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주식시장의 돈은 피지컬 AI로 흐른다
정용준 지음 / 메이트북스 / 2026년 7월
평점 :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AI를 바라보는 관점을 이제 한 단계 넓혀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AI라고 하면 ChatGPT와 같은 생성형 AI, 거대한 데이터센터와 반도체를 먼저 떠올렸다. 그러나 이 책이 주목하는 것은 화면 안에서 정보를 만들어내는 AI를 넘어, 실제 현실 세계를 인식하고 판단하며 움직이는 ‘피지컬 AI’다. 로봇과 자율주행차, 스마트팩토리처럼 AI가 물리적인 공간에서 행동하기 시작하면 산업의 구조와 기업의 경쟁력 역시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책의 출발점이다.
40대 중반의 직장인으로서 새로운 기술을 접할 때마다 한편으로는 기대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과거의 기술 열풍을 떠올리게 된다. 세상을 완전히 바꿀 것이라는 기술은 언제나 등장했고, 실제로 세상을 바꾼 기술도 있었지만 기대만 남긴 채 사라진 기술도 많았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을 때도 ‘피지컬 AI가 유망하다’는 주장 자체보다 왜 지금 이 기술이 중요한지, 실제 산업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를 중심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책에서 말하는 피지컬 AI의 핵심은 AI가 현실 세계와 직접 상호작용한다는 데 있다. 생성형 AI가 글과 그림, 영상과 같은 디지털 결과물을 만들어냈다면 피지컬 AI는 센서를 통해 주변을 인식하고 스스로 판단한 뒤 실제 행동으로 연결한다. 인간의 두뇌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AI에 눈과 귀, 팔과 다리가 붙는 셈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피지컬 AI가 단순히 로봇 산업의 새로운 이름이 아니라 여러 기술이 결합되는 거대한 변화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었다.
특히 흥미롭게 읽은 것은 AI의 발전이 결국 현실 세계의 제조능력과 연결된다는 부분이었다. 아무리 뛰어난 알고리즘이 있어도 실제 움직임을 구현하려면 반도체와 센서, 모터와 감속기, 배터리, 카메라를 비롯한 수많은 부품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안정적으로 대량 생산할 제조시설과 공급망도 갖춰져야 한다. 결국 소프트웨어의 발전이 오히려 제조업의 중요성을 다시 높이는 역설적인 상황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나라 산업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한국은 반도체와 자동차, 배터리, 전자부품, 기계 등 제조업에서 오랜 경험을 축적해왔다. 디지털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제조업이 상대적으로 오래된 산업처럼 평가받기도 했지만, 피지컬 AI 시대에는 이러한 생산 경험이 새로운 강점이 될 가능성이 있다. AI라는 두뇌를 실제 제품으로 구현하려면 결국 정밀하게 만들고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책의 핵심 내용을 인상적인 세 문장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피지컬 AI는 AI가 현실 세계를 이해하고 직접 행동하는 단계다.”
“휴머노이드 로봇의 경쟁력은 두뇌뿐 아니라 몸을 구성하는 수많은 부품에서 결정된다.”
“AI의 다음 전장은 화면 속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세계다.”
그중에서도 마지막 문장이 이 책을 읽으며 느낀 가장 큰 변화와 맞닿아 있다. 생성형 AI의 등장은 이미 우리의 업무와 일상을 크게 변화시켰지만, 지금까지의 변화는 대부분 컴퓨터와 스마트폰 화면 안에서 이루어졌다. 반면 피지컬 AI가 본격적으로 발전하면 변화는 공장과 도로, 물류센터, 병원, 가정처럼 실제 생활공간으로 확대될 수 있다.
휴머노이드 로봇에 관한 부분도 흥미로웠다. 사람과 비슷한 형태의 로봇은 오랫동안 영화 속 미래 기술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AI가 발전하면서 로봇이 정해진 동작만 반복하는 기계에서 주변 환경을 이해하고 새로운 상황에 대응하는 존재로 변화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과거의 산업용 로봇이 정해진 위치에서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면 앞으로의 로봇은 인간의 지시를 이해하고 상황에 따라 행동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책을 읽고 피지컬 AI 관련 기업이면 모두 성장할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느꼈다. 새로운 산업이 등장하면 초기에는 기대가 실제 성과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AI’, ‘로봇’, ‘자율주행’ 같은 단어가 붙었다는 이유만으로 관심이 집중되기도 한다. 그러나 산업이 성장하는 것과 특정 기업이 그 성장의 결과를 가져가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이 점은 과거 여러 기술의 성장 과정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새로운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더라도 경쟁이 심해지면서 사라지는 기업이 생기고, 처음에는 주목받지 않았던 기업이 핵심적인 역할을 차지하기도 한다. 따라서 새로운 산업을 바라볼수록 화려한 이야기보다 실제로 어떤 기술을 가지고 있는지, 고객은 누구인지, 대량 생산 능력을 확보했는지 등을 살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제목에 등장하는 ‘돈의 흐름’도 단순히 주가가 어디로 움직일지를 뜻하는 것으로만 읽히지는 않았다. 산업이 바뀌면 기업들이 사용하는 돈의 방향도 달라진다. 데이터센터에 대규모 투자가 이루어지면 반도체와 전력설비 기업의 일감이 늘어나고, 로봇 생산이 확대되면 센서와 구동장치, 정밀부품을 만드는 기업에도 새로운 수요가 발생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돈이 흘러간 결과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돈이 왜 그 방향으로 움직이는지를 이해하는 일이다.
이러한 관점은 직장 생활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조직에서도 현재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사업보다 앞으로 회사가 사람과 자원을 어디에 투입하고 있는지를 보면 미래의 방향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말보다 실제 행동을 보는 것이 중요하듯 산업에서도 전망보다 기업들이 실제로 어디에 공장을 짓고 어떤 분야의 인력을 채용하며 누구와 협력하는지를 보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
피지컬 AI가 가져올 일자리의 변화도 생각하게 되었다. 로봇이 반복적이고 위험한 일을 대신한다면 인간의 노동환경은 개선될 수 있다. 고령화와 인력 부족이 심해지는 사회에서는 로봇이 단순히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는 존재가 아니라 부족한 노동력을 보완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제조현장과 물류, 돌봄과 의료처럼 인력이 지속적으로 필요한 영역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더욱 빠르게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기술 발전의 긍정적인 측면만 볼 수는 없다. 로봇이 인간의 일을 대신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질수록 어떤 직업이 사라지고 어떤 능력이 새롭게 필요해질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커질 것이다. 40대 중반의 직장인이라는 입장에서는 이 문제가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새로운 기술을 단순히 젊은 세대가 배워야 할 것으로 생각하기에는 앞으로 직장생활을 해야 할 시간이 여전히 길기 때문이다.
AI를 직접 개발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AI가 자신의 업무와 산업을 어떻게 바꾸는지는 이해해야 한다. 과거의 경험이 많다는 것은 분명 장점이지만, 변화가 빠른 시대에는 경험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벽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피지컬 AI라는 새로운 개념을 공부하는 과정 자체가 기술을 이해하는 것 이상으로 의미 있게 느껴졌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것은 피지컬 AI가 하나의 기업이나 기술만으로 완성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AI 소프트웨어, 반도체, 센서, 배터리, 정밀기계, 통신과 제조기술이 함께 발전해야 한다. 이는 앞으로 산업을 바라볼 때 기존의 업종 구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자동차 회사가 소프트웨어 기업이 되고, 전자회사가 로봇 기업이 되며, 반도체 회사가 AI 생태계의 중심에 들어오는 식으로 산업의 경계가 계속 흐려질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며 투자에서도 익숙한 분류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에는 반도체, 자동차, 기계, 소프트웨어처럼 산업을 나누어 바라봤다면 앞으로는 하나의 거대한 기술 변화가 이들 산업을 어떻게 연결하는지를 살펴보는 시각이 중요해질 것이다. 피지컬 AI는 바로 이러한 연결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였다.
그러나 새로운 기술 앞에서 조급해지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고 느꼈다. 시장에서는 미래에 대한 기대가 실제 변화보다 먼저 움직인다. 모두가 같은 미래를 이야기하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상당한 기대가 반영되어 있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술의 가능성에 동의하는 것과 지금 당장 관련 기업을 선택하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 좋은 이야기가 언제나 좋은 결과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40대 중반이 되면서 나는 투자에서도 ‘놓치지 않는 것’보다 ‘잘못 따라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점점 더 많이 하게 된다. 모든 새로운 흐름을 가장 먼저 발견할 수는 없다. 오히려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유행을 따라가는 행동이 더 큰 위험을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이 책 역시 특정 기업을 찾기 위한 목록이라기보다 앞으로 산업을 바라보는 하나의 지도처럼 활용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느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고 가장 크게 남은 소감은, AI 혁명은 이제 시작 단계일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ChatGPT의 등장만으로도 세상이 크게 바뀌었다고 생각했지만, AI가 화면 밖으로 나와 자동차를 움직이고 로봇을 작동시키며 공장과 물류센터에서 실제 일을 하기 시작한다면 변화의 크기는 지금보다 훨씬 커질 수 있다.
동시에 기술의 변화가 빠를수록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능력이 아니라 계속 배우고 자신의 생각을 수정할 수 있는 유연성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 알고 있는 지식과 경험만으로 앞으로의 세상을 판단하려 한다면 새로운 변화의 의미를 놓칠 수 있다. 그래서 나 역시 익숙하지 않은 기술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며, 그것이 내가 몸담고 있는 산업과 일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계속 생각해보고 싶다.
이 책은 내게 단순히 다음에 오를 종목을 알려주는 책이라기보다 AI 이후의 산업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만든 책이었다. 특히 소프트웨어에서 시작된 혁신이 결국 반도체와 전력, 로봇과 자동차, 그리고 제조업이라는 현실 세계로 확장된다는 관점이 오래 남았다.
앞으로 시장에서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단순히 ‘유망하다’는 말에 반응하기보다 그 기술이 실제 세상에서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이를 구현하기 위해 어떤 기업과 산업이 필요한지를 한 단계씩 따라가 보고 싶다. 그리고 모두가 열광할 때는 한 걸음 떨어져 현실을 살펴보고, 아직 관심이 적을 때는 변화의 가능성을 먼저 공부할 수 있는 시선을 갖고 싶다.
결국 시장의 돈은 새로운 이름을 좇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실제로 변화시키는 곳으로 이동한다고 생각한다. AI가 생각하는 시대를 넘어 AI가 직접 움직이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면, 투자자로서 필요한 것은 그 흐름에 무작정 올라타는 것이 아니라 변화가 현실이 되는 과정을 이해하는 힘일 것이다. 그것이 이 책을 덮은 뒤 내게 가장 깊이 남은 생각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