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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실의 새 - 나는 잠이 들면 살인자를 만난다
김은채 지음 / 델피노 / 2024년 5월
평점 :
새의 시선으로 마주한 살인 현장 이것은 꿈인가 현실인가
여름은 공포의 계절입니다 물론 저는 계절에 상관없이 공포에 빠져서 살고 있는 사람이지만요
최근에 다양한 공포 소설들이 많이 출간되고 있어서 매우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요
오늘은 제목과 소재, 표지에서부터 호기심이 생겨서 이건 꼭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책인데요
바로 델피노에서 출간된 김은채 작가님의 '지하실의 새'라는 책이었습니다
지하실의 새는 소설가인 하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주인공인 하진은 29살의 소설가인데요
그런 그에게는 남들은 모를 숨겨진 비밀이 있었으니 바로 잠이 들면 살인자를 만난다는 것이었습니다
꿈속에서 하진은 매번 누군가가 참혹하게 살해되는 현장을 목격하게 되는데요 그것도 바로 새가 되어서 말입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런 새가 피해자의 시체를 먹는 느낌조차도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는데요
하진은 그런 꿈속의 이야기를 모두 다 소설화해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습니다
사실 처음엔 단지 악몽이라고 치부했던 사건들이었지만 점점 이상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건들이 꿈이 아닌 현실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걸 알게 되죠
처음부터 저는 새의 시선으로 사건 현장을 본다는 소재가 너무 참신하고 재미있어 보여서 책이 도착하자마자 읽었는데요
순식간에 넘어가는 책장과 스토리들이 한 번 손에 잡으면 책을 놓을 수 없게 하는 몰입감이 있었습니다
제가 김은채 작가님을 잘 몰라서 알아봤더니 방송 작가 출신에 스릴러 웹툰까지 연재하셨던 경력이 있더라고요
문체도 보기 좋았고 묘사도 좋지만 어렵지 않게 사람들이 쉽게 읽을 수 있게 써주셔서
진짜 가볍게 잘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칼은 나에게 진통제이자 수면제였다. 어김없이 나를 꿈으로 이끌었다.
이번에 나는 무엇일까? 어디일까? 어떤 꿈을 꾸게 될까?
하진은 사람이 살해당하는 섬뜩한 꿈을 반복해서 꾸면서 처음엔 고통 속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그 고통을 이기기 위해서 자해까지 하게 되죠
하지만 큰 사건 이후에는 스스로 악몽을 극복하기 위해서 꿈의 내용을 기록하며 소설가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데요
결국엔 악몽으로 인해서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위치까지 올라가게 되었지만,
피와 살육으로 물든 잔인하고도 섬뜩한 그 꿈 속의 장면들을
몇 번이나 몇 번이나 다시 떠올리면서 글을 써야 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는 오히려 현실에서 도피가 필요하면 하진은 꿈속으로 도망을 가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한때는 하진에게 큰 고통을 주었던 악몽이 어느 순간 하진의 밥벌이 수단이 되고,
현실의 도피처가 되어버리는 아이러니한 상황
물론 하진은 그것이 단순한 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제 그것이 익숙해지고
그냥 단순히 넘어가면 되는 상황으로 치부했을 수도 있을 테지만요
입안에 씁쓸한 차 맛이 사라졌다. 대신 시척지근한 피 맛이 밀고 들어왔다.
숙성된 피 맛이었다. 조금 시간이 지난 듯했다.
비록 꿈속이지만 소름 끼치게 선명한 감각은 이제 얄밉기까지 했다.
꿈에서 까마귀가 될 때면 반드시 시체를 취하게 돼서, 비위를 단단히 하지 않으면 안 됐다.
그들이 되었을 때가 가장 고단하다. 하지만 가장 '나'답다. 나는 그들과 닮았다.
"까아악! 까아악! 까아악! 까아악!"
네 번 울었다. 이제 곧 높은 곳으로 날아오를 거란 예고.
지금은 어둡지만, 곧 내 입에 들어온 이 시큰한 피의 주인이 누구인지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꿈속에서는 또 무엇을 보게 될까.
이것이 두려움인지 기대인지 여태껏 정의하지 못하고 날개를 펼쳤다.
하진이 새가 되어 느껴지는 것을 표현하는 장면들은 오묘하고도 기괴하고 신선했습니다
이것은 작가님의 묘사도 좋았긴 하지만 그저 새의 시선이라는 생각만으로도
그 느낌이 달랐기 때문인 건 숨길 수 없는 사실입니다
마치 내가 진짜 새가 되어 시체를 섭취하거나 살육의 현장을 지켜보는 것처럼 숨을 죽이게 되었다면 과장일까요?
하진이 꿈을 이용해서 글을 쓰는 것을 생각해 보면서 정말 신기했던 것이 저라면 아무리 꿈이라고 하더라도
그렇게 실제와 같은 상황이라면 쉽게 글로 쓰지 못했을 것 같다는 것이었는데요
어떤 영화에서도 그런 장면이 있잖아요 소설가이던 영화의 주인공이 살인과 시체를 목격하게 되었고
그 살인의 내용을 토대로 소설로 썼다가 의심을 받기 시작하게 되는...
물론 그 영화에서는 결국은 주인공 스스로도 살인마가 되어버렸지만요
여기서 제가 말하는 것은 바로 '의심'이라는 것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인데 두렵지 않았던 것일까?라는 의문점입니다
하진은 그걸 생각하지 못했던 것일까요? 아니면 두려움보다도 더 앞선 무언가가 있었던 것일까요?
"기, 기억은 잃어버려 기억을 못 하는 일도 꿈에서는 나타날 수 있나요?"
"그럼요."
심장이 철렁하고 내려앉았다.
"내재화되어 있던 것들이 꿈에서 보일 수 있죠. 내재되어 있는 것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반드시 튀어나오게 되어 있으니까요. 습관이 무섭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래서 기억상실 환자 중에서 잃어버렸던 집을 찾아가는 사람도 있어요.
몸은 그걸 기억하는 거죠."
사실 의사하고 상담하는 장면에서 대화하고 생각하는 걸 보면 하진은 자신에게 다가올 "의심"보다는
그것이 '자신이 한 행동일 수도 있는가?'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 두려움에 앞서서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 갈 수도 있었던 악몽을 극복해 보고자 했던 마음이 더 앞선 것 같기는 합니다
'그럼 제가 살인 꿈을 계속 꾸는 것도 제가 살인을 해서일까요? 저는 살인자일까요?'하고
차마 묻지 못했다. 그동안 나에게 꿈과 현실은 서로 무관한 것이었는데......
꿈도, 현실도, 의사도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었다. 머리가 다시 뜨거워졌다.
결국 하진은 당연하게도 자신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아니고자 바랬던 현실에 마주하게 됩니다
꿈속에서 보았던 모든 사건들이 꿈이 아니라 현실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당연히 그 사건들의 내용을 상세하게 적어서 소설로 출간했던 본인이 유력한 용의자가 되어버렸던 것이죠
하진은 본인이 그 사건을 저지른 살인마인지 아니면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 속에 무언가가 있는 것인지 알기 위해서
과거에 살았던 마을도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는데요
뒤로 갈수록 하진이 겪었던 모든 것들이 굉장히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반복되는 살인에 대한 묘사들 인물들의 말과 행동들이 하나같이
너무 생생하게 떠오르는 기분이라서 묘했습니다
영상화되면 정말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 장면들 직접 진짜로 연기하는 모습을 보면 잔인하겠지만 그 심리적인 표현들이 생생하게 느껴지겠지?
배우들의 표정 하나하나에서 지금 나온 이야기들이 감정들이 제대로 느껴지겠지? 란 생각도 많이 하게 된 것 같아요
새의 시선으로 살인의 장면을 목격한다는 소재는 너무 흥미로웠고
결말에 다가갈수록 숨겨져 있던 인물들의 관계성과 진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진짜 소재 때문에 읽게 되었는데 책을 읽으면서는 인물들의 관계성과 진실이 너무 궁금해서
계속 읽게 되었던 것 같아요
결국 하진이 꿈속에서 실제 현장을 볼 수 있었던 이유는
끊으려고 했지만 결코 끊어질 수 없던, 기억 속 저편에 숨겨져 있던 그 무언가의 '끈'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죽음을 당한 사람들이 본인은 원치 않아도 살인자와 결국 가장 가까운 '끈'을 이용해서
살인자를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들고자 했던 크나큰 원념 때문이었을까요?
최종적으로 하진에게 나쁜 일은 생기지 않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아니 사실은 진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 하진의 인생은 크게 바뀌게 된 것이겠지만....
그래도 그나마 그 정도가 가장 아름다운 마무리가 되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롭고도 기괴한 상상을 할 수 있었던 스릴러 였고
앞으로 한국 스릴러 장르의 미래는 밝다는 걸 한 번 더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