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의 신체 - 우리 몸이 들려주는 기이하고 비밀스러운 이야기
량얼핑 지음, 김민정 옮김 / 미래의창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바야흐로 물질주의 시대이다. TV 등 각종 매체에서 외모 지상주의를 부추기고 있다. 아름다운 외모를 가꾸고 지속시키기 위해 많은 돈을 투자해도 아깝지 않다는 추세이다. 아름다운 얼굴을 갖기 위해 수술대에 눕는다. 턱을 깎고, 코를 높이고, 눈을 찢는다. 입술과 가슴을 부풀린다. 배의 지방을 녹인다. 아름다워지기 위해 돈을 쓰고, 획득한 아름다움을 이용해 돈을 번다. 성형과 화장, 다양한 미용술은 이제 여성의 전유물이 아니다. 여성 못지 않게 남성들도 아름다움의 대열에 합류한 지 오래이다. 웨이브 진 긴머리에 화장을 하고 굽 높은 구두를 신은 남성들이 거리를 활보한다. 몇 년 전 아나운서 이금희 씨가 확 달라진 모습으로 TV 광고에 나타났다. 어머니 같고 누나 같은 포근한 이미지를 벗은 그녀는 몰라보게 아름다웠다. 저렇게 예뻤나. 사람들은 그녀를 다시 봤다. 뾰족한 턱선과 동그란 눈, 붉은 입술, 늘씬한 몸매. 그 즈음 이금희 씨가 한 인터뷰에서, 외모를 꾸미는 것보다 정신을 수양하고 지성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는 부모의 가르침을 받아왔다고 했다. 그 말의 저변에서 나는 외모를 꾸미는 행위는 속물적이고 천박한 것이라는 굳어진 생각과, 훌륭한 인격과 지성으로 충만한 정신을 숭배하는 한 여성을 보았다. 이금희 씨는 얼마 뒤에 다시 푸근한 모습으로 돌아왔고, 확실히 그녀는 물질주의 시대에 역행하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그녀는 그녀 자신의 믿음 대로 아름다웠다.

 

 

   그러면 시대를 역행해서, 1세기, 아니 그렇게 멀리 갈 것도 없다. 몇십 년 전만 하더라도 이금희 씨와 같은 신념이 통상적이었다. 열심히 노력하면 된다. 능력만 있으면 인정받는다. 이러한 신념은 실제로 사회에서 통하는 것이었다. 취업하기 전에 성형외과부터 찾는 요즘 세태와 비교할 때, 아마 그 시절을 '정신의 시대'로 이름붙여도 될 것 같다. 정신의 시대, 그 무형(無形) 숭배 시대에는 외양을 가꾸는 행위 자체를 천박하게 여기는 경향이 컸다. 그런데 참으로 모순적이게도 어느 시대에나 인간은 다양한 방식으로 외모를 가꾸어 왔다. 유물론, 유심론. 거창하게 들먹일 것도 없이, 신체와 정신을 분리하고 인간 존재를 논할 수 없다. 정신만 있고 신체가 없다거나, 신체만 있고 정신이 깃들지 않은 인간 존재를 생각할 수나 있겠는가. 그것은 신체 아니라 시체가 아닌가.

 


   인간의 육신은 영혼을 감싸고 있고 영혼은 육신을 지배한다. 영혼과 육신, 이 둘이 함께하여야 진정한 생명을 가진 인간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육체를 아끼고 보호하면서 우리네 영혼도 보호해야 한다. (279~280)

 


   우리 앞에 펼쳐진 세계는 거대하다. 그 거대한 세계의 작은 귀퉁이마다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간다. 매혹의 신체. 매혹적인 제목이다. 그러나 매혹적인 신체라는 것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문제이다. 앞서 말했듯, 세계는 하나의 거대한 우주이고,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각각의 믿음과 취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대 중국 여성들이 전족 속에 발을 가두어 작은 발로 기우뚱거리며 남성을 매혹했다면, 서양에서는 매끈하게 뻗은 다리와 발을 부각시키는 하이힐이 대세였다. 부르카를 베일처럼 덮어쓴 일부 아랍권 여성들의 검은눈에서 신비스러운 미(美)를 발견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지하철 통풍구 바람이 펼쳐놓은 마릴린 먼로의 붉은 치맛단 사이로 드러난 쭉 뻗은 하얀 다리에서 관능미를 느끼는 이도 있다. 작고 가로로 찢어진 아시아 여성의 눈, 이를 테면 <화양연화>의 장만옥의 눈, 도발적인 고양의 눈매를 닮은 오드리 헵번의 눈은 각각의 아름다움을 발산하며 보는 이를 매혹한다.

 

 

   소말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패션모델 '와리스 디리'는 자신의 책 <사막의 꽃>에서 충격적인 고백을 한다. 그녀가 겨우 일곱 살이 되었을 때, 고향의 풍습에 따라 음핵 절제술을 받았다는 것이다. 마취제도 없이, 소독도 하지 않은 칼을 든 무속인이 거행하는 할례 풍습은 여성의 성욕이 죄악이라는 믿음에서 비롯되었다. 여성의 중심 성감대라는 음순과 음핵을 제거함으로써 성욕을 감소시키면 죄업을 줄일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그녀의 고백으로 세계는 경악했다. 나도 경악했다. 신체 일부를 훼손당하는 고통도 끔찍하겠지만, 인간의 자연스러운 성욕을 죄악이라고 여기는 믿음 또한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렇지만 역으로, 그들 또한 우리의 문화, 나의 취향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분노와 경악이 조금 누그러졌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 '아름다움'을 느끼고 감상할 때 가장 중요한 태도가 아닐까 생각했다.

 

 

   <매혹의 신체>는 확실히 매혹적인 책이다. 신체와 정신을 가진 인간 존재의 다양한 문화와 그들만의 믿음, 아름다움의 기준 따위가 어지러운 향기를 뿜으며 읽는 이를 매혹한다. 각각의 문화, 아름다움의 조건에는 시대와 역사의 영향 또한 무시하지 못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매혹의 신체,라고 해서 신체 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아름다움의 기준을 충족하는 신체와 그에 어울리는 정신이 깃들어 있다면 진정 아름다운 존재일 것이다. 그러면 누군가는 이렇게 물어올지도 모르겠다. 아름다움의 기준이 무엇인가요. 책을 덮으면서 나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구했다. 당신이 보고 듣고 만지고 느끼는 것. 그 안에 아름다움이 있다고. 지금 당신 자신에게서, 신체와 정신 안에 깃들어 있는 그 아름다움부터 발견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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