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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고스
이승형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8월
평점 :
1500년 된 고분군과 스마트 물류센터, 비닐하우스촌이 공존하고 있는 김해 금관. 과거와 현재, 그리고 어쩌면 우리가 마주하게 될 미래가 한 공간에 겹쳐 있다.
3억이라는 큰 빚을 지고 파산한 의사 정재일은 스마트 물류센터의 야간 구급대원으로 일을 시작한다. 그동안 살아온 삶과는 전혀 다른 삶이다. 아무도 잠들지 않는 세계에서 혼자 졸려하는 사람. 이곳에서는 잠이 화폐로 통한다. 빚에 쫓기는 정재일은 잠들지 않는 노동자들을 보며 빠르게 계산하기 시작한다.
물류센터에서는 잠을 자지 않고 일하는 노동자들이 늘어나면서 교대근무조차 무용지물이 되어버린다. 정재일의 시선을 따라 그 한가운데 서 있는 듯 책을 읽는 동안, 끊임없이 유사하면서도 대조적인 장면들을 마주하게 된다.
어쩌다가 여기까지 와서 일하는지 개인의 신상을 묻지 않는 것처럼, 물동량이 오르면 아무것도 묻지 않는 것이 규칙인 세계.
착, 착, 착.
로봇이 상자를 집는다. 로봇이 분류하지 못하는 비규격 상자를 노동자들이 처리한다.
쿵, 쿵, 쿵.
사람이 상자를 나르는 소리가 로봇의 움직임과 어느 순간 하나의 리듬이 되어간다.
생명이 있는 인간이 잠을 자지 않는 ‘불면노동자’가 되면서, 아르고스라는 AI 관제센터의 통제에 맞춰 움직이는 로봇과 인간의 구분도 희미해진다. 인지와 인식, 판단의 기능을 잃고 감정을 잃고 목숨까지 잃을 수 있지만, 물동량이 오르고 돈을 더 벌 수 있으니 모든 것은 ‘문제가 없다’고 치부된다.
돈에 대한 절박함과 사람을 살려야 한다는 절박함. 너무나 상충되는 두 절박함이 한 사람 안에서 공존한다.
소설을 읽으며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된 것은 ‘잠’이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야간노동을 단순히 힘든 근무형태로 보지 않는다. 야간노동은 생체시계를 교란하고 수면장애와 피로를 일으키며, 피로는 주의력과 반응속도, 집중력과 판단력을 떨어뜨려 사고와 부상의 위험을 높인다.
인간에게 생체리듬은 단순히 ‘잠자는 습관’이 아니다. 몸 전체가 시간을 기억하고 있는 것에 가깝다.
밤에 잠을 자는 것은 인간의 생물학적 리듬이다. 하지만 <아르고스>의 노동자들은 인간의 생물학적 리듬이 아닌 로봇과 같은 리듬으로 노동한다. 잠을 자야 하는 시간에 일을 하고, 잠을 자지 않는 만큼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세계. 잠은 더 이상 온전히 자신의 것이 아니다.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시간이지만, 이 세계에서는 노동을 위해 내어놓아야 하는 시간이 된다.
그렇다면 잠을 노동으로 빼앗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잠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니다. 몸이 회복하고, 뇌가 기억을 정리하고, 면역체계가 작동하고, 다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다. 인간에게 잠은 여가가 아니라 생존에 가까운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잠을 팔아 불면불휴의 삶을 선택하고, 스스로 컨베이어벨트의 부품이 되어버린 노동자들의 모습은 더욱 공포스러웠다.
그들 사이에서 수아는 너무나 이질적인 존재였다. 사람이 기계처럼 일하는 세계에서 기계를 사람처럼 살피는 사람. 기계가 된 노동자들에게 꿈 이야기를 들려주는 수리 하청노동자. 나는 수아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 이상하리만큼 큰 안도감을 느꼈다.
소설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아르고스’가 무엇인지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읽어갈수록 공포스러웠고 두려웠다. 그리고 결말에 다다랐을 때는 울컥했다.
두려웠던 이유는 이 세계가 너무나 먼 미래처럼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그대로 비추는 거울처럼 느껴졌다. 멀지 않은 언젠가, 어딘가에, 어떤 형태로든 ‘아르고스’가 존재할 것 같았다.
이미 현실에서는 야간·새벽 노동으로 노동자가 목숨을 잃고 있다. 작년, 한 노동자의 발인이 끝나기도 전 또 다른 센터에서 노동자가 숨을 거두는 일이 벌어졌다. 그들 역시 야간에 일하는 사람들이었다.
<아르고스>가 무서운 것은 AI가 인간을 지배하는 미래를 그려서가 아니다. 인간이 스스로 잠을 포기하고, 생체리듬을 거스르고, 자신의 몸과 감정과 판단을 내어주면서까지 노동해야 하는 현실이 이미 우리 곁에 있기 때문이다.
1500년 동안 고분 속에 잠들어 있는 가야인들과, 밤에도 잠들지 못한 채 일하는 노동자들. 서로 전혀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두 존재가 ‘잠’이라는 하나의 소재로 이어진다.
“이 이야기가 지금 쓰여야 한다는 것만은 알았다.”라는 작가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이 책을 읽은 독자로서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착, 착, 착. 삑, 삑, 삑. 기계소리보다 크으, 크으, 크으, 코 고는 인간의 소리가 누군가에게 사치가 아니길, 꿈 같은 일이 아니길 바란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