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후밀 흐라발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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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8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각 챕터가 시작될 때마다 비슷하지만 다른 문장으로 시작한다.(4,5,8장만 예외)

'삼십오 년째 나는 폐지 더미 속에서 일하고 있다.'
'삼십오 년째 나는 폐지를 압축하고 있다.'
'삼십오 년 동안 나는 폐지를 압축해왔다.'
'삼십오 년 동안 나는 내 압축기에 종이를 넣어 짓눌렀고, 삼십오 년 동안 이것이 폐지를 제거하는 유일한 방법이라 믿어왔다.'
'삼십오 년 동안 나는 내 압축기로 폐지를 압축해왔고, 언제까지나 그렇게 일할 거라 생각했다.'

한탸의 일인칭 고백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어 왠지모를 신비롭게 빠져드는 주문을 외는 기분이 들었다. 이야기의 내용은 아주 간단하지만 간단하지 않다. 매일 맥주에 절어 곧 파괴될 운명에 처한 책더미 속에서 진리를 찾는 것을 유일한 낙을 삶는 한탸는 뜻하지 않게 직업으로 인해 교양을 쌓게 된다. 매일 같이 더러운 지하에서 책을 압축하는 행위는한탸에게 진리를 찾는 신성한 행위와도 같다. 제 2차 세계대전, 사회주의 등 혼돈의 시기를 겪는 동안 한탸는 지하에서 책을 압축하고 파괴하며 진리를 찾는 행위를 35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해낸다. 그러나 한탸의 행복도 끝이 난다. 현대화가 되며 부브니의 거대한 압축기를 보는 순간 한탸는 자신의 일자리가 없어질 수도 있고, 자신의 진리를 추구하는 행위도 곧 끝이 나리란 것을 직감적으로 느낀다. 결국 한탸는 새로운 작업장에서 백지를 꾸려야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고민하던 그는 결국 자신이 사랑하던 책과 운명을 함께하기로 다짐한 뒤 압축기 속으로 들어간다.


132페이지의 소설은 한탸의 시선을 따라가며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사유하는 것들에 대한 의미를 일깨워준다. 
사고하는 것, 인간적인 것은 한탸가 압축기 속으로 들어감에 따라 모두 사라지고 끝이 나는 것일까?
한탸가 압축기 속에서 압축되는 동안 한때 사랑했던 집시 여인의 이름이, 기억 속에 사라졌던 이름이 떠오른다. 일론카.
한탸의 마지막은 마치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세네카의 마지막 모습과 흡사하다.
비극적으로 끝나는 것같지만, 한편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강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짧지만 강렬한 책, 손에 드는 순간 멈출 수 없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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