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 3권 합본 개역판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용경식 옮김 / 까치 / 2014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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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책장을 덮을 때까지 멈출 수 없던 책이다. 반전의 반전이 있던 책. 이 책을 읽기전에 내 리뷰를 먼저 보는 사람들에게 반전이 있음을 알려주게되어 매우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 아무런 정보없이 이 책이 재밌다는 모 연예인의 왓츠인마이백을 보고 충동적으로 읽은 책인데 이렇게 재밌을수가!!! 건조한 문체로 전쟁 속에서 사람들이 생존해나가는 모습이 담담하게 쓰여져 더 암울함을 극대화 한다.



이야기는 총 3부작으로 나누어진다. 1부 비밀노트는 쌍둥이 형제 루카스와 클라우스가 국경에 인접한 곳에 있는 할머니집에 맡겨지며 벌어지는 사건들이 펼쳐진다.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의 참상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혼돈 속에서 루카스와 클라우스가 살아남기 위해 행하는 모든 연습들, 마치 인공지능이 인간의 감정을 연습하는 것과 같은 모습이 기괴한 아픔을 자아냈다. 또한 모순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는 다양한 등장인물들을 통해 그 아픔을 잘 느낄 수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연습을 거듭하고 나니 이제 삼각숄로 


눈을 가리거나 풀 뭉치로 귀를 막지 않아도 된다.


장님 역은 단지 시선을 자신의 내부로 돌리면


그만이고, 귀머거리 역은 온갖 소리에 귀를


닫아버리면 그만이다.


p.46



루카스를 아들처럼 여기며 동네에서 천시하는 언청이를 성희롱하지만 또 종교인으로써 모습을 잃지 않으려고 하는 신부, 루카스와 클라우스를 엄마처럼 돌보아주지만 성희롱하던 하녀, 루카스와 클라우스를 아끼지만 성적으로 희롱한 장교, 두 형제를 씻기거나 학교를 보내지 않고 일만 시키며 욕을 하는 할머니지만 내쫓지 않는 할머니, 두 형제를 그나마 생각해주는 당번병...절대적인 선은 없음을 단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일까? 탈주범인 아버지가 국경에서 지뢰를 밟고 죽게되는데,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아버지를 제물삼아 클라우스는 국경을 넘는 것으로 1편이 마무리된다.




2부  타인의 증거는  클라우스를 떠나보내고 혼자 남은 루카스의 이야기이다. 자신의 영혼의 일부였던 클라우스가 떠나며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혼란에 빠진 루카스는 나중에 클라우스에게 보여주려고 끊임없이 이야기를 적기 시작한다. 우연히 만나서 거두게 된 미혼모 야스민과 근친의 결과물인 마티아스를 친 아들처럼 키우며 살아간다. 영민했지만 몸이 불편했던 마티아스는 자살을 하게 되고 루카스는 훌쩍 어디론가 떠나게 된다. 


50세가 된 클라우스가 루카스가 운영하던 서점에 찾아오며 그의 발자취를 쫓는 것으로 장면은 전환되는데, 이야기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며 이야기 흐름을 따라가던 나도 도대체 이 이야기의 끝은 어떻게 될까 궁금함에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3부 50년간의 고독은 허구와 진실이 뒤섞인 이야기 속에서 진실이 하나씩 열리는 단계이다.  파편처럼 조각난 진실과 거짓이 퍼즐처럼 짜맞춰지며 소설보다 더 아픈 현실이 밝혀지게 된다. 루카스와 클라우스의 아버지는 전쟁이 시작되던 시기에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들의 어머니는 아버지를 총으로 죽이게 된다. 이때 불의의 사고로 루카스의 척추에 총알 파편이 튀게된다. 그들의 엄마는 정신병원에 갇히게 되고, 루카스는 보육원으로 보내져 홀로 외로운 시간을 보내야했다. 클라우스는 그의 아버지가 사랑했던 여자에게 거두어져 생활을 하다가 친어머니를 돌봐야한다는 일념으로 그녀와 살게되는데...루카스는 클라우스라는 이름으로 국경너머에서 오랜 외로움을 루카스와 자신의 거짓말같은 이야기로 위안을 삼으며 버텨왔던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거짓같은 진실, 진실같은 거짓속에서 루카스와 클라우스는 서로의 존재를 부인하게 된다. 



보통 진실이 밝혀지는 마지막 순간에 모든것이 깨끗하게 증명되며 두 주인공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이야기는 마무리되겠지만,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에서는 전쟁, 개인이 어쩔 수 없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작디 작은 존재들의 허무만 밝게 빛날뿐이었다. 



책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간의 군상 하나하나 이야기가 책 하나로 펼쳐질만큼 이야기가 탄탄했다. 수많은 거짓과 진실의 파편속에서 이젠 마티아스가 실존인물인지, 아님 루카스 본인의 우울했던 어린시절을 투영했던 존재였을까, 무엇이 진실인지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마저 드는 이야기였다.  



"많은 여자들이 실종되거나 죽은 남편을 기다리며 울고 있어요,


하지만 노인께서 방금 말했듯이,


기억은 희미해지고


고통은 줄어들고 있지요"


불면증 환자는 눈을 뜨고 루카스를 바라본다.


"희미해지고, 줄어들고, 그래, 내가 그렇게 말했지


하지만 사라지지는 않네"


p.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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