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의 나라에서 왔습니다 - 병과 함께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안내서
리단 지음, 하주원 감수 / 반비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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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을 가진 환자의 입장에서, 정신병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는 일반인이 봐도 이해가 쉬울정도로 친절하게 쓰여진 정신병에 대한 아주 정확한 길잡이&에세이 느낌의 책이다. 정신질환이 심한 독자의 경우 책을 온전히 다 읽어내지는 못하겠지만, 이제 막 정신질환이 시작되었거나 이 병을 이겨내야하는데, 어떻게 해야하는지 모르는 환자들이 보면 도움이 될 것같다.


저자는 극심한 우울증과 조증, 성격장애로 수년간 고통속에서 살아왔다.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병원에서 진료를 보는 방법, 의사와 대화를 하는 방법, 내가 먹는 약에 대한 정보, 사회생활을 어떻게해야하는지 복귀를 하는 방법 등 다방면에 걸쳐서 경험을 바탕으로 독자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아무래도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했기에 그동안 출간된 여러 정신질환 관련 도서보다는 더 와닿는 부분이 많았다.



정신병이라하면 흔히 우울증이나 조현병을 대표적으로 떠올린다. 나도 일하면서 수많은 정신질환 환자들을 만났었다. 누가 자신의 머릿 속에서 전파로 자신을 조종하고 있다는 사람도 만나봤고, 독립운동가 중 한명은 역적이니 죽여야한다며 한시간 넘게 나를 노려보던 사람도 만났었기에 정신병이라하면 성가시고 이상하고, 나와는 거리가 먼 것, 나를 귀찮게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많았다. 이 책을 읽고나서 조금은 이런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언제라도 나도 정신병의 세계에 들어갈 수있고,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겠다는 것...


우리가 약물 치료를 통해 얻고자 하는 상태는 결코 약물 치료 이전의 100퍼센트 상태나 약물의 도움을 받아 120~130퍼센트의 생산성을 달성하는 각성 상태가 아닌, 80~90퍼센트의 조금 낮은 상태라는 사실입니다. 약 복용의 주된 목표는 그  사람을 다시 총명하고 똑똑한 사람으로 돌려놓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삽화 발생을 줄이고자 하는 예방적 차원의 접근이 큽니다.


*삽화(episode) : 정신병으로 인해 영향을 받아 수행능력에 손상이 있는 상태가 유지되는 기간을 말한다. 증상이 극심하게 나빠지거나 악화되는 불특정한 기간이 찾아오면 그것을 삽화라고 할 수 있다.


p.34-35



나 또한 약을 먹고 치료를 받으면 100퍼센트 예전의 건강했던 사람으로 돌아간다고 막연히 착각하고 있었다. 약과 치료는 그 상태가 더 이상 나빠지지 않게 도와주는 것이라는 것, 이러한 점을 모르는 이들은 심지어 환자 자신도 기대치가 크기에 약이나 병원 치료가 효과 없다고 생각하면 바로 치료를 중단해버리는 불상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또하나 우리가 흔히 오해하는 것은, 특히나 누군가가 우울하다고 할 때 사고방식을 바꾸면 이 모든 것을 타개할 수 있다고 믿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우울증은 자신이 조절할 수 없다. 가능범위 밖에 있는 것으로 우울증을 물리치기 위해 힘을 짜내지 말라고 저자는 말한다. 우울증에 효과가 있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므로 적합한 방법을 찾는 것이 우선이라는 뜻이다.


이 외에도 자살 시도자와 우울증이 극심한 이들을 대할 때 어떻게 대하는 것이 도움이 되는 방법인지도 알려줘서 조금 더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괜찮을 것이다라는 말, 과도한 관심이 아닌 그들의 자살시도를 얕잡아 대하지 않는 것, 자살 시도 직후부터 시작된 비현실감을 충분히 겪어낼 시간을 주는 것, 묵묵히 옆에서 기다려주는 것이 가장 큰 도움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강력범죄가 반드시 조현병에서만 기인하는 것은 아님에도, 현재 보도되는 사건들은 가해자가 조현병 전적이 있다는 사실만 알려지면 마치 사건의 모든 인과관계가 밝혀진 것처럼 여긴다. 그들이 정신질환자이기 때문에 범죄가 잘못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범죄란 정신질환이라는 마지막 퍼즐이 충족되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p.120


우리가 뉴스매체를 걸러서 봐야하는 것이 이런 부분이다. 이러한 편견이 쌓이고 쌓여서 정신질환자의 사회복귀를 더 어렵게 만드는 하나의 커다란 장벽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싶다.


정신병은 환자도 그 주변사람도 피폐하게 한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이것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꽤 세심하고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저자는 이 질병관리 프로젝트를 위해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1. 장기간 진료를 봐온 정신과 2. 내원이 용이한 가정의학과 3.식습관 관리. 정신병을 관리하는 주체가 가져야할 마음가짐은 바로 지금보다 더 나아진다는 것이 아닌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잊지 않기. 그리고 자신을 위로하러 오는 사람들을 밀어내지 말것. 연대의 힘을 믿고 의지할 것을 당부한다.



휴식은 환기의 성질을 가진다. 내 안에 팽팽하게 차 있던 긴장이 이완되고, 통증들이 완화되고 눈을 뜨면 머리가 맑은 그 기분, 너무나 답답했던 자신의 짐짝들을 그래도 어찌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되는 마음이 바로 제대로 휴식을 취한 후의 상태라 볼 수 있겠다.


p.202


휴식은 환자뿐만아니라 非환자들에게도 중요하다. 이 외에도 회사에서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여러 복귀 방법들은 꼭 환자가 아니어도 도움되는 내용이다.



언어의 문제, 병자들은 자신의 상태에 부합하는 기호와 언어를 가지고자 하나 정합한 언어를 구사하지 못한다는 문제다.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들은 우리의 고통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 (생략) 자신은 지금 역어(譯語)로 말한다는 것. 모든 고통은 번역어로서 존재한다는 것.그러므로 자신은 평생 이 기분과 고통을 타인에게 전달할 수 없을 거라는점.(생략) 자신이 표현하는 죽음에 무게가 없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더욱 죽음을 자조하며 우스꽝스럽게 말하지만 경박해보일 뿐이다.(생략) 문장과 문장 사이에 숨겨진, 은신한 마음을 순서와 형태를 비틀어 새어 나오게 하는 것.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도 자신이 목적한 바를 알리는, 혹은 그와 유사한 의미의 전이를 일으키는 것이다. 


p.290-293


환자들은 자신의 상태를 어떻게든 전달하고자 한다. 자해든 기록이든 어떤 것이든간에. 하지만 언어를 잃어버린 그들은 언어와 언어사이를 부유하는 상태이다. 여기에 끼워넣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비트겐슈타인은 세계는 언어를 통해 설명될 수 있고 우리가 아는 언어는 우리가 알 수 있는 세계를 보여주며 우리가 언어를 통해 알 수 없는 세계는 보여줄 수 없는 세계라고 한다. 언어를 잃은 환자들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말하려했기에 혼란의 세상에 빠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안개로 쌓인 언어, 그 안개를 벗기고 자신의 현 상태를 찾으려하는 것 그것이 치료과정인가 싶다.


저자의 경험을 풀어내어 정신병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그동안 저자가 겪었을 수많은 좌절과 아픔의 밤이 느껴져서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누군가 내 주위에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을 완벽히 이해할 수 없지만, 적어도 그들이 병과 맞서 버티는데 조금의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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