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임하의 여성사 특강 - 여성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10대를 위한 인문학 특강 시리즈 3
이임하 지음 / 철수와영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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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책이라지만 성인에게도 도움되는 책이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혐오,문명, 정치,결혼, 전쟁, 호명, 규범, 운동, 노동 등 9가지 주제를 통해 역사에서 소외된 여성의 역사를 청소년의 눈높이에서 알기 쉽게 설명한 책이다.


여성들의 역사는 망각되고, 남성들의 활동을 중심으로 한 역사는 선택적으로

기억되었다는 것입니다. 과거가 현재를 만든다는 말처럼 기억이 왜 중요하냐면, 우리가 기억한 것, 의미 있다고 강조한 것, 과거에 빠뜨린 것은 우리의 현재를 규정하기 때문입니다. p.6


망각된 역사도 우리를 구성하는 한 부분임을 강조하는 저자의 머릿말을 보고 깊이 공감했다. 그동안 우리는 남자의 역사, 승자의 역사만을 배우며 자라왔다. 여성, 노동자, 가난한 자, 소외된 자의 역사는 곁다리로 잠시 취급되거나 이름을 찾지 못한 채 지워진지 오래다. 우리는 그동안 반쪽짜리 역사만을 배우며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만성적인 실업, 높은 물가고, 낮은 임금이라는 현실은 여성 노동을 지속적으로 필요로 했습니다.여성들이 노동시장에서 물러나기가 어려운 현실임에도 가정으로의 복귀를 강조한 것은 여성 노동을 일시적이고 보조적인 것으로 여기려는 태도 때문입니다. 이는 여성의 사회 활동에 대한 남성들의 두려움의 표시였습니다. p.31 여성혐오는 언제부터 일어났는가?


세계2차대전 후 사회활동에 나섰던 여성들을 억압하고 다시 가정으로 돌려보낸 서구 자본주의 사회의 모습은 우리나라에도 있었다. 남성 부재 시에는 여성의 노동력을 빌려왔지만, 다시 가부장제 사회를 유지하고 기득권을 얻기위해 여성의 노동력, 목소리를 억압해야할 필요가 있었다. 여성을 성녀와 창녀 이분법으로 규정지어 '말 잘듣는 여성'화하는 사업에 몰두했다.



비용과 시간을 들이지 않고 전후 질서를 안정시키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전쟁 피해자를 모른 체하면서 특정 대상 곧 여성에게 책임을 묻는 것입니다. 환향녀가 '화냥년'이 된 것처럼,한국 사회에서 '위안부'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쓰인 것처럼,정절을 지키지 못했고, 행실이 바르지 못했고, 사치하고 방탕하다고 비난하면 되니까요.일본군'위안부'가 전후 45년이 지난 뒤에야 생존자 증언이 처음 나오고 아직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로 남아 있는 것은 전후 재건과 질서 그리고 희생양 찾기와 연관된 것은 아닌지 고민해야 할 시점입니다.

p.114 '환향녀'는 어떻게 '화냥년'이 되었는가?



이 또한 여성을 성녀와 창녀로 구분지어 본질흐리기화 하는 것과 맞닿아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시기 제도적으로 보완하여 고칠생각은 하지 않고 특정 집단을 차별하여 논점을 흐리는 것은 현재에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모든 부분이 차별과 혐오와 맞물려있다는 것을 늘 느끼게 되는 대목이다.


그러다 1909년 여성도 호적에 이름을 올려야 했습니다. 이름이 없는 여성이 많았기 떄문에 세례명을 가진 여성들은 세례명을 이름으로 신고했습니다.그래서 유독 이 시기에 서양식 이름을 가진 여성이 많았던 것이지요.개화기에 여성들이 사회활동을 하고 여성 교육이 행해지면서 남녀ㅕㅇ등의 한 방법으로 여성도 이름을 가졌습니다. 1920~1930년대의 신문을 읽으면 이성녀, 김성녀, 임성녀 따위로 '성녀'라는 이름이 많이 나옵니다.(중략)임성녀의 한자는 林姓女로 '임씨 성의 여자'라는 뜻입니다.'언년','자근애기','간난'으로 호적에 이름을 올리기는 했지만 '성녀'라고 불리는 여성은 여전히 이름이 없었던 것입니다.

p.119-120 일제강점기에는 왜 '성녀'라는 이름이 많은가?


제일 인상깊었던 챕터의 내용 중 하나이다. 김마리에, 박에스더 등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중에서 유독 서양식 이름을 가진 분들이 많아서 의아하게 생각했었는데, 뿌리깊은 여성 차별의 한 부분이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이름이라는 것은 별것 아닌 것같지만, 참으로 별것인 것이다. 내게로 와서 이름을 불러주었을때 비로소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 시인의 시처럼 호명한다는 것은 한 존재를 인정하고, 그가 그답게 있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이름이라는 것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아이가 태어나면 돈을 들여서라도 철학원에 가서 좋은 뜻의 이름을 지어오지 않는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이름을 갖지 못하고 자아를 갖지 못한 채 살아왔을까 생각하니 가슴 한편이 저려온다. 학습의 기회가 생기고, 자기 자신의 이름을 갖게될 기회를 가진 여성들은 그때 비로소 새롭게 태어남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여성의 단발은 여성이 남성화되거나 여성의 본분을 지키지 않는 행위로 비쳤고,단발한 여성에 대해서는 사회적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투사적 의지이건,여성 억업에 대한 반발이건, 정절의 증명이건, 생활의 편리함을 꾀하기 위해서이건 단발은 당시 여성들에게는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사회에 대한 도전이요 반항이었으며 여성해방의 표상이었습니다.

p. 156  금기를 넘어선다는 것은?



저 문장에서 단발이라는 단어를 숏컷이라고 바꾸면 2022년 현 세대의 모습과 다를바가 없다. 아이러니하다. 여성은 태어나서부터 죽을때까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열을 받는다. 심지어 패션을 위해서이건 아니면 의지의 표현을 위해서 선택한 것이든 내가 내 맘대로 할 자유가 없다. 머리 모양을 하나 하더라도 하나하나 검열을 받는다.


혹자는 이 책을 읽어보지도 않고, 불온서적으로 낙인찍으려 할 수도 있다. 여성사는 누구를 차별하자는 것이 아닌 평등하고 민주적인 가치를 배우는 과정이다. 반쪽의 역사를 찾아가는 과정은 우리가 다양하고 넓은 시각으로 역사와 세상을 바라보는데 도움이 되는 과정이다. 불편하다하지말고 배우려는 노력이 있을 때 평등하고 발전적인 미래가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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