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는 잊지 말아요 - 기억을 잃어가는 엄마와 함께한 딸의 기록
하윤재 지음 / 판미동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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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로 인해 기억을 서서히 잃어가는 엄마와 딸의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생활이 담긴 글이다.

'치매, 엄마와 딸'이라는 주제는 자칫 뻔하고 흔한 신파로 내용이 흐를 수도 있는 위험이 있다. 

그러나 저자는 담담하게 엄마가 기억을 잃어가는 과정, 엄마가 살아왔던 삶, 엄마와의 추억을

친구에게 일상 통화를 하듯 이야기한다. 


처음 책 제목을 보자마자 덜컥 겁이 나고 서글픔을 느꼈다. 

치매라는 것이 벽에 똥칠하거나 자식을 못 알아보는 병이라는 대표적인 이미지가 가득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내가 겁을 집어 먹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엄마에게 내 존재가 잊혀진다는 것, 더 이상 엄마에게 

나는 상관없는 사람이 된다는 두려움이 왈칵 몰려왔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현재 내 상황과 엇비슷하기 때문일까? 저자의 시선으로 담담히 읊어 내려가는 엄마와의 일상을 보면서 나의 모습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되었다. 어둠의 다크니스 기운이 가득하던 중2병 시절 시내에서 내 이름을 몫 놓아 부르던 외할머니를 외면했던 내 모습이 떠올라 견딜 수 없이 화가 났고,늘 쓸고 닦고 더러운 것은 견디지 못하던 외할머니께서 뇌를 다치고 나서는 180도 달라지셨을 때의 충격, 엄마의 엄마가 요양병원에 가셔야 한다는 현실에 나의 엄마는 또 얼마나 암담하고 무섭고 캄캄했을까 엄마의 슬픔의 깊이를 헤아리지 못했던 내 모습. 그리고 '엄마는 무엇을 좋아할까?' 생각했을 때 먹을 것만 떠오른 내 자신이 견딜 수 없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치매라는 병을 통해 엄마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오만을 벗고, 또 다른 모습의 엄마와 하루하루 조금씩 대면하고 있다는 저자의 말에 '난 엄마를 정말 잘 알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제대로 알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뭘 하더라도 '엄마는 엄마니까'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면죄부처럼 생각하지 않았었나 되돌아보게 된다.


요양원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우리세대가 너무 쉽게 요양원을 남발하듯 떠올리는 것이 아닌가, 삶의 본질을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외치는 저자에 말에 다시 한번 내 생각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름 심리학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며 사회복지와 관련된 일에 잠시 몸담았을 때 요양원, 요양병원에 대해 무조건 적대시하고 부모를 버린다고 생각하는 인식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가진 적이 있었다. (물론 현재도 이 인식은 거의 변하지는 않았다.) 


외할머니께서 뇌를 크게 다쳐 병원에 계실 때 모실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걱정하는 이모와 엄마에게 '집에서 방치하거나 제대로 케어를 하지 못해 서로 악이 되는 상황이라면 요양병원에서 제대로 된 케어를 받는 것이 낫다, 죄악처럼 생각하지 마라'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이모는 너의 엄마라면 그렇게 말할 수 있냐고 역정을 내셨지만, 엄마는 담담하게 병원에 일단 모시자고 결정을 했었다. 현재는 이모가 외할머니를 모시고 있고, 외할머니의 상태도 많이 호전되셨다. 지금은 모두 잘 풀렸고 당시에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과연 진짜 어쩔 수 없던 상황이었는지,내 의견이, 생각이 너무 쉽게 요양병원을 생각했던 것이었을까, 나도 요양원을 남발하듯 떠올리는 사람이었을까 고민하게 된다. 


외할머니께서 다친 순간부터 몇 개월간 엄마의 살은 급격하게 빠지기 시작했고 외할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시기로 결정한 날, 엄마는 뜬 눈으로 날을 지새웠다. 엄마는 또 얼마나 캄캄한 나락으로 곤두박질치는 기분이었을까 난 이해한다고 말은 하면서 평범한 일상 속에서 똑같이 엄마한테 투닥거리고 신경질을 낼 때가 많았고, 여전히 엄마의 손길을 계속 필요로 했다.


"팝송 많이 듣지? 팝송 중에는 클럽에서 나올 것만 같은 신나는 노래인데, 정작 가사를 음미해 보면 슬픈 가사가 의외로 많은 거 알아? 그런데 주룩주룩 비오는 날에만 틀어야 할 것같은 우울한 멜로디인데, 정작 그 내용은 온통 희망으로 가득한 노래도 있거든. 치매도 마찬가지야. 너무 두려워만 하지 않아도 돼!"


치매라고 하면 덜컥 겁부터 집어먹고, 우리 엄마도 어느 날 치매에 걸리면 난 견딜 수 있을까 걱정하던 나에게 또 다른 엄마를 알아가는 기회이고, 그렇게 겁먹지 않아도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아직도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이기적인 딸인 나는 저자가 주는 조언처럼 담담하게 언젠가 올지도 모를 그날을 견딜 수 있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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