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의 즐거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음, 양억관 옮김 / 에이지21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기대도 하지 않고 있다가 덜컥 서평단에 당첨되서 받은 책....

'고독을 사랑한 철학가', '고독의 즐거움'이라는 문구에 꽂혀서 무작정 신청한 책

개인주의, 마이웨이식인 나는 혼자서 하는 것들을 즐기는 편이라 작가는 어떤식으로 고독을 즐기는지 궁금했다.

대충 훑어봤을 때에는 왼편에는 큰 글자로 몇 문장이 적혀있고, 내용도 훌럭훌럭 잘 읽는것 같아서 혹시 자기개발서식의 책은 아닌지,  걱정도 살짝 ㅎㅎ 책은 전부 5파트로 나누어져서 고독,세상에서 가장 큰 사치, 간소한 삶, 마음을 풍성하게 하는 길, 소유하지 않는 기쁨, 자연이 가르쳐주는 것으로 간략하게 핵심만 짚어서 작가가 하고픈 말들을 전해준다.

 

'나만의 리듬으로 걸어가는 게 중요하다. 남의 발걸음에 맞추다 보니 늘 걸려 넘어지지 않느냐'

'남들처럼'이라는 말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자. '다들'은 어디에도 없다. '이 세상이 하는 듯이'해서는 무엇 하나 이룰 수 없다.

 

이 대목을 봤을때 방망이로 뒷통수를 엊어맞은 듯 했다. 내가 20살때 다이어리에 휘갈기듯 적었던 내용과 일맥상통

최근에도 남들과는 달리 자꾸 목표에서 멀어지고 돌아 돌아가는것이 너무 지치고 힘들고, 나는 왜 이렇게 잉여같은가, 난 정말 쓰레기같다는 생각에 좌절하고 있을 때여서 그런지 더욱 더 덜컥하게 만들었던 문장이다.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지만 마음으로는 이렇게 품기 힘든 생각...난 언제쯤 남들 신경을 안쓰고 나만의 리듬을 찾을 수 있을까... 혼자서, 고독을 사랑한다는 내 모습은, 남들과 같은건 싫다고 외쳤던 나는 어느 순간부터  남들과 멀어지고 남들과 조금이라도 달라지는 것에 두려워 떠는 사람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남이 인정하는 삶, 그것은 정말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 살아가는 삶은 결국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삶이 되고 말 것이다.

 

남이 인정한다는 말...뭔가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사는거야? 내 스스로 떳떳하면 되지...이런 생각들로 뭔가 부정적으로 느껴졌던 문장인데 이렇게 조금만 틀어서 보니까 또 색다르다. 맞는 말이다 남이 인정하는 삶,자기 자신이 생각하기에 인정할 만하다고 생각한 나의 삶은 당연히 남들이 인정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나는 남에게 인정받기만을 위해서 그렇게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평소 동물성 음식을 멀리함은 그것이 깨끗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고기를 잡아 배를 가르고 조리해 먹어보았지만 그것이 도무지 나에게 필요한 음식이라는 생각이 들 지 않았다. 빵 몇 조각과 감자 몇 알이면 번잡하지도 않고 그릇을 더럽히지도 않으면서 영양을 섭취하기에 충분하다. 나는 오랜 세월 고기나 차나 커피를 즐겨 입에 대지 않았다. 몸에 해로워서가 아니라 도무지 먹고 싶은 마음이 일지 않아서다. 동물성 음식에 대한 혐오감은 경험에 의한 것이 아니라 본능적인 것이다. 검소한 음식과 수수한 생활이 많은 점에서 훨씬 아름답게 느껴졌기 떄문이다.

 

이 문장을 읽자 마자 윤대녕 '어머니의 수저' 산문집이 생각났다. 작가가 공주의 한 절에서 맛보았던 장아찌에 관한 대목인데, 독속에서 하나의 깨달음을 얻고 나온 것들이 이 장아찌라는 것이다. '마땅히 머문 바 없이 그 마음을 내어라'는 말에 합당한 음식...그 음식 존재 자체가 하나의 선이고 법인 음식... 동물성 음식, 세속의 술과 기름진 것들에 혼탁해진 몸을 정화시키는 기능을 하는 음식... 아마 작가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본능적으로 식물성, 자연적인 것들을 찾았는 지 모르겠다. 본능적으로 정화시키는 기능에 끌렸는지도...

 

 

진리는 여기에 있다. 지금 여기서 내가 살아간다는 것을 실감하자.

사람들은 태양계 저쪽 먼 곳, 지구에서 가장 먼 별 저편 혹은 아담 이전의 시대,

인류 최후의 어느 때 어딘가에 진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영원 속에 진실하고 숭고한 것이 있다는 생각은 옳다.

그러나 이러한 시간과 장소, 기회는 모두 지금 여기에 있다.

 

 

가까이에 진리가 있는데 먼 곳, 뭔가 거창하고 거대할 것이라는 생각에 많은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끔은 옆도 뒤도 돌아봐야한다는 말일까?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을 상식이 없다고 비난한다. 그것은 자신의 어리석음 때문이다.

왜 우리는 늘 자신의 수준을 가장 둔한 통찰력에 내려 맞추고는 그것을 상식이라 찬미하는가.

우리는 보통사람보다 한 배 반쯤 머리가 좋은 사람을 모자란 사람으로 치부해 버린다. 그것은 우리가 그 사람의

지혜를 삼분의 일밖에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대목을 읽고나니 얼마전 인터넷에서 봤던 글이 생각난다. 누군가 네이트판에 올렸던 여친이 삼국지를 모른다고했나 뭘 아무튼 사람들이 교양이라고 알고있는 것에 대해 모른다는 글을 누가 번역해서 중국싸이트에 올려서 한국과 중국의 반응을 비교한 글이었다.

우리나라는 뭐 여자가 무식하느니 어쨌느니 그 여자의 교양없음을 비하하며 자신은 조금이나마 낫다는 생각들을 한건지... 한껏 익명성에 힘입어 욕을 하는 글이 절반. 중국은 내 예상과 달리 다들 이렇게 글을 쓴 남자를 욕했는데, 이 상식하나가 그 여자의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는다고, 그 여자의 세상을 당신이 넓혀주면 되지 않느냐는 글이었다. 뭔가 충격이랄까? 물론 일부분인 이 글 하나로 우리나라와 중국을 판단한다는것 어리석은 일이지만...아무튼 당연히 중국도 우리같은 반응일 줄 알았었는데, 뭔가 둔기로 엊어맞은 기분?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그 사람의 지식의 정도로 그 사람의 모든것을 판단하는 세상이 되었다. 지식=지혜=그 사람의 수준...

자기의 기준으로 모든것을 판단한다 심지어 사랑까지도...

 

많은 대화보다 알차고 따스한 대화를 나눌 이가 있다면, 그대는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지금 메인 주에서 텍사스 주까지 전설 실비공사가 추진 중이다. 그러나 메인 주와 텍사스 주 사이에 반드시 전달해야 할 중요한 메시지는 아무것도 없을지도 모른다. 그건 마치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어느 유명한 부인을 소개받으려고 열성적으로 부탁하던 남자가 정작 부인 앞에 서서는 그 나팔형 보청기 한쪽 끝에 손을 대고서도 어떤 할 말을 찾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마치 전선 설치의 주된 목적이란 신속한 대화일 뿐 양식 있는 대화는 아닌 것과 같다.

 

1800년대 사람이 쓴 글임에도 현재와 별반 다를 것이 없어보인다. 신속하고 빠른 정보 전달...그러나 대부분은 텅비고 양식없는 대화의 홍수 시대...

 

살아간다는 것, 생활한다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예술이다. 인간에게 의식적인 노력으로 자신의 인생을 고양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만큼 고무적인 진리는 없다.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을 해서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다. 그렇지만 우리 주위를 가득 채우며 무언가를 바라볼 때 매개체가 되어 주는 공기 그 자체를 그리고 조각하는 것이 훨씬 더 위대하며 분명 인간은 그것을 할 수 있다. 하루의 본질을 고양하는 것, 그거야말로 최고의 예술이다.

 

절망하지 말자. 인간이란 가능성의 바다에 뜬 섬이다. 인간의 가능성은 추량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의 실적으로 그 사람의 능력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아직 아주 적은 부분밖에 시도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어떤 실패를 거듭했다 해도 "아들아, 고뇌하지 마라. 네가 이루지 못한 것이 네 탓이라고 아무도 말하지 않으니"

 

모든 일이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만은 않는다. 그렇지만 내가 가야 할 곳이 있으니 흔들림은 없다. 이 세상에는 가능한 한 다양한 사람이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만 그 사람들이 아버지나 어머니나 이웃의 길이 아니라, 자신의 길을 찾아 살아가기를 바란다. 젊은이는 집을 짓거나 나무를 심거나 노 저어 바다로 나가는 것도 좋으니, 하고 싶은 일을 반드시 하기 바란다. 뱃사람이나 도망친 노예가 북극성을 길잡이로 삼듯이 우리도 극히 한정적인 목표를 가질 때만 현명하게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인생의 모든 것에 대해 충분한 지침이 될 수 있다. 계획한 대로 항구에 이르지 못할 수도 있지만 올바른 항로에서 벗어나는 일은 없다.

 

사는게 뭔지 내가 왜 살아아야 하는 지, 왜 공부를 하고 왜 지금 이러고 있어야 하는 지 모든 것이 혼란스럽던 17살의 나에게, 그리고 꿈꾸는 것을 잃어가고 있는 20대인 나에게 써주고 싶은 말

 

 

나는 가장 강하고 정당하게 흥미를 끌어당기는 것을 음미하고 결정한 후 그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다. 저울 자루에 매달려 눈금을 내리려 하지 않고 상황을 마음대로 규정하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다. 내가 갈 수 있는 유일한 길, 어떤 권력도 저지할 수 없는 길을 가고 싶다. 튼튼한 기초를 세우기 전에 아치를 세워서는 만족스런 결과를 얻을 수 없다.

 

내가 바라는 삶, 자세...흔들림 없는 튼튼하고 올바른 기초를 세워 내가 원하는 바에 따라 나아가고 싶다. 어떠한 것에도 휘청이지 않고... 이번 기회에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다른 책들을 제대로 읽어보고싶은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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