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필사로 채워지는 하루 - 메시지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명언의 힘
김정미(조안쌤) 지음 / 다온북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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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하루를 다잡아주는 손글씨의 힘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봤을 때 고전 필사는 단어에 꽂혀서 읽게 되었다. 제목만 봐서는 당연히 진짜 고전에 나오는 문장들을 베껴 쓰는 책일 줄 알았다.

하지만 책 속에서 마주한 건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고전'이라기보다, 명언이나 마음에 힘을 주는 짧은 문장들이었다.

처음에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이게 정말 고전 필사야??라는 의문도 들었고, 무엇을 골라 써야 할지 혼란스럽기도 했다.


왼쪽 페이지엔 힘을 주는 긴 문장이 있었고, 오른쪽 페이지엔 상단엔 명언과 한두 줄의 이야기, 그리고 아래엔 글을 쓰는 공간이 있었는데

도대체 어떤 따라 써야 했는지 모르겠다는 느낌이 너무 강했다. 결국 나는 고민 끝에 책 속 문장을 하나하나 다 필사해 보기로 했다.

어쩌면 욕심이었을지도 모른다. 길고 긴 문장들을 따라 쓰면서 손가락도 많이 아팠고 괜히 이걸 다 쓰기 시작했나? 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고전이라는 이름에서 기대한 것과는 달랐지만, 쓰다 보니 그 안에 담긴 의미가 글씨와 함께 마음속에 스며들었다.

손끝으로 한 자 한 자 적어 내려가다 보면, 단순히 문장을 읽을 때는 흘려보냈을 말들이 내 안에서 울림이 되어 자리 잡는 경험을 하게 된다.


물론, 솔직히 말하자면 고전 필사라는 제목과는 조금 어긋나는 구성은 아쉬웠다.

고전 문장들을 읽고 따라 쓰고 싶어 이 책을 펼친 사람이라면, 다소 실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아쉬움이 곧 이 책의 한계라기보다는 또 다른 가능성으로도 느껴졌다.

고전을 읽는 것보다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명언과 문장들 덕분에,

오히려 필사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더 부담 없이 손을 움직일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특히 좋았던 건, 필사를 하는 동안 마음이 차분해졌다는 점이다.

요즘은 하루에도 수십 번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끊임없이 자극적인 정보에 휩쓸리며 정신이 산만해지곤 한다.

하지만 종이에 펜을 대고 글씨를 따라 쓰는 그 순간만큼은, 외부의 소음이 모두 멀어지고 오롯이 나와 글자만 남는다.

글씨를 잘 쓰든 못 쓰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내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글자들이 다시 나를 정리해 준다는 사실이었다.


​책장을 덮고 나니, 필사는 단순히 글자를 베껴 쓰는 일이 아니라는 걸 조금은 알 것 같다.

그것은 마음을 다잡고, 흩어진 생각을 모으고, 잠시 멈춰 서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된다. 

고전 필사로 채워지는 하루는 완벽한 고전 필사집은 아니지만, 하루를 다르게 만드는 작은 습관을 가질 수 있도록, 마음가짐을 다 잡을 수 있도록 해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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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먼 스쿨 악플 사건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4
도리 힐레스타드 버틀러 지음, 이도영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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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청소년 문학이라고 하면 흔히 가볍고 쉽게 읽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쉽다.

실제로 많은 청소년 소설들은 짧은 호흡과 빠른 전개, 또래 인물들의 대화와 갈등을 중심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그래서 '트루먼 스쿨 악플 사건'도 처음 책을 받았을 때는 그런 기대감을 안고 시작했다.

실제로 문장은 술술 넘어가고 사건은 흥미롭게 전개되며 긴장감 있게 이어져 한 번 잡으면 쉽게 손에서 놓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야기를 다 읽고 덮고 나서는 오히려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 책이 다루는 주제인 ‘악플’이 가진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9년 출간된 이후로 16년째 청소년 필독서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이 책은 현대 사회에서 아이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풀어냈다.

악플, 사이버폭력, 왕따 등등 청소년 뿐만 아니라 성인들까지도 문제가 되는 것들이라서 공감하기가 쉬웠는데,

학교와 온라인을 주 무대로 해서 누군가 재미 삼아 달아놓은 짧은 댓글, 순간의 분풀이로 남긴 말,

혹은 단순한 호기심으로 시작된 행동이 결국은 한 사람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삶 전체를 뒤흔드는 과정이 섬세하게 그려진다.


​자아가 아직 완전히 확립되지 않은 청소년기에는 다른 사람들이 가볍게 던진 한마디에도 크게 흔들리고 작은 소문에도 쉽게 무너진다.

하물며 불특정 다수가 지켜보는 온라인 공간에서 쏟아지는 악플이라면 그 충격은 감당하기조차 어렵다.

작가는 이 현실을 날카롭게 보여주면서도 지나치게 무겁거나 훈계조로 흐르지 않게 균형을 잡았다.

그래서 청소년 독자들은 거부감 없이 공감하며 읽을 수 있을 것 같이 보였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악플을 남긴 인물들이 결코 특별히 악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저 순간의 충동이나 농담처럼 가볍게 던진 말일 뿐이었는데, 결과는 너무나 심각하고 돌이킬 수 없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인터넷이라는 공간의 무서움이 드러난다.

익명성은 자유를 보장하는 동시에 책임을 희석시킨다. 현실에서라면 쉽게 내뱉지 못할 말도 온라인에서는 가볍게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말은 공중에 흩어져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가슴에 남아 깊은 흉터가 된다.

책 속 사건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나는 혹시 무심코 남긴 말로 누군가를 아프게 한 적은 없을까?"

"내가 가볍게 던진 한 줄의 댓글이 어떤 사람에게는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은 건 아닐까?"라는 질문이 따라온다.


흥미로운 것은 이 책이 단순히 악플의 위험성을 강조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친구들 사이의 갈등, 오해, 화해, 그리고 성장이 함께 담겨 있다.

덕분에 이야기는 훨씬 입체적으로 다가오고, 독자는 단순히 악플은 나쁘다라는 교훈을 넘어서서 인물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관계를 회복해 나가는 여정을 따라가게 된다.

청소년 독자라면 내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다라는 공감을 얻을 수 있고, 성인 독자라면 학창 시절 자신이 겪었던 경험들을 떠올리게 된다.

결국 이 책은 세대를 넘어 누구나 곱씹을 수 있는 메시지를 품고 있다.


나 역시 불과 몇 개월전부터 인터넷에서 익명성을 핑계로 자신들은 숨기고, 나의 정보를 올리고 악플을 일삼는 사람들에게 시달리고 있다.

몇몇 사람들은 법적으로 대응에 사과를 했지만, 그 와중에도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정보는 숨긴 SNS를 이용했다.

그들은 개인정보를 유포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정말 해서는 안될 끔찍한 일들까지 말을 꺼냈다.

보통은 'ㅈㅅ을 하라'는 것이었는데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무슨 권리로 남에게 목숨을 끊으라는 말까지 하는지,

저주를 퍼붓는진 모르지만 언젠가 자신들에게 돌아가지 않을까?


아무튼 책장을 덮고 난 뒤 가장 크게 남은 감정은 아무래도 '조심스러움'이었다.

내 말과 행동이 상대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또 한 번 절실하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청소년 문학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지만, 던지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말의 무게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은 시대와 세대를 넘어 우리 모두에게 유효하다.


읽는 내내 학창 시절 무심코 던졌던 말이나 장난처럼 했던 행동들이 혹시 누군가에겐 큰 상처로 남은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고,

지금을 살아가는 청소년들은 SNS와 온라인이라는 더 넓은 무대에서 훨씬 더 큰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이 책은 청소년들에게는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을, 어른들에게는 다시 한 번 말과 행동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만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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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얼굴
이현종 지음 / 모모북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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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얼굴, 드러나는 진실의 파편들

- 숨겨진 것들이 드러나는 순간을 마주하다.


표지가 매우 강렬해서 한 번 보면 지울 수 없는 책을 만났다. 바로 모모북스에서 나온 이현종 작가님의 '숨겨진 얼굴'이다.

최근에 읽는 장르소설들은 심리보다는 공포, 요괴 쪽에 많이 쏠려 있었는데 오랜만에 심리 스릴러물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우리가 평소에 잘 꺼내지 않는 이야기들, 그러니까 두려움, 분노, 외로움, 슬픔 같은 것들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든다.



주인공 준혁이 마주하는 충격적인 진실과 숨겨진 얼굴들은, 읽는 내내 마음 깊은 곳을 흔들었다.

준혁은 부모님의 죽음이라는 슬픔 속에서 그들이 남긴 재단과 유산, 그리고 숨겨진 행적과 마주한다.

평생 선하고 희망을 나눴던 부모님이 사실은 우리가 알지 못했던 복잡하고 어두운 면을 가지고 있었다는 놀랍지만, 현실적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선하다는 건 무엇일까? 우리는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의 진심을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걸까?라는 질문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타임머신의 설정이 꽤나 새로웠다. 이 책 속에 등장하는 타임머신은 단순히 과거로 돌아가 시간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과거를 체험하며 진실을 마주한다는 점이 기존 타임머신을 이용한 시간 여행 물과 차별화된다.

과거를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준혁이 선택해야 하는 순간들은 읽는 내내 나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

만약 내게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과거를 바꿔 무언가를 되돌릴 용기가 있을까?

물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이 책이 던지는 철학적 메시지가 깊게 다가왔다.


또 등장인물들도 정말 매력적이다. 그들은 저마다의 비밀을 가지고 있고, 그 비밀이 드러날 때마다 긴장감이 더해지는데

끝까지 믿을 수 있는 인물이 몇 명 없다는 점이 이 책의 매력 중 하나다.

책을 읽으면서 인물들의 진짜 의도를 파악하려고 애쓰게 되고, 그 과정에서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하게 된다.



특히 흥미로웠던 건 희망재단과 얽힌 등장인물들의 복잡한 관계였다. 각자의 욕망과 약점, 그리고 숨기고 싶은 진실들이 얽히며 긴장감이 지속되었다.

조대식, 차혁진, 이병찬, 박희성 같은 인물들이 서로 속고 속이는 모습은 인간의 취약함과 욕망이 얼마나 파괴적일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특히 형사들이 폐창고에 잠입해 증거를 확보하려는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손에 땀을 쥐며 긴장했다.


​이 책이 남긴 가장 큰 울림은, 사람에게는 누구나 숨기고 싶은 얼굴이 존재하며, 그 진실과 마주하는 순간이 반드시 찾아온다는 것이었다.

준혁이 부모님의 숨겨진 모습을 마주하면서 겪는 혼란과 분노, 그리고 선택의 고민은 나에게도 오래 남았다.

인간은 선과 악을 나누어 생각하고 싶어 하지만, 현실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사실을 책은 잔혹하게 보여준다.


​문체는 담담하고 절제된 느낌이었다. 과장된 표현 없이도 독자의 마음을 울리는 힘이 있었다.

그래서 읽는 내내 긴장감이 감돌고, 다음 페이지가 궁금해지게 만드는 흡입력이 있었다.

문장 하나하나가 깊은 울림을 주고,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 덕분에 나 역시도 읽는 내내 준혁과 함께 공명하며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던졌다.

'과거를 바꿀 수 있다면 과연 옳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의 진실이 드러난다면 나는 그것을 외면할  수 있을까?' 같은 질문들을 말이다.


​이 책은 단순한 범죄 스릴러가 아니라, 인간 내면의 도덕적 판단과 자유 의지에 대해 곱씹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마지막으로, 소설이 주는 스릴과 긴장감은 영화 범죄 도시나 여타 누아르 장르를 떠올리게 했다.

액션과 반전, 그리고 시간여행이라는 흥미로운 설정이 결합되어 한 편의 영화 같은 몰입감을 선사했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메시지와 인간의 양면성은 단순한 오락이 아닌, 깊이 있는 울림을 선사했다.


​인간의 숨겨진 면, 진실과 마주해야 하는 순간, 그리고 선택과 책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며,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감정들이 얼마나 복잡한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준다.

두려움이나 슬픔 같은 감정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그걸 어떻게 표현하고 마주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고 나면 쉽게 덮어버릴 수 없고, 한동안 마음속에서 그 울림이 계속 맴돈다.

나는 이 책을 단순히 스릴러를 즐기고 싶은 사람뿐만 아니라, 인간의 본질과 선택에 대해 곱씹어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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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 의복 경연 대회
무모한 스튜디오 지음, 김동환 그림, 김진희 글 / 하빌리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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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한 삽화와 화려한 옷의 향연

- 읽는 즐거움과 보는 즐거움을 동시에 주는 상상력 넘치는 책



처음 '금수 의복 경연대회'를 받았을 때, 선물을 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양장본 특유의 고급스러움이 주는 묵직함과 만족감이 있었고, 표지와 내지도 정성스럽게 만들어져 있어 책장을 넘기기 전부터 이미 마음이 설렜다.

요즘은 전자책으로 빠르게 읽는 경우도 많지만, 이 책만큼은 꼭 종이책으로 소장하고 싶다는 마음이드는 책들이 있는데 이 책 역시 그런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겼다.



책을 펼치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정교한 삽화였다. 단순히 내용을 보조하는 그림이 아니라, 이야기 자체의 일부로 살아 움직이는 듯한 그림들이었다.

의복을 묘사한 장면을 읽고 나서 삽화를 보면 글과 그림이 서로 보완하며 완벽한 하나의 이미지로 머릿속에 남았다.

다 읽고 난 후에도 나는 책을 덮지 못하고 삽화만 다시 넘겨보았다.

어떤 선으로, 어떤 디테일로 그려졌는지 눈길이 자꾸 머물렀고, 또 그것을 어떻게 문장으로 풀어냈는지 다시 한 번 살펴보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엄마에게도 보여드렸는데, 엄마 역시 "그림이 세밀하고 특징 표현이 잘 되었다고, 참 괜찮은 책이네"라고 감탄하셨다.

세대가 달라도 감각적인 그림 앞에서는 똑같이 빠져들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물론 삽화만이 다가 아니었다. 이 책의 매력은 본문 속 의복 묘사에서도 또 한 번 드러난다.

의복경연대회라는 무대를 배경으로 등장하는 다양한 옷들은 글 속에서 살아 움직였다.

책 속에서 의복을 묘사하는 문장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느껴졌다. 옷감의 질감, 자수의 무늬, 장식의 화려함이 글자 속에서 살아났다.

단순한 텍스트의 묘사를 넘어서서 상상력을 폭발시키는 힘이 있었고, 나는 실제로 화려한 패션쇼의 객석에 앉아 옷을 감상하는 관객이 된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래서 읽는 동안 내 마음속에서는 늘 한 가지 질문이 맴돌았다. 이 옷들을 실제로 본다면 얼마나 감동적일까?라고...


​이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옷이라는 일상적인 소재를 이렇게까지 환상적이고 정교하게 끌어올린 작품은 흔치 않다.

단순히 옷이 아니라 상징적이고 화려한 세계관 속에서 의복은 그 자체로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다.

화려한 무대 위에서 수많은 동물과 의복이 어우러지는 장면은 한 편의 패션쇼 같으면서도 동시에 거대한 설화의 한 장면처럼 다가왔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는 패션쇼이자, 감각적인 판타지 무대라고 부르고 싶었다.

이 책은 쉽게 넘길 수 없는 책이다. 읽다 보면 문장과 그림이 던지는 밀도 높은 상상력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고, 그림과 문장에 대한 미련이 발목을 잡는다.

다시 한 번 살펴보고, 다시 한 번 읽어보고, 그림을 먼저보고, 문장을 먼저보고, 그림과 문장을 비교해보고 몇 번이나 페이지 페이지마다 머물렀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단순히 재미있는 이야기를 본 것이 아니라, "책이 줄 수 있는 경험의 끝"을 맛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보는 재미와 읽는 재미가 동시에 충족되는 드문 책이었다.

삽화가 전달하는 시각적 충격과 문장이 만들어내는 상상력의 파동이 맞물리며, 자신도 모르게 그 세계 속에 깊숙이 들어가게 된다.

단순히 읽고 끝나는 책이 아니라, 보고 다시 보고 싶게 만드는 책. 그래서 이 책은 독서 후의 시간이 더 즐거운 책이었다.


​이 책은 결국 상상력을 자극하는 책을 넘어, 상상력의 무대를 펼쳐 보이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읽는 동안은 물론이고, 다 읽고 난 후에도 그림과 문장이 머릿속에서 계속 반복 재생된다.

그것이 바로 사람들이 이 책을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이유겠지.


문학과 예술이 만났을 때, 그리고 그것이 정교하게 엮였을 때 얻을 수 있는 기쁨이 무엇인지를 이 책이 보여준 것 같다.

나에게 '금수 의복 경연대회'는 단순한 한 권의 책이 아니라,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을 하나의 전시회, 하나의 패션쇼 같은 경험이었다.


언젠가 다시 꺼내 보고 싶고, 책장에 오래도록 두고 싶은 책.

나는 앞으로도 가끔씩 이 책을 펼쳐 삽화를 들여다보고, 화려한 문장을 곱씹으며 또다시 상상력의 무대로 들어갈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하고, 감탄하게 하고, 오래도록 곁에 두고 싶은 책이고, 패션, 판타지, 감각적인 묘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만나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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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환
앨러스테어 레이놀즈 지음, 이동윤 옮김 / 푸른숲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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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전형적인 SF의 매력, 그래서 더 빛나는 것

- SF의 중심에서 대전환을 외치다!



요즘 나는 SF 소설과 조금 친해졌다고 생각했다. 몇 권의 작품을 읽고 나니까 이제는 복잡한 세계관도, 낯선 과학 용어도 어느 정도 받아들이는 것 같았고,

우주와 과학, 상상력으로 빚어진 SF 세계의 매력을 어느 정도는 이해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대전환'을 마주하고 나서 그 생각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내가 알던 SF의 세계는 그저 입구에 불과했고, 여전히 그 세계는 무궁무진했으며, 끝을 알 수 없는 깊고도 방대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이 책은 출간 소식과 함께 이미 여러 평론가들과 사람들에게서 호평을 받았는데, 직접 읽어보니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열광했는지가 단번에 이해됐다.

그건 단순히 흥미롭거나 재밌어서가 아니라, 작품 자체의 밀도와 체계, 그리고 하드 SF 장르의 본질을 충실히 구현한 서사의 힘 때문이었다.

SF라는 장르가 가진 매력, 즉 지적인 긴장감과 철저한 설정, 그리고 그 위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이야기가 모두 살아 숨 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단순히 재밌다는 차원을 넘어서 끝까지 생각하게 만들고, 다시 돌아가서 읽게 만들면서 상상력을 머릿 속으로 되뇌이는 과정을 반복하게 만들었다.

짧은 페이지의 책이 아니라 방대한 페이지와 이야기를 가진 책이라서 중간중간 쉼표는 있었지만, 끝내 따라가도록 이끄는 힘이 있었다.


소설의 첫 장면은 19세기 범선 ‘데메테르호’에서 시작된다.

균열 너머의 세계를 탐험하기 위해 나선 보조의사 사일러스 코드는 난파선과 조우하며 죽음을 맞이한다.

얼핏 평범한 탐험 소설처럼 보이지만, 그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는 시간과 공간을 가로질러 수 세기에 걸쳐 반복된다.

범선에서 증기선, 비행선, 그리고 우주선으로 진화하는 운송 수단은 단순한 배경 장치가 아니라,

인류의 지적 호기심과 기술 발전이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이야기였다.

이 과정에서 레이놀즈는 천체물리학자 출신답게 과학적 디테일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그 속에 인류의 모험심과 두려움, 욕망을 녹여낸다.


특히 흥미로웠던 부분은 '구면 전환'과 관련된 부분이었다. 지도 제작자 뒤팽이 연구하는 위상수학적 개념인 구면의 안팎이 바뀌는 전환,

그리고 그 멈춤 속에서 드러나는 '모린 표면'은 단순히 수학적 이미지로 머물지 않는다.

거미와 문어 같은 괴상한 형상으로 묘사되는 이 장면들은 현실 자체가 비틀리고 뒤집히는 듯한 감각을 준다.

처음엔 이 부분이 너무 어려워서 인터넷으로 구면 전환이나 모린 표면에 대해서 검색하고 찾아봤는데, 여전히 완벽한 이해는 쉽지 않다.

이처럼 과학적 개념과 감각적 체험을 동시에 던져주는 장치는, 하드 SF가 왜 특별한 장르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단순히 '설정이 치밀하다'는 것 이상의 몰입을 주기 때문이다.



읽는 내내 나는 마치 정교하게 설계된 퍼즐을 하나씩 맞추어 가는 느낌을 받았다.

당장은 이해되지 않는 개념과 조각들이 책 속에 흩어져 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그것들이 서로 맞물리며 하나의 큰 그림을 드러낸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 그 모든 조각들이 거대한 전환이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모일 때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을 받았다. 평론가들이 이 소설을 두고 "쉽게 풀리지 않아 짜증 나도록 매혹적이다"라고 표현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끝까지 읽고 난 후에야 비로소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고, 그 여정을 통해 아, 이게 진짜 사람들이 말하던 SF구나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또 SF 장르와 친해졌다고 생각했던 나의 안일함을 흔들어 깨우며, 여전히 배울 것도, 탐험할 것도, 놀랄 것도 끝없이 많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유행을 따라 가볍게 즐기는 SF라기보다는, 장르의 뿌리 깊은 매력을 정공법으로 담아낸 작품이라는 게 정말 좋았다.


과학적 상상력, 철저한 설정들 그 속의 과학에 집착하거나 풀어나가는 인물들의 다양한 이야기들. 이런 전형적인 SF의 느낌이 지금의 나에게는 더 강하게 다가왔다. 

최근에 유행하는? 나름 특이한 설정들 사이에서, 장르의 기본기, 장르가 가진 본질에 충실하다는 것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는지를 다시금 깨닫게 해주었다.

사실 이 책은 가볍게 읽히는 소설이 아니다. 때로는 버겁고, 이해되지 않는 부분에 좌절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확신을 준다.

SF라는 장르는 끝없이 확장되는 우주처럼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여정은 힘들지만, 그 마지막 순간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다는 확신 말이다.


SF라는 장르가 왜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지, 왜 많은 이들이 입을 모아 찬사를 보냈는지를 직접 보여준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이 소설이야말로 지금의 SF 장르를 대표할 수 있는 중심점 같은 작품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제 나는 다시 겸손한 마음으로 SF장르를 대하려고 한다. 하지만 앞으로도 SF소설들을 피하지 않을 예정이다.

마주보고, 끝까지 읽으며, 받아드릴 각오를 하고 있다. 어렵지만 포기하기 어려운 매력적인 장르기 때문이다.


​SF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무조건 한 번은 읽고 넘어가야 하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그 외에 지금의 내가 이 책을 달리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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