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심 - 내 삶에 내렸던 아름다운 소나기들
차석용 지음 / 열린책들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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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오랜 기간 기업을 이끌며 뛰어난 성과를 거둔 경영자가 자신의 경험과 삶의 원칙을 돌아본 책이다. 처음에는 한국 P&G와 해태제과, LG생활건강에서 이룬 성공의 비결을 설명하는 경영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책의 중심에는 화려한 경영기법보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어려운 순간에 지켜야 할 원칙이 자리하고 있었다.


 40대 후반의 직장인으로서 이 책은 상당히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오랫동안 기업의 성과와 경영환경을 살펴보면서 숫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경험해왔다. 매출과 이익, 성장률은 기업의 경쟁력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그러나 뛰어난 성과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그 과정에서 어떤 원칙을 지켰는지는 숫자만으로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저자는 LG생활건강을 18년간 이끌면서 매출을 약 9배 성장시키고 65분기 연속 영업이익 증가라는 기록을 남겼다. 하지만 이 책에서 더 주목하게 된 것은 그 결과보다 성과를 만들어낸 과정이었다. 좋은 시기에도 위기를 경계하고, 자신이 모르는 것을 인정하며, 조직 내에서 사실과 논리가 직급보다 존중받아야 한다는 그의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책에서 강조하는 내용을 보여주는 세 가지 짧은 표현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모르면 모른다고 말할 것”

“사실과 의견을 구분할 것”

“나쁜 소식일수록 빨리 알릴 것”

 이 세 문장은 출판사에서 공개한 책 소개에 담긴 원칙들이다. 짧고 단순하지만 실제 조직생활에서 꾸준히 실천하기는 쉽지 않은 내용이다.


 특히 ‘모르면 모른다고 말할 것’이라는 원칙이 가장 마음에 남았다. 직장생활을 오래 하고 책임 있는 위치에 있을수록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려워진다. 경험이 많고 전문적인 판단을 요구받는 위치에 있다 보면 질문에 즉시 답해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못된 확신은 모른다는 사실보다 훨씬 위험할 수 있다.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내용을 아는 것처럼 설명하거나 불확실한 전망을 단정적으로 이야기하면 조직 전체가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도 있다.


 오히려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정확하게 구분하고, 추가로 확인해야 할 사항을 명확히 하는 것이 책임 있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통해 진정한 전문성은 모든 질문에 답하는 능력이 아니라 자신의 지식과 판단의 한계를 정확히 이해하는 데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다시 느꼈다.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라’는 원칙 역시 깊이 공감했다. 우리는 객관적인 자료를 검토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경험과 기대가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어떤 사업이나 전략에 오랫동안 관여했다면 그 결과를 긍정적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생길 수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확인된 사실과 개인의 해석을 분리하는 것이다. 같은 숫자라도 그 원인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따라서 중요한 의사결정일수록 어떤 부분이 검증된 사실이고 어떤 부분이 가정이나 전망인지를 명확하게 설명해야 한다.


 저자가 강조하는 이러한 태도는 단순한 보고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의 신뢰를 형성하는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나쁜 소식일수록 빨리 알릴 것’이라는 원칙은 위기관리의 본질을 보여준다. 조직에서는 좋은 소식보다 나쁜 소식을 전달하기가 훨씬 어렵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을 추궁받을까 두려워 보고를 늦추거나 상황이 개선되기를 기다리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문제가 작을 때 공유하면 해결할 수 있는 선택지가 많지만 시간이 지나면 대응할 수 있는 범위가 줄어든다. 처음에는 작은 실수였던 일이 보고 지연으로 인해 더 큰 위기로 확대될 수도 있다.


 따라서 좋은 조직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조직이 아니라 문제가 발생했을 때 빠르게 드러나고 해결되는 조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구성원에게 책임감만 요구할 것이 아니라 불편한 사실을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이러한 경영 원칙들이 ‘하심’이라는 제목과 연결된다는 점이었다.


 일반적으로 겸손은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로 이해된다. 그러나 저자가 말하는 하심은 단순히 말과 행동을 공손하게 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타인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자세에 가깝다고 느꼈다.


 특히 높은 지위에 있을수록 겸손은 더욱 중요하다. 직책이 높아지면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에 쉽게 반대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럴수록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판단이 충분한 검증 없이 받아들여질 위험도 커진다.


 따라서 진정한 리더는 자신의 권위를 앞세우기보다 다른 사람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제시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조직의 성과가 특정 개인의 능력에만 의존하지 않도록 사람을 키우고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중요한 역할이다.


 책에 소개된 코카콜라 인수 과정과 조직을 다시 세우는 경험은 이러한 원칙이 실제 경영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 생각하게 한다.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힌 상황에서는 완벽한 정보가 주어지지 않는다. 결국 불확실한 조건 속에서도 중요한 사실을 확인하고 원칙에 따라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단순한 자신감이 아니라 충분한 준비와 책임감이라고 생각한다. 과감한 결정도 중요하지만 그 결정이 실패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까지 고려해야 한다. 특히 조직의 규모가 커질수록 한 사람의 판단이 많은 구성원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또한 저자가 성공한 시기에도 위기를 준비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기업은 실적이 좋을 때 오히려 위험에 둔감해지기 쉽다. 과거의 성공 경험이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변화하는 환경을 충분히 살펴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기업의 경쟁력은 좋은 시기의 성과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시장이 어려워졌을 때 얼마나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지, 예상하지 못한 위기에도 조직이 유지될 수 있는지가 장기적인 경쟁력을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성공했을 때 더욱 신중해야 한다는 저자의 태도는 오랜 경험에서 나온 현실적인 지혜로 느껴졌다.


 책의 후반부에 수록된 임직원 대상 메시지들도 의미 있게 다가왔다. 거창한 경영 이론보다 일상에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태도를 반복해서 강조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사실 조직생활에서 중요한 원칙들은 대부분 알고 있는 내용이다. 정직하게 보고하고, 약속을 지키며, 문제가 발생하면 빠르게 공유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다르다. 특히 성과에 대한 압박이 커지거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상황에서는 평소 중요하게 생각했던 원칙을 지키기가 어려워진다.


 결국 사람의 진정한 모습은 모든 일이 순조로울 때보다 어려운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고 가장 크게 남은 소감은 오래가는 성과를 만드는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끊임없이 증명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돌아보고 다른 사람의 가능성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40대 후반이 되면서 그동안 쌓아온 경험과 전문성이 자산이 되는 동시에 때로는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이는 데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느낀다. 익숙한 방식으로 판단하고 과거의 경험을 기준으로 다른 사람의 의견을 평가하는 일이 점점 쉬워지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경험이 많다는 이유로 자신의 판단을 지나치게 확신하지 않으려 한다. 내가 모르는 것이 있을 때 솔직하게 인정하고, 후배가 더 나은 의견을 제시하면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특히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지도 생각하게 되었다. 업무에 능숙하고 성과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라는 평가도 중요하지만, 어려운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함께 해결할 수 있었던 사람, 자신의 의견을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던 사람으로 기억된다면 더 의미 있을 것 같다.


 가족과의 관계에서도 하심의 태도를 실천하고 싶다.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조언하는 것이 언제나 최선은 아닐 수 있다. 때로는 내 생각을 내려놓고 배우자와 자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무엇보다 앞으로의 삶에서는 더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만을 목표로 삼고 싶지 않다. 지금까지 얻은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누군가의 성장을 돕고, 어려운 순간에도 자신의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 책의 부제인 ‘내 삶에 내렸던 아름다운 소나기들’이라는 표현도 오래 마음에 남는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면 중요한 순간마다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과 예상하지 못한 기회가 있었다. 지금의 내가 오롯이 나 자신의 노력만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그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야말로 하심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뛰어난 경영자의 성공을 배우는 책이지만 내게는 성공 이후에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해준 책이었다. 앞으로는 내가 얼마나 많은 성과를 이루었는가보다 그 과정에서 어떤 원칙을 지켰고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싶다. 경험이 쌓일수록 더욱 겸손해지고, 책임이 커질수록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귀 기울이며, 높은 곳을 바라보면서도 자신의 마음은 낮출 줄 아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그것이 이 책을 덮으며 내가 가장 오래 간직하고 싶은 다짐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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