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또한 극단을 경계하게 한다. 좋은 상황에서도 지나치게 욕심을 내지 않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성급하게 포기하지 않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점을 여러 괘의 흐름 속에서 보여준다. 이는 현실의 인간관계와 조직생활에서도 매우 중요한 원칙이라고 생각한다. 감정이 격해진 순간에는 단호한 결정보다 한걸음 물러서는 것이 나을 수 있고, 반대로 지나치게 신중해서 결정해야 할 시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 결국 균형이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중간지점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움직이는 능력에 가깝다.
주역을 읽으며 흥미로웠던 또 하나의 부분은 인간이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한다는 점이었다. 현대인은 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정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데 익숙하다. 그러나 아무리 준비해도 예상하지 못한 변수는 반드시 발생한다. 이때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사람은 쉽게 흔들리지만, 변화 가능성을 인정하는 사람은 상황에 맞게 방향을 조정할 수 있다.
직장 생활이 길어질수록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이 훨씬 많다는 것을 체감한다. 조직개편이나 정책 변화, 예상하지 못한 외부 환경처럼 개인의 힘으로 바꾸기 어려운 상황도 많다. 그런 현실 앞에서 끊임없이 불평하는 것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이 무엇인지 판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주역은 그런 태도를 ‘운명에 순응한다’기보다 ‘변화를 이해하고 대응한다’는 적극적인 자세로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특히 64괘의 마지막이 ‘미제(未濟)’, 즉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의미로 끝난다는 점도 인상 깊었다. 완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미완으로 끝난다는 것은 삶에는 완전한 끝이 없다는 의미처럼 다가왔다. 한 문제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기고, 하나의 목표에 도달하면 새로운 목표가 생긴다. 따라서 인생을 완벽하게 정리하려 하기보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역을 64가지 삶의 이야기로 풀어내는 이 책의 구성도 이러한 관점을 현대적으로 이해하도록 돕는다.
이 부분은 40대 중반의 나에게 특히 크게 와닿았다. 어느 정도 사회생활을 해오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이제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새로운 기술과 세대, 새로운 조직문화가 끊임없이 등장한다.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은 분명 중요한 기반이지만, 그것이 앞으로의 판단을 자동으로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경험이 많을수록 자신의 판단을 의심하고 새로운 흐름을 받아들일 준비가 필요하다.
책을 읽으며 내가 과거의 성공 경험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지는 않은지도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은 자신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변화한 환경에서 과거의 정답은 더 이상 정답이 아닐 수 있다. 주역은 바로 이 점에서 매우 현대적인 고전처럼 느껴졌다. 세상은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따라서 지혜 역시 상황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 책은 인간관계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영향을 주었다. 사람 역시 고정된 존재가 아니다. 지금 나와 갈등하는 사람이 영원히 같은 관계로 남는 것은 아니며, 지금 나를 돕는 사람과의 관계도 계속 유지된다고 보장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한 번의 행동이나 한 시기의 모습만으로 단정하는 것은 위험하다. 관계에도 흐름이 있고, 때에 따라 가까워지기도 하고 거리를 둘 필요도 있다.
이러한 관점은 직장생활에서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조직에서는 사람에 대한 평판이 빠르게 고정되는 경우가 많다. ‘저 사람은 원래 그렇다’는 말이 쉽게 사용된다. 그러나 사람도 환경에 따라 변하고, 역할이 달라지면 다른 능력이 드러나기도 한다. 주역의 변화에 대한 시각을 적용한다면, 사람과 상황을 고정된 이미지로 판단하기보다 변화 가능성을 열어두는 태도가 더 지혜로울 수 있다.
책을 덮으면서 주역이 오래 살아남은 이유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책이 미래를 정확하게 맞히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며 반복해서 경험하는 변화와 선택의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시대와 기술은 바뀌었지만 사람은 여전히 언제 움직여야 하는지, 언제 멈춰야 하는지, 성공했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어려울 때 어떻게 버텨야 하는지를 고민한다. 그런 점에서 수천 년 전의 고전이 지금도 의미를 갖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고 남은 가장 큰 소감은, 앞으로의 삶에서 ‘정답’을 찾는 데 너무 많은 힘을 쓰지 않아도 되겠다는 것이었다. 세상은 계속 변하고, 그 변화 속에서 어제의 정답이 오늘의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모든 상황을 완벽하게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가 찾아왔을 때 자신의 중심을 잃지 않고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태도를 갖는 일이라고 느꼈다.
40대 중반이 된 지금은 젊을 때보다 잃고 싶지 않은 것이 많아졌다. 그래서 새로운 선택 앞에서 신중해지고, 때로는 익숙한 길을 유지하려는 마음도 커진다. 그러나 주역은 안정 역시 영원하지 않으며, 변화를 거부한다고 해서 변화가 멈추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필요한 것은 변화를 피하는 능력이 아니라 변화 속에서 균형을 잡는 능력일 것이다.
이 책은 내게 점을 치는 책이 아니라, 변화하는 삶을 읽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었다. 잘될 때는 지나친 자신감을 경계하고, 힘들 때는 지금의 상황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중요한 순간에는 때와 방향을 살피는 태도. 이러한 단순하지만 쉽지 않은 원칙들이 오히려 지금의 내 삶에 필요한 지혜처럼 느껴졌다.
결국 삶은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이어지는 과정이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했다고 모든 것이 끝나는 것도 아니고, 한 번 실패했다고 모든 가능성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앞으로 나는 변화가 찾아올 때마다 그것을 불안의 신호로만 받아들이기보다, 새로운 국면이 시작되고 있다는 신호로 바라보고 싶다. 그리고 그 순간마다 성급하게 답을 내리기보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와 주변의 흐름을 먼저 살펴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것이 이 책을 읽고 난 뒤 내게 남은 가장 큰 소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