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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 : 금지구역 - 2012 앙굴렘 국제만화축제 해바라기상 수상
프란시스코 산체스 지음, 나타차 부스토스 그림, 김희진 옮김 / 현암사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프란시스코 산체스 글/나타차 부스토스 그림/김희진 역 | 현암사 | 191쪽 | 646g | 153*224mm | 2012년 03월 11일 | 정가 : 12,000원
이 책을 구입한 사실은 기억하나 왜 구입했는지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누군가의 추천을 받은 것 같지도 않고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로 체르노빌이 궁금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기도 한데, 꼭 왜 이 책이었는지가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표지에 있는 대관람가 붉은 배경으로 너무 쓸쓸해서 충동구매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충동구매 결과는 슬픈 대만족이었다.
이야기는 체르노빌 금지구역으로 들어간 "레오니드와 갈리아"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 부부는 도시에 나가서 살 수 없는 시골 사람이고 평생 농사를 지어온 그저 평범한 농부다. 이런 사람들에게 땅과 집을 빼앗는 일이 어떤 의미인지, 모르는 사람은 몰라도 아는 사람은 그들의 황망함을 알터. 자신의 집으로 돌아왔지만 방사능에 노출된 이들의 삶이 평탄하진 않다. 자신들은 병들고 서서히 죽어가고 키우던 가축은 기형의 새끼를 낳고, 농작물은 지나치게 자라 말도 안되게 커다란 수확물을 얻기도 한다. 레오니드는 죽어가는 갈리아를 위해 딸 안나를 데리러 프리피야트로 가지만, 그 곳에서도 농촌 만큼 황폐한 도시를 만난다. 이미 늙은 이 부부는 마을을 떠나야 하는 이유가 전쟁 이외에 뭐가 있겠냐고 생각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적의 존재는 생각하지 못한다.
이야기는 "레오니드와 갈리아"의 딸 이야기로 넘어간다. 핵사고 이전의 평온한 프리피야트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 "블라디미르와 안나"의 이야기.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날 것같은 이 가족에게 닥친 불행은 불편하고 불쾌했고 손가락과 말로만 지시하고 행동하지 않는 자를 잡아다가 책임을 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간이 흘러 안나의 아이, " 유리와 타티아나"가 20년 전의 프리피야트에 방문하고 유령이 된 도시를 바라본다. 삶이 뭐 이런가 싶다.
구체적으로 파고들어 설명하지 않고, 선명한 컬러로 보여주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불행을 확대생산하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의 생활을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이야기와 그림이 더 아팠다. 첫번째 읽을 때보다 두번째 읽을때 더 아프고, 세번째 읽으면 더 아프지만 감동적이다.
책 상태 매우 좋다. 세계 원자로 가동 현황 지도와 죽음 이후의 유령 도시 프리피야트의 사진, 글쓴이의 후기와 그린이의 후기, 그리고 그들이 나눴던 의견과 빼버려야했던 아까운 장면들에 대한 이야기가 함께 담겨 있다. 두 작가분께, 한발 물러선 모습으로 글쓰고 그려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이런 그래픽 노블을 안사면 무슨 책을 사나 싶다. 강력 추천.
1.
프리피야트는 구소련 계획 도시로, 주로 원자력 발전소의 직원들이 사는 곳이었다. 블라디미르가 발전소 직원으로 근무했고, 안나는 대부분이 발전소에서 근무하는 사람이 사는 곳이기에 그 곳에 문제가 생겼을 때 문제를 이야기 해주지 않을 것이라는 의심을 전혀 하지 않는다. 78만명의 인구를 수용하는 이 대도시는 소개령이 내려지고 사흘 정도면 집에 돌아올 생각으로 짐을 싼 사람들은 돌아가지 못했다. 반려동물은 도시에 버려지거나 죽여졌다. 현재, 350명 가량이 방사능 물질로 뒤범벅된 땅으로 돌아가 근근이 살고 있을 뿐이다.
2.
표지에 그려진 대관람차는 1986년 5월 1일 개장 예정인 놀이공원의 대관람차다. 사고가 4월 46일에 났기에 이 대 관람차는 손님을 받은 적이 없다. 그래서 더 슬프다.
3.
그리고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처음으로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간 소방관들이 죽음을 맞이했고, 사고 처리를 위해 8만명의 처리반이 급파되었다. 영웅의 이름을 씌워 훈장과 증서를 대가로 인생을 걸고 생명을 바쳤다. 그리고 처리반으로 자발적으로 나서는 과정이 결코 아름답지는 않았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만화에서 등장하는 "안톤"이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