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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지음 / 창비 / 2019년 7월
평점 :
품절
200페이지 조금 넘는 얇다면 얇고 굵다면 굵은 이 책 한 권의 무게는 너무나 무겁게 다가온다.
평소 생각해보지 못했던 부분에서 내가 차별적인 생각과 언어를 쓰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에 죄책감이 들기도 하다.
p.97
일상에서 자주 경험하는 비하성 언어와 각종 표현들은 일상이라서 더욱 풀기가 어렵다.
늘상 반복되어온 탓에 익숙해진 데가가 워낙 비일비재하여 일일이 대응하기도 어렵다.
특히 유머로 던진 말에 정색으로 하고 대응하기는 쉽지 않다.
유머와 놀이를 가장한 비하성 표현들은 그렇게 '가볍게 만드는 성질'때문에
역설적으로 '쉽게 도전하지 못하게 만드는 강력한 힘'을 가진다.
4장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덤비는 이유편을 보고
얼마 전에 이슈가 되었던 김숙 상처주네 화법이 떠올랐다.
그동안 유머로 치부하면서 무례하고 비하적인 표현으로
남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만나왔던가
잘못되었다 죽자고 달려들면 사람들은 그런 사람을
'유머를 다큐로 받아들인다'고 표현한다.
부당한 표현을 맞닥뜨렸을 때 굴하지 않고
잘못된 것은 잘못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올해 나의 목표였다.
과연 나는 그런 사람이었을까?
p.110
능력주의 체계는 편향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진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다.
능력주의를 맹신하는 사람들은 이 사실을 간과한다.
사람은 누구나 개인적 경험, 사회 경제적 배경 등에 따라
어떤 방향으로든 편향된 관점을 가지기 마련이다.
어떤 능력을 중요하게 볼 것인지, 그 능력을 어떤 방법으로
측정할 것인지와 같은 판단은 이미 편향이 작용된 결정이다.
이렇게 선택된 방식으로 능력을 측정할 때 출제자의 편향이 응시자 중
누군가에게는 유리하고 누군가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한다.
p.112
무슨 능력을 측정할지 정하고 평가하는 사람들에게는 편향이 있고,
선정된 평가방식이 다양한 조건을 가진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기 어렵다.
게다가 평가에는 오류가 있기 마련이다. 이런 한계를 고려할 때
어떤 한가지 평가 결과로 사람의 순위를 매겨 결정짓는 것은 위험하다.
게다가 그런 평가기준으로 인격적인 대우를 달리하거나
영구적인 낙인을 부여함으로써 미래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이것이야말로 불공정하고 부정의한 일이 아닐까
p.139
실제로 우리는 꽤 자주 누군가에게 경고를 보내기 위해 거리에서 시선을 사용한다.
거리를 걸을 때 누구에게 시선이 머무르는지
생각해보자. 남성 두명이 손을 잡고 걸을 때, 여성이 노출이 많은 옷을 입었을 때,
지저분한 행색의 사람이 지나갈 때 등 자신도 모르게 시선이
그들을 따라간 적이 있지 않은가?
거리는 모든 사람의 공간이어야 하지만 모두에게 똑같이 허용된 공간이 아니다.
거리에는 사람과 행동을 규율하는 규칙과 감시체계가 있다.
즉 거리는 중립적인 공간인 듯 보이지만 그 공간을 지배하는 권력이 존재한다.
익명의 다수가 시선으로써,말이나 행위로써, 혹은 직접적인 방해나 법적 수단을 통해
그 거리에 어울리지 않는 불온한 존재들을 단속하는 데 동참한다. 입장할 자격 없이
공공의 공간에 침범한 사람, 거리의 질서에 순응하지 않는 사람을 추방하거나 교화시킨다.
이런 익명성과 편재성 때문에 '낯선 존재'인 소수자들이
느끼는 일상의 시선 혹은 감시의 압박은 삶을 만성적으로 불안하게 만든다.
내가 누군가가, 어떠한 것이 싫다라고 표현을 할 때
과연 단순히 개인의 호불호를 표현한 것인가 아님 이 또한 편견에 편승하여 누군가를 차별하는
결과를 이룬 것이 아닐까...'싫은 것을 싫다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은 권력이다'라는 문장에 뼈를 맞은 듯했다.
이성애자가 동성애가 싫다고 하는 것과 동성애자가 이성애가 싫다고 말하는 것의 무게 차이가 있듯
나는 한편으로는 사회적 약자이지만, 또 누군가를 향해 권력을 가진 위치에 놓일 수 있고,
언제든지 나는 차별을 하는 위치에 있을 수 있다.
특히 난민을 다뤘던 내용에 많이 공감을 했다. 나 또한 '난민=대부분 극이슬람주의 남자들'
이라는 생각에 난민 수용에 고려를 해야한다는 입장이었다.
물론 더 엄격한 절차를 통해 반드시 도움을 주어야 하는 약자들은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성폭행을 일삼고, 여자알기를 똥으로 아는 극단적인 이슬람주의자들이라고
생각했던 무리에 힘없는 여자와 노인 아이들이 있다는 것은 외면하고 있지 않았을까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유행하는 언어이기 때문에 썼던 단어가,
화가나서 표현한 욕이 누군가를 향한 차별적인 언행이
아니었을까...다시 한 번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