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그리다 - 화가들이 사랑한 '나의 어머니'
줄리엣 헤슬우드 지음, 최애리 옮김 / 아트북스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일 분에 몇 번이나 눈을 깜빡이는지, 감았다가 뜨는지, 그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생각지 못한 질문을 받을 때면 눈앞은 새하얘진다. 몇 번을 눈 감았다가 뜨는가, 나는 모른다. 그것을 알아볼 생각을 한 적도 없다. 그런데 그런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는 나를 발견할 때, 나는 안다.  대답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당황하고 있는 나를 안다.

 

  어머니. 수많은 화가들이 어머니를 그렸고, 그 많은 화가들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이가 있었다. 그 사람이 바로 "어머니를 그리다"의 필자이다. 그는 화가들과 어머니의 관계가 어떠했는지가 궁금했다고, 그래서 조사했고, 의외의 결과를 얻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그들은 사이가 참 좋았다, 그것이 신기하다고 필자는 밝히고 있다. 왜 그런 가설을 가졌던 것일까. 어머니를 그린다는 것은, 단순히 생각에 그치는 것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신경을 쏟아야 한다는 것인데 범인은 모두 알 만한 사실을 필자는 역으로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필자는 어머니를 생각함에 어떤 감정이 솟치는 것이었을까. 다만 추정해 볼 뿐이다. 그리고 혼자 생각에 자못 서글퍼지고 만다.

 

  서른. 그 나이를 넘어 이제 중반에 다다랐다. 갈 곳이 없는 나이라고들 하고, 몹쓸 소리에 참고 견딤이 옳다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그런 나이 언저리에 나는 그림을 보는 눈빛이 제법 달라졌다는 것을 "어머니를 그리다"를 보면서, 읽으면서 느꼈다. 사실적인 그림을 더 우위에 손꼽았던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의 나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나는 "어머니를 그리다"를 보면서 느꼈다. 추상적인 형상화도, 정묘한 사실화도 모두 같은 느낌이었다는 것이 신기하다. 형상화 방법, 수단보다는 하나의 상통하는 주제를 찾아내는 눈을 얻은 것이다. 그것이 여태 삶에, 그래도 헛것 아니라는 항변이 가능하게 하는 자위이다.

 

  필자는 '어머니와 자녀'의 관계를 주목하며, 어머니를 그린 화가들의 이야기를 많이도 언급하고 있다. 왜 그렇게 많은 화가들을 살펴야 했을까. 이 책은 특정한 화가를 심도 있게 탐구하는 것과는 애초부터 다른 출발점에 놓여 있다는 것을 독자를 깨달아야 한다. 많은 화가들을, 마치 수박 겉핥기처럼 적은 지면에 언급하고 있는 필자의 의도를 먼저 살핌이 옳겠다. 그렇다. 필자는 '관계'를 살피고, 그 울림 속에서 색다른 '치사랑'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다. '내리사랑'과 '치사랑'을 견주며 존재 여부를 따지는 것은 사실 소모적인 일이다. 지금 나는 '관계'를 어떻게 형상화하고 있는지를 점검하게 된다. 필자는 이미 많은 선인들이 언급했던 '지금 여기의 우리'를, 그 소중함을 깨치도록 경각심을 울리고 있다.

 

  두 아들을 먼저 보내고, 여생을 살았다는 '고흐와 테오'의 어머니가 자꾸 눈에 밟힌다. 아들의 천재성을 미리 알았다는 어머니, 그러나 불행했던 아들을 지켜보던 어머니의 한생은 수없이 오고갔던 편지만큼이나 세상의 인식과는 다른 무엇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고흐의 편지가 동생 테오에게만 즐겨 오고갔는 줄 알았는데, 이 책은 또다른 고흐의 이야기, 그의 가족사에 대해서 알게 도와주었다. 편지를 쓸까, 생각만 하다가 멋쩍어 웃고 만다. 편지를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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