다.


“따뜻한 차를 준비해 놓아라.


유키나가는 간이 의자에서 일어나 장막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각 부대를 끌고 있는 영주들이 말을 타고 언덕을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승선에 앞서 총대장인 자신에게 예를 표하고자 군막 쪽으로 다가오는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찻물을 끓이느라 피워놓은 화로의 불이, 냉랭하고 삼엄했던 군막안의 공기를 따뜻하게 데워놓았다. 유키나가는 군막 안으로 들어온 각대의 영주들에게 차례차례 따뜻한 차와 함께 격려의 말을 건넸다.


“츠시마 도주가 앞에 설 것이오. 그 뒤를 따르시오. 쉽지 않은 항해 길이 될 터인즉 모두들 조심하길 바라오.무운을 빌겠소.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먼저 승선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차를 나눠 마시고, 서로 예를 표한 후 오우라항을 향해 내려가는 각 대의 영주들을 유키나가는 다시 한 번 착잡한 표정으로 내려다보았다.


‘후우, 결국은 이렇게 되고 말 것을…. 무엇을 위해 그렇게 애를 썼단 말인가?


유키나가는 일본 규수 지방 히고(肥後, 현 구마모토 지역)의 영주였다. 그는 일본 전국을 통일해 천하인이 된 히데요시의 측근 심복이었다.
조선 정벌 제1번대 대장직을 임명받은 것은 약 한 달 전의 일이었다. 히데요시의 명령으로 하는 수 없이 1번대 총대장을 맡았으나, 그는 내심, 이번 조선 출정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히데요시를 주군으로 모시며 모든 일에 충성을 다했으나, 이번 조선 출정만큼은 반대편에 서 있었다.

그래서 명령을 받고 전진기지인 대마도로 들어오긴 했지만, 일기를 핑계로 차일피일하며 출정을 미루어 왔던 것이다.

그는 이번 조선 출정을, 히데요시의 지나친 자만과 과욕이 만들어낸 것으로 보고 있었다. 국제사회에 대한 정보력 부재 속에서 이루어진 이번 출정이 자칫하면 히데요시의 권력뿐만 아니라, 어쩌면 자신과 사위의 기반마저도 위협할 수 있었다.


대마도는 오래전부터 조선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교역을 독점해왔다. 그러던 차에, 중종 5(1510)에 삼포왜란이 일어나,화가 난 조선이 삼포의 왜관을 폐쇄하고, 일본과의 모든 교역을 중지시켰다. 그러자, 조선과의 교역을 통해 재정을 충당해오던 대마도는 재정적으로 커다란 타격을 입었다. 관계 개선을 위해 대마도주는 삼포왜란의 주모자인 왜구를 잡아 바치는 등, 조선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끈질길 노력 끝에 제한적이지만 교역이 재개되어 이제 겨우 조선 측의 신뢰를 회복해가는 상황이었다. 삼포왜란 후 조선 조정은 일본 지역에서 오직 대마도만을 교역상대로 인정했다. 그러나 아직도 삼포 중, 부산포만이 개항된 상태인데다가, 부산포 왜관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고 있었다. 교역을 일부 허락받긴 했지만 아직 조선 측의 완전한 신뢰를 회복하진 못했다.


“만일 히데요시 전하가 조선을 침략한다면 조선과의 관계는 더욱 악화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조선과의 교역을 확대시킨다는 꿈은 더욱 요원해집니다. 게다가 조선의 뒤에는 명이 있습니다. 히데요시 전하가 조선과 명을 정벌하여 통치한다는 것은 망상에 불과합니다.

요시토시는 조선과 명을 정벌하여, 자신이 직접 통치하겠다는 히데요시의 계획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지를 누누이 유키나가에게 전했다. 선대가 사망하고 새롭게 도주가 된 요시토시는 유키나가의 사위였으며, 같은 천주교도였다. 독실한 천주교도인 유키나가는 천주교 신부들과의 교류를 통해 동아시아뿐만 아니라, 유럽 정세에도 비교적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조선과 명과는 사위인 요시토시를 통해 히데요시 모르게 비밀리에 교역을 해왔다. 교역을 통해 얻은 이익은 영지 재정에 충당되었다. 그 덕에 통치가 안정되어 있었다. , 조선과의 교역이 영지의 통치를 안정시켜주었던 것이었다. 또한 사위가 조선통인지라 비교적 다른 영주들보다 조선과 명에 대한 정보가 밝았다.


‘주군인 히데요시 님이 뛰어난 인물임에는 틀림없다.그러나 남만(南蠻)은 차치하더라도 조선과 명에 대한 정보도 견식도 없지 않은가. 만일 이번 조선 출정에서 실패하면 히데요시 님뿐만 아니라, 내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다.


주변국의 정세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던 그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히데요시가 조선과 명으로 출정하는 것을 막고자 했다. 사위인 대마도주와 머리를 맞대고 조선과의 화평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궁리를 해왔지만 여의치 않았다. 조선의 정세에 어두운 히데요시는 막무가내로 조선의 왕이 일본으로 건너와 자신을 알현하라고 독촉했고, 조선 조정은 통신사 파견 이후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어떡해서든지 중간에서 전쟁을 막고 화평을 끌어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저희도 같이 무너질 것입니다. 아무튼 전쟁만은 막아야 합니다.


유키나가는 사위의 의견을 높이 샀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 전쟁을 막으려 애를 써왔다. 조선 조정의 요구로 오도열도에 있던 조선인 반민과 포로들을 모두 송환했다. 그의 끈질긴 노력과 중개 덕분에 그동안 묵묵부답이었던 조선 조정도 통신사를 파견해 왔고, 얼마간의 화평 교섭이 진행되었다. 그런데 통신사가 돌아간 후, 조선 조정은 통신사를 파견한 것으로 모든 외교적 예를 다했으니 더 이상 교섭은 없다는 눈치였다. 통신사 파견으로 조선인 반민과 포로 송환에 대한 빚은 갚았으니, 더는 성가시게 하지 말라는 태도였다. 한쪽에서는 말을 안 들으면 무력을 동원하여 정벌을 한다는데, 다른 한쪽인 조선은 태평세월이었다.

유키나가는 오히려 조선 측보다는 자신과 사위의 마음이 더 다급했음을 느꼈다. 그는 사위를 직접 파견해 조선과 외교적인 해결을 요구하는 한편, 전쟁이 일어나면 다 죽을 것이라는 위협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이독경이었다. 말 그대로 조선 조정은 말을 못 알아듣는 황소가 앞발을 버티고 떼를 쓰듯, 땅속 깊이 박힌 돌멩이 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조선에서는 아무런 답이 없는가?
“예, 그렇습니다. 그러나 장인어른,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십시오.
“어허, 이럴 수가. 위정자들이 벽창호와 조금도 다를 바 없으니, 백성들이 불쌍하구나!


유키나가는 조선 측이 야속했다. 조선과의 외교적 성과를 기다리며 초조해하던 유키나가에게 히데요시의 전령이 처음 나타난 것은 두 달 전이었다. 한해 전에 조선 통신사가 다녀간 후로, 조금은 유연해진 히데요시였다.


“다음은 조선의 왕이 직접 건너오도록 하라.
“꼭 이행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히데요시의 명을 받은 유키나가는 그렇게 하리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유키나가는 조선의 왕이 일본으로 건너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임을 잘 알고 있었다.
히데요시의 조선정벌을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그렇게 대답한 것뿐이었다.


“더 이상은 기다릴 수 없다.


조선의 왕을 일본으로 건너오게 할 것이라는 유키나가의 말을 믿고 기다리던 히데요시는 아무런 보고가 없자 조선 정벌을 명령했다.




제2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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