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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스의 빨간 수첩
소피아 룬드베리 지음, 이순영 옮김 / 문예출판사 / 2018년 11월
평점 :
절판
살아온 날들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얼마남지 않았다고 느껴지면 누구나 자신이 이 세상에서
살았던 흔적을 남기고 싶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누구라도 죽음을 피해갈 수 없다'는 분명한 사실은 나와 가까운 사람이 그 길을 떠났을 때, 또는
죽음의 문턱에 갔다가 다시 돌아왔을 때 더 실감하게 됩니다.
스톡홀름에서 혼자 살고 있는 96세의 도리스. 그녀를 돌보는 간병인과 멀리 떨어져 컴퓨터 화상
채팅으로만 소식을 주고 받는 종손녀 제니만 그녀 곁에 남아 있습니다.
도리스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물건은 그녀가 살아오면서 만났던 모든 사람에 대해 기록해둔
빨간 수첩입니다.
도리스는 자신의 인생에서 빛났던 순간, 힘들었던 순간. 매 순간 그녀 곁에 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첩에 기록해두었습니다.
도리스는 자신이 죽으면 종손녀인 제니가 빨간 수첩 속 사람들과 자신을 기억해주길 바라면서
제니에게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제니가 자신이 죽고 나서도 기억해주길, 자신이 어떤 사람을 만났고, 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무엇을 얻었는지, 어떤 삶을 살아냈는지를 기억해주길 바랍니다.
도리스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읽으면서 그녀가 무척 강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어린 나이에 가족을 위해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도리스.
그녀는 가족을 떠나 가정부 생활을 하게 됩니다. 가족을 떠나기 전 엄마가 해주신 말은 그녀가
힘들 때마다 위로를 주었고, 이젠 종손녀 제니에게도 큰 힘이 되어주는 말이 되었습니다.
엄마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어. "네가 살아가는 동안 네 하루하루를 밝힐 만큼의 태양이 내리
쬐기를, 그 태양에 감사할 만큼의 비가 내리길 바란단다. 그리고 네 영혼이 강해질 만큼의 기
쁨이 있기를, 살면서 만나는 작은 행복의 순간들에 감사할 수 있을 만큼의 고통이 있기를 바란
다. 때때로 작별인사를 할 수 있을 만큼의 만남이 있기를 바란다." (53쪽 ~ 54쪽)
"제니, 삶을 두려워하지 마. 그냥 살아. 네가 원하는 대로 사는 거야. 웃어. 인생이 너를 즐겁게
해주는 게 아니라, 바로 네가 인생을 즐겁게 해야 하는 거란다. 기회가 오면 과감하게 그것을
잡아. 그리고 그 기회를 이용해 좋은 것을 이뤄내라." (426쪽)
그녀가 죽기 전 제니에게 남긴 말은 지금 우리들에게도 꼭 필요한 말인 것 같습니다.
"난…… 내가 바라는 건…… 너의……." 도리스가 힘이 하나도 없는 목소리로 겨우 이렇게만
말하고 눈을 감는다.
"네 하루하루를 밝힐 만큼의 태양이 내리쬐기를, 그 태양에 감사할 만큼의 비가 내리길. 그리고
네 영혼이 강해질 만큼의 기쁨이 있기를, 살면서 만나는 작은 행복의 순간들에 감사할 수 있을
만큼의 고통이 있기를. 때때로 …… 작별인사를…… 할 수 있을 만큼의 만남이 있기를." 제니는
살아오는 내내 도리스에게 그토록 자주 들었던 말들을 채워 넣는다. 제니의 입술이 떨리고 두
뺨에 눈물이 흐른다. (423쪽)
제니가 도리스에게 다시 들려준 엄마의 마지막 말 또한 지금 우리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네줍
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