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베를린 - 분단의 상징에서 문화의 중심으로
이은정 지음 / 창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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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책을 읽기 전 나에게 베를린하면 떠오르는 것은 '베를린 장벽', '오랜 세월 분단되어 있다가 통일된 것'정도였다.

그리고 언론매체에서 흔히 우리나라처럼 분단의 아픔을 미리 겪은 나라이기에 독일을 본받아 통일정책을 수립해야한다는 이야기를 늘 들었던터라 독일도 당연히 우리나라처럼 서독과 동독이 오랜 세월 접점없이 갈라졌다가 어느날 우연히 통일이 되었고, 많은 혼란을 겪었으며 이제 그 혼란기를 지나 잘 화합하여 사는 나라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점점 좌절아닌 좌절의 기분을 느끼게 되었다. 독일의 상황은 우리와 많이 달랐으며, 위의 내용들은 모두 안일한 착각이었다는 것. 아마도 우리의 통일은 갈길이 더 머나먼 가시밭길이라는 것...그래도 한 가지 독일의 사례를 보면서 '다름을 인정하는 합의'의 자세를 유지하며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점은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독일이 분할되던 시점은 한반도에서 남한 단독선거가 결정되던 바로 그 시기였다. 서로 분단의 시작점은 같았지만, 분단의 과정과 결과가 다르다는 것에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p.60-61

냉전 초기 동서진영의 첨예한 이념 대결로 인한 정치적 긴장은 지속되었지만, 베를린 주민들의 일상적 삶이 완전히 단절되지는 않았다. 1952년 11월까지는 서베를린 주민이 동베를린에서 생필품을 구입할 수도 있었다. 장벽 건설 전까지는 동독 정부나 사통당 관계자, 경찰 그리고 동독 인민군을 제외한 모든 동베를린 주민들이 서베를린을 방문할 수 도 있었다. 서베를린 시의회 선거에 모든 베를린 주민이 출마할 수도 있었고, 실제로 사통당이 서베를린 시의회 선거에 정식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

이 모든 일은 물론 동서독의 분단이 양쪽의 모든 연결고리를 완전히 끊어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런의미에서 독일의 분단은 한국전쟁 이후 이산가족의 개별적 아픔 외에는 어떤 연결고리도 존재하지 않고 적대감만 남게 된 한반도의 분단과 근본적으로 달랐다.

 

 

 

세계2차대전 이후 독일과 베를린을 4대 승전연합국(영국,프랑스,미국,소련)이 분할점령한다는 결정이 합의되었다. 연합국과 소련의 힘겨루기 속에서도 베를린 시민들은 우편이나, 직장때문에 이용하는 교통수단 등을 통해 끊임없이 교류를 이어나갔다. 우편 교류의 경우 우리나라의 경우였다면 대번에 불순분자, 빨갱이로 몰려서 처형을 당했을 것이다. 우편제도는 독일이 하나의 제국으로 통일되기 이전 많은 공국과 제후국으로 분할되어 있을 때부터 운영되던 500년 이상의 전통으로 동서독 모두 유구한 전통을 지키자는 것에 합의를 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각자 주권국가로 역사적, 문화적 전통을 계승한다는 목적 하에 오랜 전통의 도서전이라던가 박람회를 개최하고 교류할 수 있었다. 만약 분단 당시 우리가 미군정과 소련군 점령하가 아니었더라면, 정치를 담당하는 수뇌부에 빌리 브란트 같은 정치가가 있었더라면,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가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에 구차한 안일을 취하여 단독 정부를 세우는 데는 협력하지 아니하겠다던 김구 선생과 좌우합작 운동을 전개했던 여운형 선생이 암살당하지 않고 살아 있었더라면 우리의 역사는 바뀌었을까? 책을 읽는 내내 '만약'이라는 가정을 지울 수가 없었고, 아쉬움도 지울 수가 없었다.

 


베를린을 통해서 배울 점은 '다름을 인정하는 합의'라는 것, 이것은 두번 세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협상 테이블에서 정치적으로 민감한 내용보다는 실리적으로, 해결해야하는 일 중심으로 협상했던 방식이 통일을 이루어내지 않았나 생각한다. 정치가들의 협상 능력도 중요하지만 일반 시민들의 열린 의식이 아니었으면 이 또한 이루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념, 사상이라는 것을 넘어서 진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태도가 중요하다.

통일이란 것은 분명 막연하고, 어떻게 이루어야 하는지, 그 이후의 삶은 어떻게 조율을 해야하는지 머리아프고 복잡한 일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이책을 통해, 베를린의 사례를 미루어보아 공존이라는 것,교류라는 것이 앞으로 우리 통일과 통일 이후의 삶을 어떻게 좌우할지 알려주는 지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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