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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쿠코어
오타쿠코어 지음 / 모티브 / 2026년 8월
평점 :
이 책의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나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오타쿠’라고 하면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게임 속 캐릭터에 깊이 빠져 있는 젊은 세대의 문화가 먼저 떠올랐기 때문이다. 40대 후반의 직장인으로 오랫동안 조직생활을 해온 나에게 오타쿠라는 단어는 익숙하면서도 내가 직접 사용하는 표현은 아니었다. 그러나 책을 읽어나가면서 생각이 조금씩 달라졌다. 오타쿠를 특정한 문화에 빠져 있는 사람이라고 한정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에 진심으로 몰입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넓게 생각한다면 나 역시 무언가의 오타쿠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 역시 애니메이션과 웹툰, 웹소설뿐 아니라 케이팝, 밴드, 영화와 음악까지 오랫동안 여러 대상을 좋아해온 사람이다. 책은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사람들이 오타쿠에게 흔히 던지는 질문을 하나씩 꺼내놓는다. “그거 다 아는 내용 아니야? 왜 또 봐?”, “가짜 캐릭터한테 왜 울어?”, “고작 종이쪼가리가 왜 그렇게 비싸?” 같은 질문들이다. 얼핏 보면 가벼운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다른 사람의 취향을 어떤 기준으로 평가할 것인가라는 꽤 진지한 문제가 숨어 있다.
이 대목을 읽으며 취향에도 사회적인 서열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클래식 음악이나 미술, 와인에 깊은 관심을 가지면 교양이나 안목이라고 부르면서 애니메이션 캐릭터나 아이돌, 웹소설에 같은 정도로 빠져 있으면 과몰입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을 좋아하느냐의 차이일 뿐, 한 대상에 관심을 가지고 오랫동안 공부하며 즐거움을 얻는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
나 역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특정한 물건이나 분야를 깊이 들여다본 경험이 있다. 처음에는 단순한 관심에서 시작했지만 조금씩 알아가다 보면 역사와 제작 방식, 작은 차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관심 없는 사람에게는 비슷해 보이는 것들이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전혀 다르게 보인다. 바로 그 순간부터 취미는 단순한 소비를 넘어 하나의 세계가 된다.
이 책을 읽으며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저자가 이러한 몰입을 부끄러워해야 할 행동이 아니라 인간에게 필요한 감정으로 바라본다는 점이었다. 현대인의 삶은 효율과 결과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직장에서는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일을 처리했는지가 중요하고, 일상에서도 시간과 비용을 따져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하려고 한다. 무엇인가를 할 때 자연스럽게 “그래서 이것이 나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가”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취미의 세계에서는 이런 질문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다. 좋아하는 음악을 반복해서 듣는다고 승진하는 것도 아니고, 좋아하는 작품의 설정을 자세히 안다고 생활이 직접적으로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시간을 들여 좋아하는 것을 보고, 듣고, 수집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것을 하는 순간이 즐겁기 때문이다.
책에서 공개된 표현 가운데 특히 인상 깊었던 세 문장을 짧게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그거 다 아는 내용 아니야? 왜 또 봐?”
“가짜 캐릭터한테 왜 울고불고 난리야?”
“고작 종이쪼가리가 왜 그렇게 비싸?”
이 문장들은 책의 목차에도 등장하는 질문들이다. 얼핏 보면 오타쿠를 놀리는 말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이 책이 말하려는 핵심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반복해서 보는 이유가 있고, 허구의 인물에게도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가 있으며, 다른 사람에게 종이 한 장으로 보이는 물건에도 자신만의 의미가 존재한다.
특히 “왜 또 봐?”라는 질문이 기억에 남았다. 우리는 이미 본 영화나 드라마를 다시 보고, 오래전에 들었던 음악을 반복해서 듣는다. 결말을 알고 있음에도 같은 장면에서 웃고 같은 장면에서 감동한다. 효율이라는 기준으로만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다. 새로운 것을 보는 편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정보를 얻기 위해서만 콘텐츠를 소비하지 않는다. 익숙한 장면과 음악을 통해 과거의 감정을 다시 만나는 경험 자체가 즐거움이 될 수 있다.
나이가 들면서 이러한 감정의 가치가 오히려 더 중요해진다는 생각도 들었다. 젊은 시절에는 새로운 경험이 자연스럽게 찾아온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며, 새로운 장소를 방문하는 일이 많다. 그러나 일정한 나이가 지나면 생활의 상당 부분이 반복된다. 아침에 출근하고 업무를 처리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이 이어진다. 책임은 늘어나지만 순수하게 설레는 순간은 줄어들기 쉽다.
그래서 40대 후반의 내가 이 책에서 발견한 ‘오타쿠’는 젊은 세대의 특수한 문화라기보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잃지 않은 사람에 가까웠다. 어떤 물건의 새로운 모델이 나오면 찾아보고 싶고,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 나오면 읽어보고 싶으며, 관심 있는 분야라면 다른 사람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작은 차이까지 알고 싶은 마음이다. 그런 감정이 있다면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어느 정도는 오타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의 ‘갭차이’, ‘실패의 서사’, ‘구원서사’, ‘규격 외 존재’, ‘수미상관’처럼 사람들이 특정한 이야기에 끌리는 이유를 설명하는 부분도 재미있었다. 사람들이 작품 속 인물을 좋아하는 데는 단순히 외모가 멋지거나 능력이 뛰어나다는 이유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실패한 사람이 다시 일어나는 과정에 마음이 움직이기도 하고, 평소 냉정했던 인물이 예상하지 못한 따뜻함을 보여주는 순간에 매력을 느끼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이런 이야기들은 현실의 인간관계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완벽한 사람보다 약점과 빈틈이 있는 사람에게 친근함을 느끼고, 어려움을 극복한 사람의 이야기에 감동한다. 작품 속 캐릭터를 좋아하는 마음 역시 인간이 이야기를 통해 자신과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일 수 있다.
특히 실패와 구원의 이야기가 반복해서 사랑받는 이유를 생각하게 되었다. 현실에서는 한번 실패한 사람에게 다시 기회를 주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러나 이야기 속에서는 실패했던 인물이 다시 일어나고, 외면받던 사람이 누군가에게 인정받으며, 혼자였던 사람이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난다. 우리는 그 과정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삶에서도 가능할지 모르는 두 번째 기회를 상상한다.
그런 의미에서 가상의 세계에 감정을 이입하는 것을 단순한 현실도피라고만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이야기 속 인물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현실에서 쉽게 표현하지 못했던 마음을 발견하기도 한다. 좋은 영화 한 편이나 소설 한 권을 읽은 뒤 오랫동안 그 이야기가 머릿속에 남는 이유도 결국 그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직장생활을 오래 하면서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 역시 조금씩 굳어지는 것을 느낀다. 처음 만난 사람의 말투와 행동, 직책과 경력만으로 어느 정도 그 사람을 파악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오타쿠 코어』를 읽으며 사람에게는 회사에서 보여주는 모습보다 훨씬 다양한 세계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평일에는 무표정하게 회의에 참석하는 사람이 주말에는 특정 밴드를 따라 전국 공연장을 다닐 수도 있고, 엄격해 보이는 상사가 집에서는 오래된 만화책을 모으는 사람일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별것 아닌 취미처럼 보이지만, 정작 본인에게는 일상의 피로를 견디게 해주는 중요한 세계일 수 있다.
이 점에서 취향을 존중한다는 것은 단순히 예의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을 이해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상대방에게도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게 되면 회사에서 보이지 않았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다.
나 역시 과거에는 취미에도 어느 정도 합리적인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같은 기능을 하는 물건을 여러 개 가지고 있거나, 일반인이 보기에는 작은 차이에 많은 비용을 지불하는 행동을 굳이 설명하려고 했던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모든 취향을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좋아한다는 이유로 자신의 생활을 무너뜨릴 정도로 소비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자신의 책임을 다하면서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좋아하는 것을 즐긴다면, 그것을 반드시 효율이나 필요성으로 설명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취미에는 어느 정도 비합리적인 부분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즐거울 수도 있다.
40대 후반이 되면서 특히 공감하게 된 부분은 ‘좋아하는 마음을 유지하는 능력’이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것에 관심을 가지기보다 이미 알고 있는 것 안에서 생활하기 쉬워진다. “그걸 지금 알아서 뭐 하겠나”, “그 나이에 그런 것을 왜 좋아하나”라는 생각이 자신도 모르게 생길 수 있다. 그러나 그런 태도가 반복되면 삶의 세계는 조금씩 좁아질 것이다.
반대로 나이와 상관없이 새로운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깊이 파고드는 사람은 계속해서 새로운 이야기를 가진다. 그 관심이 음악이어도 좋고 운동이나 책, 자동차, 시계, 만년필, 영화처럼 무엇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좋아하느냐보다 여전히 무언가를 좋아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인지도 모른다.
이 책은 내게 취미에 관한 책이면서 동시에 나이 들어가는 방식에 관한 책처럼 읽혔다.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뒤에는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보다 자신이 실제로 즐거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일이 더 중요해질 수 있다. 젊은 시절에는 인정받는 것이 중요했다면,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스스로 인정해주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책을 덮고 가장 오래 남은 감정은 ‘좋아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귀한 능력’이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잘하는 능력은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무엇인가를 깊이 좋아하는 능력은 가볍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한 대상을 오래 좋아하려면 관심과 시간, 애정이 필요하다. 좋아하기 때문에 더 알고 싶고, 더 알고 있기 때문에 작은 차이를 발견하며, 그 차이를 발견하면서 다시 즐거움을 얻는다.
40대 후반의 지금 나는 앞으로 새로운 취미를 반드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보다, 이미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너무 쉽게 사소한 것으로 취급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직장과 가족, 사회적 책임이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만 그것만으로 한 사람의 삶 전체가 설명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런 목적 없이 좋아하는 것을 들여다보는 시간도 삶의 일부다.
또한 다른 사람의 취향에 대해서도 조금 더 관대해지고 싶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대상에 누군가가 열광하고 있다면 “그게 왜 좋아?”라고 판단하기 전에 “그 사람에게는 어떤 점이 그렇게 좋은 걸까?”라고 생각해보는 것이다. 그 작은 차이가 사람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줄 수도 있을 것 같다.
오타쿠라는 단어를 특정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책을 덮고 나서는 그 의미가 조금 달라졌다. 좋아하는 책을 반복해서 읽는 사람도, 하나의 운동에 몇 년을 빠져 있는 사람도, 특정한 물건을 수집하고 그 작은 차이를 이야기하는 사람도 넓은 의미에서는 모두 자신의 세계를 가진 오타쿠일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무엇을 좋아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진심으로 좋아할 수 있느냐인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면서 세상을 더 많이 알게 되는 대신 쉽게 감탄하지 않게 되고, 무엇을 보더라도 먼저 필요성과 효율을 따지는 사람이 되기 쉽다. 하지만 모든 것을 계산하면서 살아간다면 삶에서 설명할 수 없는 즐거움도 함께 사라질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무엇인가를 보고 괜히 설레고, 필요 이상으로 자세히 알아보고 싶어지고, 다른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혼자 만족할 수 있는 마음을 잃지 않고 싶다. 무언가를 진심으로 좋아할 수 있다는 것은 아직 내 안에 호기심과 열정이 남아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 난 뒤 40대 후반의 내가 가장 오래 간직하고 싶은 소감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