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호
성혜령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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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이유가 있고, 그냥 그럴 때가 있다. 그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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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호
성혜령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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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표지에 홀려있었다. 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금색의 문양과 제목이 고급스러워서, 처음 책을 받아봤을 때 요리조리 빛을 비춰봤다.

성혜령 작가님의 책은 처음이었다. 띠지에 쓰인 '서스펜스'라는 글자를 보고 궁금증을 가진 채 책을 읽었다.

<임장>, <하악>, <대부호>, <운석>, <나방파리>, <독재자의 오른발>, <원경>, <베인>까지. 어느 하나 "희망적이고 참 아름다운 결말이다!"라는 생각이 든 작품은 없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런 결말이 아니라서 참 좋았다.

각 단편마다 정말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나온다. 이 사람들이 머물고 있는 공간, 집이든 산이든 어디든, 그리고 그 공간에서 어디론가 나아가는 과정이 재밌다. 남쪽으로 갔다가 북쪽으로 갔다가, 라운지에 있다가 위로 올라갔다가, 산으로 올라가고, 별내에 갔다가 종로로 갔다가.

타인과의 관계가 씨줄과 날줄로 얽혀있는 삶 속의 중심은 '나'다. '나'라는 세계에서 내가 중심인 건 너무나도 당연하다. 그래서 누군가가 아프고 힘들어도, 내가 우선이 되는 모습. 그게 이기적으로 보일 수도 있고, 어쩔 수 없다고 여겨지기도 하는 그 모습을 보며 손가락질을 하다가도 이해하게 되는 내 스스로가 제일 서늘했다.

저장 장애, 야간 노동 과로사, 전세사기, 탄핵 반대 집회까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사회를 고스란히 담고 있어 전혀 낯설지가 않다. 그 환경 속에서, 그리고 내가 아닌 사람들, 가족부터 친구, 연인까지와 부대끼며 생각하고 느끼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면 바로 우리 아파트에서 살고 있거나 출근길 나를 지나쳤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구불거리는 것 없이 쭉쭉 차고 나가는 문장. 이게 소설인지 현실인지 얼떨떨하게 만들면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이 책은 정말 보물 같다. 반짝이는 저 표지처럼.

〰️〰️🖍️

-우리, 다, 그럴 때가 있는 것 같다고. 그냥, 그럴 때.

-“혁명이다.“ ”혁명해서 좋아?“ ”그럼, 좋지.”

-아버지, 저는 정말 최선을 다했어요.

-아픈 사람에게는 사랑이 아니라 인내가 필요하니까.

-눈앞에서 누가 총을 맞고 쓰러져도, 종이에 베인 내 손가락 상처가 더 아픈 게 인간이야. 언니는 다를 거라고 착각하지 마.

*릴레이 서평단이 선정되어 출판사를 통해 책을 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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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고스
이승형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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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년 된 고분군과 스마트 물류센터, 비닐하우스촌이 공존하고 있는 김해 금관. 과거와 현재, 그리고 어쩌면 우리가 마주하게 될 미래가 한 공간에 겹쳐 있다.


3억이라는 큰 빚을 지고 파산한 의사 정재일은 스마트 물류센터의 야간 구급대원으로 일을 시작한다. 그동안 살아온 삶과는 전혀 다른 삶이다. 아무도 잠들지 않는 세계에서 혼자 졸려하는 사람. 이곳에서는 잠이 화폐로 통한다. 빚에 쫓기는 정재일은 잠들지 않는 노동자들을 보며 빠르게 계산하기 시작한다.


물류센터에서는 잠을 자지 않고 일하는 노동자들이 늘어나면서 교대근무조차 무용지물이 되어버린다. 정재일의 시선을 따라 그 한가운데 서 있는 듯 책을 읽는 동안, 끊임없이 유사하면서도 대조적인 장면들을 마주하게 된다.

어쩌다가 여기까지 와서 일하는지 개인의 신상을 묻지 않는 것처럼, 물동량이 오르면 아무것도 묻지 않는 것이 규칙인 세계.


착, 착, 착.

로봇이 상자를 집는다. 로봇이 분류하지 못하는 비규격 상자를 노동자들이 처리한다.


쿵, 쿵, 쿵.

사람이 상자를 나르는 소리가 로봇의 움직임과 어느 순간 하나의 리듬이 되어간다.


생명이 있는 인간이 잠을 자지 않는 ‘불면노동자’가 되면서, 아르고스라는 AI 관제센터의 통제에 맞춰 움직이는 로봇과 인간의 구분도 희미해진다. 인지와 인식, 판단의 기능을 잃고 감정을 잃고 목숨까지 잃을 수 있지만, 물동량이 오르고 돈을 더 벌 수 있으니 모든 것은 ‘문제가 없다’고 치부된다.


돈에 대한 절박함과 사람을 살려야 한다는 절박함. 너무나 상충되는 두 절박함이 한 사람 안에서 공존한다.


소설을 읽으며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된 것은 ‘잠’이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야간노동을 단순히 힘든 근무형태로 보지 않는다. 야간노동은 생체시계를 교란하고 수면장애와 피로를 일으키며, 피로는 주의력과 반응속도, 집중력과 판단력을 떨어뜨려 사고와 부상의 위험을 높인다.

인간에게 생체리듬은 단순히 ‘잠자는 습관’이 아니다. 몸 전체가 시간을 기억하고 있는 것에 가깝다.


밤에 잠을 자는 것은 인간의 생물학적 리듬이다. 하지만 <아르고스>의 노동자들은 인간의 생물학적 리듬이 아닌 로봇과 같은 리듬으로 노동한다. 잠을 자야 하는 시간에 일을 하고, 잠을 자지 않는 만큼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세계. 잠은 더 이상 온전히 자신의 것이 아니다.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시간이지만, 이 세계에서는 노동을 위해 내어놓아야 하는 시간이 된다.


그렇다면 잠을 노동으로 빼앗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잠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니다. 몸이 회복하고, 뇌가 기억을 정리하고, 면역체계가 작동하고, 다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다. 인간에게 잠은 여가가 아니라 생존에 가까운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잠을 팔아 불면불휴의 삶을 선택하고, 스스로 컨베이어벨트의 부품이 되어버린 노동자들의 모습은 더욱 공포스러웠다.


그들 사이에서 수아는 너무나 이질적인 존재였다. 사람이 기계처럼 일하는 세계에서 기계를 사람처럼 살피는 사람. 기계가 된 노동자들에게 꿈 이야기를 들려주는 수리 하청노동자. 나는 수아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 이상하리만큼 큰 안도감을 느꼈다.

소설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아르고스’가 무엇인지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읽어갈수록 공포스러웠고 두려웠다. 그리고 결말에 다다랐을 때는 울컥했다.


두려웠던 이유는 이 세계가 너무나 먼 미래처럼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그대로 비추는 거울처럼 느껴졌다. 멀지 않은 언젠가, 어딘가에, 어떤 형태로든 ‘아르고스’가 존재할 것 같았다.


이미 현실에서는 야간·새벽 노동으로 노동자가 목숨을 잃고 있다. 작년, 한 노동자의 발인이 끝나기도 전 또 다른 센터에서 노동자가 숨을 거두는 일이 벌어졌다. 그들 역시 야간에 일하는 사람들이었다.


<아르고스>가 무서운 것은 AI가 인간을 지배하는 미래를 그려서가 아니다. 인간이 스스로 잠을 포기하고, 생체리듬을 거스르고, 자신의 몸과 감정과 판단을 내어주면서까지 노동해야 하는 현실이 이미 우리 곁에 있기 때문이다.


1500년 동안 고분 속에 잠들어 있는 가야인들과, 밤에도 잠들지 못한 채 일하는 노동자들. 서로 전혀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두 존재가 ‘잠’이라는 하나의 소재로 이어진다.


“이 이야기가 지금 쓰여야 한다는 것만은 알았다.”라는 작가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이 책을 읽은 독자로서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착, 착, 착. 삑, 삑, 삑. 기계소리보다 크으, 크으, 크으, 코 고는 인간의 소리가 누군가에게 사치가 아니길, 꿈 같은 일이 아니길 바란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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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고스
이승형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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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착-착, 삑-삑-삑 기계소리보다 크으, 크으, 크으, 코 고는 인간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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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벽돌에 독립을 새긴 사람들 - 상하이부터 충칭까지, 정치부 기자의 임시정부 기행
이창희 지음 / 드루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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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를 통해 책을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쓴 후기입니다.


이 책은 꼭 8월 안에 읽고 싶은 책이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은 14일, 광복절은 15일, 그리고 29일은 경술국치일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 배우의 증조부 친일 논란이 있기도 했다. 그래서 더욱 8월에 이 책을 읽고 싶었다.

정치부 기자인 이창희 작가님은 우리 근현대사를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에 이용하는 현실에 회의를 느끼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중국으로 향한다. 상하이부터 충칭까지 23일 동안 11개 도시를 다닌다. 잘 보존되어 있는 공간을 찬찬히 둘러보기도 하고,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곳에 가서는 온전히 자신의 상상에 맡긴다. 하지만 곧 밀려드는 허탈함과 공허함은 방에 앉아 책을 읽는 나에게도 똑같이 전해졌다.

역사적 사실을 마주할 때 가장 많이, 흔하게 하는 생각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인 것 같다. 잠시 상상하는 데 시간을 쓰는 정도인 것 같은데, 작가님은 그들이 걸었던 길을 걷고, 머물렀던 곳에 머문다. 때로는 그들을 더 가까이에서 느끼고 싶어 좁은 골목을 뛰어보기도 한다. '작가님을 이렇게 움직이게 한 그 힘은 무엇이었을까?'라는 고민을 계속 곱씹게 되는 책이었다.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조국을 떠나 있을 수밖에 없었던 이들, 다른 나라와 함께 힘을 합쳐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싸웠던 이들. 이 책은 내가 알고 있던 임시정부의 대표적인 몇몇 인물들뿐만 아니라,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이들까지 생각하게 한다. 그래서 이 책이 참 고마웠다.

같은 역사의 뿌리로부터 함께 살아가고 있는 우리지만 다른 역사인식을 갖고 있는 것은 자유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독립운동과 친일의 역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작가님이 난징에서 택시를 탔던 일화를 풀어낸 <강남 한복판에 위안부 기념관이 생긴다면>이 기억에 남는다. 역사를 바라보는 생각은 다를 수 있지만, 역사적 사실까지 다르게 만들 수는 없다. '역사 문제가 토론의 주제가 아니라 태도의 기준이 된다'는 문장이 계속 기억에 남았다.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사람들. 붉은 벽돌로 지어진 건물이 빼곡한 좁은 골목에는 그들이 독립을 위해 걸었던 길과 목숨까지 내놓고 사선을 넘나들었던 시간이 남아 있다. 그들의 이름을 모두 기억할 수는 없더라도, 그들이 남긴 길과 이야기를 기억하는 것은 결국 그들 덕에 지금을 살아갈 수 있는 우리의 몫이 아닐까.

잊지 않는 것, 사실을 사실대로 기억하는 것. 그리고 그 기억을 함부로 이용하지 않는 것.

그것이 우리가 역사 앞에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책무가 아닐까.

이런 고민을 끊임없이 하게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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