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의 봄 | storytellers' 2005/03/24 0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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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문을 열고 걸어나오면 오분도 안되 중앙대학교 정문에 도착한다. 오분이 뭐냐, 과장해서 일분이면 충분하다. 대학생들은 밤낮없이 오만하고, 혹은 자폐적이고, 혹은 실성한듯이 고함을 질러대기 때문에 사실은 몇 분씩 투자해 가며 집밖으로 나서지 않아도 사람들을 만나는 것 뿐만 아니라 원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늦은 저녁 화장실 변기 위에 앉아 있으면 "사겨라! 사겨라!" 의 물결이다. 지금도 이름이 기억나는 몇몇은 거의 매일같이 우리집 근처의 고기집을 들르는 것 같다. 그정도면 니네들이 사귀라고 우겨대지 않아도 사귄지 백날도 넘었구만 뭘 그리 난린지 밤새도록 누가 누구와 사귀고 누가 누구를 패대기치는지에 대해 주장하는 인물들이 계시고, 되풀이해서 (지금에 와서는) 우스꽝스러울뿐인 고함같은 노래를 부르는 걸 듣고 있노라면 누가 대학과 학문어쩌고를 동시에 떠올리는 수고스러운 짓을 할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 바야흐로 대학가의 봄이다.
이런 날들의 아침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해서, 따지고 보면 이상할 것도 없이 당연한 일이지만, 거리의 가게들도 모두 늦잠을 자기 일쑤다. 나는 깽깽거리며 토사물을 피해 출근을 하곤 했다. 그러나 나는 이미 그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일어나면 날을 넘긴 달력이 퍼덕이고 하루는 늘어지게 길다. 나는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 정중하게, 정중하고 상냥하게, 상냥하고 친절하게, 친절하거나 소리없이 오후를 보내고 한끼의 식사를 대강대강 해결하고 길을 나선다. (오후에 <딴지일보> 의 조영남 인터뷰 기사를 읽었는데 총수와 조영남이 합창하듯 "인생의 9는 재수고 1은 능력(실력)이다. 즉, 실력이란 재수가 찾아올때까지 버티는 능력을 말한다." 고 말했다. "여유있는 자들은 의심을 덜 한다"고도 했던가. 아무튼 재미있게 읽다가 말고 콩나물 된장국을 끓여 밥을 말아 먹고 딩가딩가 키보드를 치다가 말다가 하는 것인데.)
변함없는 건 화장실 변기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아직도 사겨라 사겨라 하고 있고 고기집을 바꾸지도 않고 같은 자리에서 뽀뽀를 하거나 질질 짜고 있다. 어쨌건 여름이 되면 그들도 집으로 돌아갈 것이고 가을이나 겨울에는 나타나지도 않을 것이다. 확실히 겨울바람이 얼굴을 에워싸는 시커먼 골목길에 우우우 몰려나와 사겨라 사겨라 하는건 민망하기도 할 것이다. (고 나는 한번도 안그랬단 듯이 시니컬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