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클린턴과 토니 블레어가 이끄는 나토 고위 사령부는 도대체 어떻게 폭격의 결과로 난민수가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까? 우리의 상상을 넘어서는 일이다. 어떤 지도자도 전쟁의 공포를 겪어본 일이 없으며 싸워본 일도 없다. 이들은 살아남으려고 절망적으로 우왕좌왕하거나 자신의 가족을 보호하고 먹여 살리는 일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이러한 이유만으로도 지도자들은 강력한 도덕적 비난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며, 수단과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그리고 백악관 복도에서 보여준 클린턴의 끔찍한 기록을 감안할 때 그는 밀로셰비치와 마찬가지로 전범으로 기소되어야만 한다. (221)

미국의 병력과 장비가 적의 보복이나 공격으로부터 거의 완전히 보호되는 '안전한' 또는 '깨끗한' 전쟁이란 결코 생각하기 쉽지 않다. 저명한 국제법 학자 리처드 포크 (Richard Falk) 가 주장했듯이, 실제로 그러한 전쟁은 고문과 동일한 구조를 공유하는 것이다. 수사관-고문자는 원하는 어떤 방법이든 선택하고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권력을 가진 반면 아무 힘도 없는 희생자는 박해자의 수중에 완전히 놓여지게 된다. (222)

미국의 군사예산은 다른 모든 나토 국가가 지출한 총 예산보다 30퍼센트가 높다. 오늘날 세계 국가의 절반 이상은 미국의 경제 및 무역 제재를 위협받고 있거나 그것을 현실로 느끼고 있다. 이라크, 북한, 수단, 쿠바, 리비아 같은 천민 국가들 (pariah states) (이들이 천민 국가인 이유는 미국이 그렇게 낙인찍었기 때문이다) 은 미국의 일방적 분노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인 이라크는 정의로운 분노라는 미국의 만족감을 충족시키는 것 외에는 아무런 합리적인 목적이 없는 미국의 제재 덕분에 대량학살을 통한 붕괴라는 과정을 겪고 있다. 이 모두는 무엇을 이루기 위한 것인가, 그리고 이는 미국의 힘에 관해 세계에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이것은 안보나 국익, 또는 뚜렷한 전략적 목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끔찍한 메시지이다. 자기 자신을 위한 힘에 불과한 것이다. (222-23)

탈냉전 시대에 문제는 남는다. 오직 이윤과 기회주의만을 추구하는 미국과 그 더러운 군사-경제 정책이 세계를 지배해도 되는가? 아니 미국의 정책에 대해 충분히 강력한 지적, 도덕적 저항을 발전시킬 수 있는가? (224)

마지막으로, 만약 무고한 인간생명이 희생된다면 그 희생자들이 백인이나 유럽인이 아니더라도 냉소적으로 내버려두어선 안 된다. 우리는 누구나 한 명의 시민으로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권력에 맞서 자국 내에서 언제든지 저항을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애국주의와 도덕적 관심으로 변장한 유창한 민족주의가 비판적인 의식을 지배해왔다. '민족'에 대한 충성을 모든 것 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지식인들의 배반과 완전한 도덕적 파산만이 있을 뿐이다. (225)

-에드워드 사이드 "지식인의 배반" [전쟁이 끝난 후] (이후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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