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밖에서 비명 소리가 - 뉴 블랙 호러 앤솔러지
N. K. 제미신 외 지음, 조던 필 엮음, 이나경 옮김 / 황금가지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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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공포영화를 좋아하지만, 아무 공포나 다 좋아하는 건 아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조던 필 감독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단순히 무섭기 때문이 아니라, 영화를 보고 나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영화 속 공포는 귀신이나 괴물보다도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비롯된다는 느낌이 강하다. 흑인이라는 주인공의 위치를 통해 드러나는 차별과 폭력은 낯설지 않아서 더 불편하다. 그래서 오히려 더 오래 남는다.

이런 이유로 <저 밖에서 비명 소리가>를 집어 들었다. 조던 필이 직접 엮은 뉴 블랙 호러 앤솔러지라는 점에서 기대가 생겼다. 표지도 기대감을 높이는 데 한 몫했다. 수록된 작가들은 대부분 처음 접하는 이름이었지만, 이야기들이 낯설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노예제나 시민권 운동, 경찰 폭력처럼 익숙하지만 제대로 마주하지 않았던 이야기부터, 종말이나 초자연적 존재 같은 소재까지 다양하게 담겨 있다. 제각각인듯 하지만 읽다 보니 묘하게 한 방향으로 모인다.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역시 ‘비명’이라는 단어였다. 비명은 그냥 무서워서 지르는 소리라기보다, 더는 참을 수 없을 때 나오는 신호에 가깝다고 느꼈다. 생각해보면 그런 비명은 계속 있었을 텐데, 우리는 그걸 들으려고 하지 않았던 건 아닐까 싶었다. 어쩌면 이 책은, 들리지 않던 소리가 문장이 된 책인지도 모른다.

읽는 동안 불편했다. 단순히 무서워서라기보다는, 그게 그냥 현실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그 현실을 생각할수록, 불편함을 넘어서 분노가 생겼다. 소설 속 장면들조차 이 정도인데, 이것이 실제였던 과거는 얼마나 더 처참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여러 단편 중에서는 〈그 승객〉과 〈노우드의 소란〉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흑인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어서 더 날것처럼 느껴졌다. 〈눈과 이〉는 읽는 내내 영화 보는 기분이었고, 마지막에 가서야 “아, 이래서 이 이야기였구나” 싶었다. 반대로 〈압력〉과 〈어두운 집〉은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운 공포가 계속 쌓이는 느낌이라 읽고 나서도 한동안 기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이 책은 단순히 무서운 이야기를 모아놓은 작품집은 아닌 것 같다. 읽다 보면 “이건 그냥 이야기로만 볼 수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책을 덮고 나서도 제목이 계속 머리에 남는다. ‘저 밖에서 비명 소리가’라는 말이 더 이상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는 그 비명이, 문장이 아니라 현실의 소리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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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힘
박서련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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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여러 책을 읽어왔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나의 인생책은 체공녀 강주룡이다. 몇 번이나 재독했고, 더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기증까지 했다. 그래서 사랑의 힘은 고민할 필요도 없이 펼쳐든 책이었다.

다만 마지막 연애 이후 약 3년. 메마른 나의 마음에 이 책이 촉촉한 단비가 되어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조금은 품고 있었다.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우선 책이 너무 예쁘다. 천연염색 장인이 천을 물들이던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은은한 색감, 이야기마다 다른 색의 조합이 읽기 전부터 설렘을 더했다.

<사랑의 힘>의 모든 이야기는 ‘로로마’에 맞닿아 있다.
2010년대 후반부터 수도로 공급된 미생물, 이른바 ‘사랑의 힘’ 미생물. 사랑을 하면 연산 능력, 점프력, 언어 능력, 신체 감각까지 무작위로 향상된다. 이 설정 자체가 매우 흥미롭다.

이러한 로로마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사랑 조기교육’ 열풍을 다룬 <사랑은 유행>을 시작으로, 총 8개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 책은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총망라한다. (심지어 대상이 사람이 아닌 경우까지도, 현실고증처럼 느껴진다.)

풋풋함에 대리 설렘을 느끼기도 하고,
“왜 그러는거야”에 “미쳤나봐”를 수십 번 덧붙이기도 하고,
웃었다가 화를 냈다가, 다시 마음이 아파지기도 한다.

특히 <어떤 사랑의 악마가 있어>, <문어와 나>, 에서는
사랑에 대한 희구, 구걸, 혐오, 증오, 의심까지 온갖 감정이 넘쳐흐른다. 그 감정의 밀도가 높아 읽는 내내 쉽지 않았지만, 그만큼 깊이 몰입하게 된다.

읽다 보면 이 책이 ‘연작소설’이라는 점을 자주 잊게 된다. 각 이야기는 독립적이면서도 ‘로로마’라는 바톤을 쥐고 이어달리기를 하듯 서로를 스쳐 지나가고, 결국 하나의 흐름으로 만난다. 책을 읽다가 반가움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

송희지 시인의 추천사 중 “박서련의 소설은 사랑의 가장 다정한 지도인 동시에 해부도다.”라는 문장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며 그 말이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카페에서 책의 막바지를 읽고 있을 때였다. 내 옆 테이블의 한 커플이 헤어지고 있었다. 한 사람은 공허한 눈으로 유리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조용히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가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도대체 사랑이 무엇일까?
이 책은 그 질문에 하나의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여러 방향으로 쪼개어 보여준다. 그래서 오히려 더 정확하게, 사랑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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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호랑이
네주 시노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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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호랑이

대략의 내용을 알고 있었지만, 막상 가제본을 받아들고는 쉽게 페이지를 넘길 수 없었다. 나는 이야기가 '의붓아버지에게 9살 때부터 아동 성적 학대를 당한 저자가 기어코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쓴 이야기가 아닐까', '이겨낸 과정은 어떠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그것은 내가 만든 하나의 구조였고 나의 기대였을 뿐이라는 것을. 네주 시노는 그걸 단호하게 무너뜨렸다.

1부 <초상화의 시작>은 <내 강간범의 초상화>으로 시작한다. 강간범이자 학대범이었던 '그' 뿐만 아니라 가족과 살았던 마을 등 당시 모습을 호출하며 과거를 복기한다. 사건을 재구성하는 이 과정은 단순한 고발이 아니라, 기억과 시선의 해체에 가깝다.

책 초반, 나는 거의 욕을 적다시피 밑줄을 그었다. 소중한 나의 책이 더러워지더라도 문장을 읽음으로써 만들어지는 분노를 표현할 방법이었다. 이 방법은 이 책에 대한 나의 1차원적인 소회이자 1차적인 나의 소회이다.

하지만 책은 나의 1차원적인 소회를 잠재운다. 냉소적이고도 객관적인 문장들이 이어지며 오히려 나를 더 깊은 사색의 틈으로 밀어 넣는다. 이 글이 쓰이기까지 동반되었을 고뇌의 밀도를 짐작하게 된다.

2부는 지속적인 성적 학대가 이후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다. 이 책은 다양한 문학과 사상, 이야기를 끌어오며 전개되지만, 그보다 인상적인 것은 독자가 그 사유의 과정에 직접 참여하게 된다는 것이다.

읽는 동안 나의 태도 또한 변해갔다. 분노에서 출발했지만, 점차 차분해졌고, 결국 다시 분노로 돌아왔다. 이전과는 다른 분노였다.

가장 오래 붙잡고 있었던 것은 '악의 평범성'이었다. 우리는 '악인이 우리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믿으며 안심하려 한다. 결국 이는 무너지게 된다. 사회적 가면을 쓴 채 일상을 살아가는 가해자이자 포식자, 그리고 법정에서조차 자신을 정당화하는 모습은 단순한 분노를 넘어 소름에 가까운 감각을 남긴다. 그간 그 감각을 느꼈던 것은 범죄자에 대한 단순한 분노가 아니라 내가 마주한 '악의 평범성'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이 책을 읽는 내내 주되게 들었다.

또한 '피해자다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피해자는 이래야 한다는 기대, 일상을 유지하면 이미 극복한 것이라는 시선. 나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들었다. 책을 끝까지 보기 위해서는 마주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책은 독자를 그저 수동적인 사람으로 남겨두지 않는다. 문장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사유에 동참하게 만든다. 그래서 한번 펼치면 책을 덮기 어렵고, 책을 덮으면 계속 고민하게 된다. 이것이 이 책의 독보적인 지점이 아닐까싶다.

이 책을 읽고 있는 와중에도, 한 유명인의 성범죄 전력에 대한 기사가 보도되었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악의 평범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출판사를 통해 제공 받아 작성한 주관적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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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미스터리 2026.봄호 - 89호
한이 외 지음 / 나비클럽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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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처음 만난 나비클럽. 아직도 첫인상이 잊혀지지 않는다. “Life is full of mystery(인생은 미스터리로 가득하다)“는 슬로건의 미스터리 편집샵 느낌이었고 그때 계간 미스터리를 처음 알게되었다.

그리고 올해 봄호 ”로맨스는 어떻게 우리의 본능을 사로잡는가“ 를 읽었다. 봄하면 여러 사랑 노래, 멜로영화 등 핑크하트가 떠오르지만 역시(?) 계간 미스터리답게 다른 결의 핑크표지를 만날 수 있었다. 무려 로맨스 스탬을 소재로 한 특별 단편 네 편이라니. 평소 추리, 미스터리, 스릴러를 좋아한다고 곧잘 말하고 다녔던 나에게는 또다른 설렘이었다.

봄호는 두 가지 특집 코너로 시작한다.
첫번째는 <2025 한국추리문학상 수상자들을 만나다>
고태라, 김영민, 여실지, 박건우 작가 모두 계간 미스터리 신인상 출신! 수상작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진진해서 바로 장바구니에 다 담아놨다.

두번째는 <2026 해외 출간 예정 작품>이었는데 출간되고 번역되고 한국에서 출간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재밌어보이는 작품을 미리 선택하는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로맨스 스캠 특별 단편!
김아직 작가님은 정말 천재다 라고 생각했던 <봐라니 연가>, 제일 여운이 길었던 서윤빈 작가님의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나에겐 슬픈 반전으로 다가왔던 박하익 작가님의 <샤랑에는 돈이 들어> 그리고 로맨스 스캠 피해자와 가해자의 고정관념을 깨주는 <할머니 수사단>까지. 단편 배치 순서가 이 순서라서 더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한 보물 단편 만난 느낌.

그 외에도

-서브컬처와 밈에 대한 연재(요건 알듯 말듯 어려운데 신세계 느낌)

-명탐정에 대한 작품 톺아보기(난 진짜 코난과 김전일 밖에 모르는 바보였구나)

-이영도 작가님 인터뷰(되게 진지한 유머꾼 작가님)

-애거사 크리스티 서거 50주기 에세이(그리고 아무도 잊지 않았다!)

-미스터리 영상 리뷰(이건 바로 영상 보기 시작)

-사건의 재구성(역시 나는 추리꽝ㅠ)

-신간 리뷰까지(내가 읽은 책 찾아보는 것도 쏠쏠)

날이 갈수록 사계절이 두 계절로 수렴되고 있는 가운데 미스터리에 진심인 사람들이 만든 계간 미스터리가 얼마나 귀한지도 깨닫게 되었다. 정말 컨텐츠가 꾹꾹 눌러담아있다.

그리고 추미스가 가장 좋아하는 장르라고 말하지만 내가 깊은 우물 속에 개구리였다는 걸 깨닫게 되었는데 여러 개념에 대한 이해가 되니 앞으로 더 추미스를 잘 읽을 수 있겠다싶다. 

약간 내가 겉멋 들었었구나라는 반성이 ㅎㅎ

여름호가 올 때까지 봄호를 복기하며 신간들을 찾아 읽어야겠다.
나름 추미스 덕후인데 계간미스터리를 몰랐다? 그럼 지금 바로 시작하시길.



계간미스터리서포터즈로서 도서제공을 받아 작성했습니다. 하지만 진심으로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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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가 되고 싶어 위픽
김화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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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가되고싶어

일과 삶의 권태로움을 느끼던 '가은'.
회사 생활을 모험이라 말하며 좋음을 발명하던 '완이'가 떠나고, 가은은 완이를 통해 알게된 '수경'과의 관계를 이어간다.

가끔 연기가 되는 수경을 부러워하며, 자신도 연기가 되고 싶었던 가은은 수경과의 만남과 대화를 통해 깨닫게 된다.

자신이 되고 싶었던 건 연기가 아니라 '마음 먹으면 펄쩍펄쩍 높이 뛰는, 어디로 튈지 모르고 그저 점프력이 엄청난, 점프에의 의지가 엄청난 개구리'였다는 것을.

그저 나에게만, 그리고 (완이와 함께 한) 우리에게만 스스로에게 관심이 있고, 관심이 좀 필요했던 올챙이었던 가은이 비로소 개구리가 되고싶다는 마음을 깨닫는 순간. 난 그런 가은을 보며 언젠가의 나를 떠올렸다.

권태로움이라고 부르는 게 맞을까 싶기도 하지만, 김화진 작가가 본인에게 쥐어줬던 토베의 문장 '무언가가 조금 잘못돼 있다는 걸 알지만, 그 점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쓴다'는 시간이 나에게도 있었다.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척, 들리지만 들리지 않는 척. 마치 차안대를 쓴 경주마처럼. (하지만 달리지는 않는)

그때의 나는 나의 상태를 인정하지 않았고, 스스로 회피하며 누군가를 탓하고 싶어 했다. 사실 인정했다면 조금 더 쉬웠을텐데. 숨을 곳이 어디 있다고 그렇게 피하고만 있었을까. 모든 것은 인정으로부터 시작되는데.

위픽 시리즈인 이 책은 매우 얇지만, 마치 물을 잔뜩 먹은 솜마냥 묵직다. 과거의 내가 부끄러워 무겁기도 하고, 그 또한 나였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어서 무겁기도 하다.

가은은 개구리가 되고 싶다는데, 나는 무엇이 되고싶을까.
오늘의 고민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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