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보다 더 재미있는 철학 - 생각하는 10대로 길러주는 철학 이야기 10대를 위한 문답수업 1
왕팡 지음, 곽선미 옮김, 강성률 감수 / 글담출판 / 201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철학이라고 하면 거창하게 느껴지고, 그 용어들도 생소해서 딴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지고는 한다. 10대를 겨냥해서 나온 책답게 가볍게 소장하며 들고 다닐 수 있는 책이다. 철학사에 굵직굵직한 인물들이 1일 선생님으로 학교에 와서 수업하는 식의, 가상의 철학 학교를 바탕으로 각 철학자의 이론을 풀어나가는 구조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얇은 책 안에 핵심들만 집약되어 있는 듯해서 꽤 만족스러웠다.

 

전에는 책을 읽으면 처음부터 쭉 읽어 내려갔었으나, 이제는 목차를 펴들고 관심이 가는 부분부터 먼저 보는 방식으로 바뀌었다.(때문에 관심있게 본 부분만 리뷰할 듯)

 

이 책을 읽을 때 내 기분이 무저갱을 헤매는 듯한 우울감에 젖어서였는지, '키르케고르 선생님, 죽고 싶을 만큼 우울할 땐 어떡하죠?' 편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쇠렌 오뷔 키에르케고르는 대학교 교양 시간에서 배운 기억이 나는데, 지금 머릿속에 남은 건 명언으로 알려진 한 마디뿐이다. '폭군이 죽으면 그의 지배는 끝나지만, 순교자가 죽으면 그의 지배가 시작된다'

 

 

 

키르케고르는 절망을 3종류로 나누어 구분한다. 자신이 절망에 처한 지를 모르는 무의식의 절망, 절망 속에 빠져 자기 자신을 원하지 않게 되는 여성형 절망, 그리고 절망 속에서도 자신을 증명하고자 하는 남성형 절망. 완벽하다고 믿는 삶이 거부당하면 극단적인 형태의 절망, 복수심에 남을 강간하고 파괴하는 등 양식의 악마의 절망으로 터져 나오기도 한다. 절망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자 하는 이들에게 강력한 자살에의 동기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자신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의 절망에 비교하면 약한 수준. 자기 자신의 절망을 인식조차 못 하는 상태가 가장 불행하다는 걸까. 계속 행복을 잡으려 애쓰며, 불행 뒤에 찾아올 행복에 희망을 건다. 하지만 실제로 행복을 갈망하는 삶은 진정으로 그들의 것이 되어본 적이 없으며, 진정으로 스스로를 인식하지도 않는다. 행복은 늘 그 자리에 있는데, 여러 가지 상황과 조건들로 재단하고는 늘 불행하다 한다. 나조차도 '앞으로는 좀 더 나아지겠지, 지금이 끝나면 곧 내 자리가 생기겠지...'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는 늘 희망 한 조각을 놓지 못한다. 사실 내 앞에 바로 행복이 놓여있는데, 장님처럼 그 주위만 뱅뱅 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여성형 절망은 영원성을 목적으로 한다. 이것은 사랑과도 같은데, 그 사랑의 순간은 영원할 것 같지만 이 또한 변하기 마련이다. 실연한 사람은 상대방과 더불어 자기 자신을 증오한다. 절망이 깊어질수록 자신과 직면하기란 어려우며 자신의 마음을 닫고 절망을 억지로 누르며 스스로 갇히게 된다. 이렇게 살펴보면 절망은 사실 자기 자신에 대한 절망이지 자신 외의 욕망에 대한 절망이 아니다.

 

 

 

남성형 절망을 설명하는 '꿈, 가장 지독한 절망 상태' 한 문장은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는 듯하다. 꿈은 늘 저기서 반짝거리고 있는데, 내가 꿈꾸던 것을 이루기 위해, 혹은 증명하기 위해 늘 자기 자신을 채찍질하여 영원에의 절망의 쳇바퀴를 돌게 된다. 절망 속에서도 이러한 유형은 가장 지독한 절망이라 키에르케고르는 말한다. 스스로 알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못나서라고 자책하며 희망 고문당하는 것. 어쩌면 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젊은이들의 자화상이 아닐까 싶다. '이 세상에도 내 자리 하나쯤은 있겠지, 이렇게 된건 내가 모자라서야, 조금만 더 하면 저기에 도달할 것같은데...' 등등등 늘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다그치며 살아간다. 이렇게 하다 보면 누군가는 사랑, 지혜 같은 긍정적인 것들과 정직, 청렴 같은 것은 그저 이상일 뿐 돈, 명예, 권력 같은 것들이 우리를 지탱하며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고 한다. 1800년대 사람이 한 말이지만, 곱씹을수록 지금의 상황과 맞아 떨어지는 듯하다. 이 유형의 절망가(?)들은 자기 자신을 포기하지 않기에 그만큼 구조될 확률이 높다한다. 마지막에 이런 상황에서 신이라는 존재가 우리를 위로하고 우리의 본질을 찾을 수 있게 지탱하는 존재라 하며 이야기가 끝난다.

 

 

 

키에르케고르 편에 바로 이어 포이어바흐 '세상에 신은 정말 존재하는 건가요?' 편으로 이어진다. 포이어바흐는 부끄럽게도 이름만 들어본 철학자이다. 맑스의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로도 유명하고 인간 소외에 대해 다루었다는 것 정도 밖에는...이 책을 읽고 나서 키에르케고르와 포이어바흐에 대해 더 알고 싶고 더 읽고 싶어졌다.

 

신의 본질은 인간에게 있으며, 신이 가진 전지전능함은 인간의 이성과 의지가 무한으로 확장된 결과, 종교는 융통성 없고 부자연스러운 자연관이자 자아관이라고 말한다. 종교는 모순 속에 존재한다. 이상과 현실 사이, 희망과 실현 사이 등 인간들은 상상 속의 존재를 통해 그것을 구체화해간다. 신성에서 소외된 인간의 본질이란 무엇인가? 본래 인성을 형성하는, 인간이 가지고 실천해야하지만 그러기 힘든 이성, 의지, 사랑 이런 모든 것이 신이라는 존재에 투영된다. 인간들은 경외심을 신에 대한 사랑으로 표현한다. 신에게 경배드리는 것만이 옳고 절대적이고 순수한 인간의 무언가를 완성한다고 한다. 포이어바흐는 신에 대한 사랑을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옮길 때 비로소 진정으로 인간소외는 극복할 수 있다고 한다. 도덕적 세계, 기도하는 자에서 노동하는 자로, 신자가 아닌 철학자로...

 

현대 사회에서는 늘 가슴 한구석에 무언가가 뻥 뚫려 휑한 마음을 지니고 사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 허전함과 외로움을 그들은 그들 나름의 신에게서 채움을 받는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게임이 될 수도, 돈이 될 수도 있고 음식이 될 수도 있다. 포이어바흐는 그들 안의 신에게서 눈을 돌려 바깥을 바라보라 말한다.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이들의 주장을 반대한 이들의 주장도 들어보고 싶고 꼬리에 꼬리를 물어 생각할 거리를 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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