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리버 여행기 (무삭제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27
조너선 스위프트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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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도덕경 다음으로 내 책장에 꽂히게 된 두 번째 현대지성에서 나온 책.

걸리버 여행기하면 처음 드는 생각은 초등학교 시절 학급문고에 늘 꽂혀있던 책,

혹은 방학 기간에 반드시 읽어야 하는 필독도서,

소인국과 거인국 이야기 정도였다.

어린이들이나 읽는 책으로 생각했었으나,

성인이 된 이후 읽어본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아니 걸리버 여행기가 원래 이런 내용이었나??'싶을 정도였으니까

400페이지 조금 넘는 분량의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분량의 소설은

잡은 순간부터 끝날때까지 멈출 수가 없었다.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는 걸리버란 이름의 인물이

 1699년 5월부터 1715년 12월까지 모두 네 차례에 걸쳐

장거리 대양 항해에 나섰다가 뜻하지 않게 경험하게 된

네 개의 듣도 보도 못한 나라에 대한 경험기를 담은 소설이다.


소인국 릴리펏과 거인국 브롭딩낵을 차례로 경험한 걸리버는

세 번째 항해에선 해적에 붙잡혔다 쫓겨난 뒤

베링해협 남쪽 북태평양을 떠돌다가 날아다니는 섬, 라퓨타에 도착했다.

(TMI이지만, 라퓨타라는 이름을 보는 순간 어릴 때 봤던 천공의 성 라퓨타 만화가 떠올랐다.

여러모로 영향을 받긴 했겠구나 싶었다;;)

그곳의 사람들은 고개를 모두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돌리고 있고,

한 쪽 눈은 위쪽으로 다른 쪽 눈은 속으로 푹 들어간 모습이다.

그들은 저마다 깊은 생각에 잠겨 있어 대화를 하려면

정신을 차리도록 누군가가 입과 귀를 때려줘야만 했다.

고위 직급의 사람들은 일명 때리기꾼을 고용해 데리고 다녔다.

그들에게 있어 때리기꾼을 고용하고 다니는 것은

지성을 겸비한 높은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항해. 알고 보니 해적인 선원들에게 쫓겨나

홀로 버려진 걸리버가 다다른 곳은

순수한 이성에 따르는 후이넘들이 머리와 가슴이 털로 뒤덮인,

타락하고 추한 야후들을 지배하는 말(馬)의 나라였다.

후이넘의 매력에 푹 빠진 걸리버는 다시는 지저분한 인간세상으로 돌아가지 않고

그곳에서 여생을 보내겠다 마음먹었으나 결국 그들의 권고를 받아들여

가족들이 기다리던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으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인간혐오에 빠진 걸리버는 자신의 가족에 대해서도 혐오하게 되어

여생을 종마를 키우며 위안을 삼고 살게되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위정자들에 대한 비판은 현대에도 적용될 정도로 깊이 공감하며 읽었다.

공직에 사람을 뽑을 때에는 도덕성을 그 무엇보다 일순위로 삼아야 한다는

릴리펏 사람들의 이야기는 매우매우 깊은 공감을 자아냈다.

판타지스러우면서도 인간세계를 통렬하게 비판하는 내용은 꽤 흥미로웠다.

몇 백년 전이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로 적용되는 부분이 많았다.

'이 작품의 의도는 세상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려는 것이 아니라

화나게 만들려는 것'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저자와 반대되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봤었다면

꽤 화를 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성 인물 중에는 브롭딩낵의 국왕,후이넘에서 주인으로 나왔던 수컷과 같이

비교적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인물이 있는데 비해,

걸리버가 여행지에서 만나는 여성들은 한결같이 변덕스럽고

욕심많고, 성욕이 가득한, 비이성적인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러한 여성혐오적인 부분에서는

인상이 찌푸려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

걸리버는 스위프트의 대변인으로 소설 전반에 걸쳐

영국사회, 인간 문명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걸리버가 인간 사회에 대한, 본인의 조국에 대해

신랄한 풍자가로 점점 변해감에 따라 여성에 대한 언급은

점차 비난조로 바뀌어 간다.


처음 항해를 나설 당시의 걸리버는 아내를 사랑하는 평범한 가장이었지만,

항해를 모두 마치고 영국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는

아내의 포옹과 키스조차 견딜 수 없어 하며 쓰러진다.

걸리버가 이처럼 변화하게 된 것은 후이넘의 영향으로 인해 인간이
야후와 다름없다고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한다고 해도 전체적인 걸리버 여행기에서

보여지는 여성에 대한 반감은 유난히 두드러진다.

특히 여성의 육체에 대한 걸리버의 반감은 인간사회에 대한

판적 시각을 이유로 바라보기에는 그 정도가 지나치다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거인족 여성들의 육체에 대해 묘사한 부분에서는

심히 불쾌했다. 걸리버가 처음 브롭딩낵에서 만난 여성은

그를 구해 준 농부의 집에서 일하고 있던 유모였는데,

유모가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장면에서

걸리버는 추한 모습에 충격을 받는다.

릴리펏에서 자신의 피부가 거칠어 보인다는 말을 듣고 의아해 한 기억이 있기 때문에

이들의 육체가 추하게 보이는 것이 자신의 크기가

상대적으로 작기 때문임은 걸리버도 알고있다.

러나 걸리버는 이들의 육체를 비교하는 대상으로 자신을 설정하지 않는다.

걸리버는 남성의 육체가 주는 역겨움에 대해서는 절대로 언급하지 않는다.

그가 브롭딩낵의 거인들에게서 육체의 추하고 더러운 모습을 발견할 때,

그 대상은 언제나 여성이다.

여성의 육체에 대한 워딩이 혐오감에 가득 차 있는 것을

읽는 내내 전반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실제로도 이 책인 출간 당시에 여성 혐오적인 부분이 있다고 하여

비판받았다고 한다.)

읽는 내내

소설 속 여성= 감정의 발달이 지나친 나머지 욕구를 통제하지 못하고

감각적 만족에만 매달려 결국은 육체의 지배를 받는 신세

로 그려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거인국의 여왕은 식욕이 없다고 말하면서도 엄청난 양을 먹어치운다.

이때 여왕의 모습은 혐오스럽게 그려지는데,

걸리버는 입 안에 음식을 쓸어 넣고 거대한 새의 뼈다귀를 이빨로 부숴 먹는

여왕을 보며 거인족의 거대한 육체 때문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징그러운 괴물이 희생자를 먹어치우는 것을 바라보는 듯 혐오감을 느낀다.

또한, 걸리버가 바라본 라퓨타의 여성들도

 혐오적인 시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걸리버가 바라 본 그곳의 여성들이 라퓨타에서 도망가는 이유는 

라퓨타의 생활이 지겹고 즐길 수 있는 여흥거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섬 아래 육지로 도망가는 이유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어서라기 보다는

여자라는 성 자체의 무지함과 비이성적임 때문이다.

그리고 도망가는 이유에 대해 다분히 성적인 암시를 풍긴다.

(육지로 도망간 어떤 장관의 부인이 거지의 아내로 매일 매를 맞고,비참한 생활을 하면서도

 라퓨타로 돌아오려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

후이넘이 지배하는 나라에서 특히 암야후는 임신 중이라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음에도 성적 관계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후이넘은 이들의 몸은 추하고 더러울 뿐 아니라

성욕이 지나쳐 혐오스럽다고 생각한다.

걸리버의 시선을 통해 바라본 여성은 이러한 야후와 유사한 존재로

식욕에서부터 성욕에 이르기까지 탐욕스러운 육체의
지배를 받는 존재로 전락하게 된다.


 

전반적으로 위정자들, 현대 사회의 부조리함을

신랄하게 통찰하고 비꼬고 있지만,

여성혐오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점에서는 매우 안타까운 소설이다.

성인이 되어 다시 읽게 된 걸리버 여행기는

생소하기도하고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

이렇게 한 두 권씩 어렸을 때 읽었던 책을

다시 한 번 더 읽어보는 기회를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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