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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세계가 하나였다 ㅣ 픽셔너리 1
박대겸 지음 / 북다 / 2025년 8월
평점 :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평행우주와 창작의 상상력
- 낯익은 얼굴과의 마주침, 흔들리는 현실

박대겸 작가님의 '모든 세계가 하나였다'는 제목부터 묘한 매력을 풍깁니다.
"모든 세계"라는 말이 암시하는 거대한 스케일과 동시에 "하나였다"라는 문장이 전하는 단순함이 묘하게 충돌하면서, 책을 열기 전부터 이 소설이 어떤 세계를 보여줄지 궁금하게 만들죠.

소설의 시작은 의외로 일반적이고, 일상적입니다.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주인공, 그 속에 소설가 박대겸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곧 낯익은 복장을 한 또 다른 자신을 마주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뒤흔들기 시작합니다.
책을 읽으면 이 만남이 실제인지 상상인지, 혹은 그 사이 어딘가인지 분간할 수 없는 상태로 빠져들게 되죠.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구성이 참 특이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재미는 장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데 있습니다.
어느 순간에는 출판 원고에 대해 고민하는 작가의 모습이 그려지지만, 또 다른 순간에는 탐정 ‘에른스트’라는 인물이 등장해 이야기를 완전히 다른 톤으로 바꿔버립니다.
작가님은 장르의 문법을 교묘하게 이용하면서도 비틀어내는데, 그 과정이 매우 유쾌합니다. 마치 독자가 소설의 울타리를 벗어나 작가와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특히 '소설에 탐정이 등장하는 순간, 아무리 에세이처럼 써도 완전히 픽션이 된다'라는 문장은 이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을 보여줍니다. 소설은 결국 허구라는 사실, 그러나 허구를 믿는 순간 현실보다 더 진짜처럼 다가올 수 있다는 메시지가 자연스럽게 전해집니다. 이 대목에서 박대겸이라는 작가는 소설이라는 형식 자체를 유희의 장으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평행우주라는 설정은 작품에 한층 더 넓은 상상력을 불어넣습니다.
내가 창조한 소설가 박대겸이 또 다른 세계 어딘가에서 진짜로 존재할 수도 있다는 발상은, 단순히 흥미로움을 넘어서 창작 행위 자체에 대한 철학적 성찰로 이어집니다.
결국 이 책은 작가와 작품, 독자와 세계가 서로 맞물리며 무한히 확장되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소설인 셈이죠.
흥미로운 점은, 이렇게 무겁게 들릴 수 있는 주제들을 작가가 경쾌한 리듬과 위트 있는 문체로 풀어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때로 웃음을 터뜨리며 페이지를 넘기다가도, 문득 깊은 질문 앞에 서기도 합니다.
이 균형감각 덕분에 책은 결코 어렵거나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가볍게 읽히면서도 여운을 오래 남깁니다.
이 책은 단순히 하나의 소설을 읽는 경험을 넘어,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다시 던지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현실과 허구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우리가 믿는 세계의 경계를 슬며시 흔들어놓는 이 작품은 소설 읽기의 즐거움을 새삼 깨닫게 해준 좋은 작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