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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임금을 찾아서
이민경 지음 / 봄알람 / 2017년 10월
평점 :
#잃어버린임금을찾아서
작년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봄알람 부스에 들렸다가 구입했던 책. 올해 여성의날을 맞이해서 집에 있는 페미니즘 책장을 뒤적이다가 골랐다. 읽을 시간이 부족해 비로소 어제 다 읽었다. 얇은 책이지만 읽는데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밑줄을 여러 번, 많이 긋기도 했지만 놀라움과 분노를 다스리며 읽어야 했기 때문일지라.
"한국에서 여성이 더 받았어야 하는 임금의 액수를 구하시오."
가뜩이나 수학을 좋아하지 않는데 단순한 계산 문제가 아닌 이 문장은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한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가고 있는 내가 더 받았어야 하는 임금의 액수라니. 단번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나 또한 그랬다.
OECD '성별 임금 격차' 통계에 포함되기 시작한 1992년부터 지금까지, 한국은 OECD 회원 국 중 성별 임금 격차가 가장 큰 나라이다. 줄곧 최하위, 성별 임금 격차 1위를 놓쳐본 적이 없다. 유리천장, 유리 에스컬레이터, 여성 임금 M자 곡선까지. '우리나라만큼 성평등한 나라가 어디있나', '여성과 남성이 하는 일이 다르기 때문에'라는 수많은 반대 주장에 작가는 차근차근 설명한다. 여성이 어느 시기에, 어떻게 잃어버린 임금이 발생하는지를.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차별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책을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그래도 옛날보다는 나아지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어지는 여러 사례를 보면 놀랍기 그지 없다. 어느 지역의 작은 규모의 회사가 아니라, 우리가 알 만한 대기업과 협회, 특정 직종이 아닌 다양한 직종에서 "여성이니까, 여성이라서"라는 이유로 당연하게 행해졌던 차별이라는 폭력을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 흥미로웠던 부분은 매킨지글로벌 연구소가 성평등으로 얻을 수 있는 경제 효과의 총합을 계산한 것이었다. 여성의 경력 단절로 인해 한국에서 발생하는 손실이 매년 '15조원'으로 산출된 것. 성차별을 극복하고 성평등을 만들어냈을 때 단순히 여성에게만 이득이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 이익이 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하는 순간 묘한 후련감이 느껴졌다.
이민경 작가는 한국 사회 내에서 성차별이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지를 '임금'을 통해 이야기 한다. 처음 작가의 책을 접했던 것은 20대 중반쯤, "내가 여성이지만 페미니즘이 뭔지 잘 모르겠어요."라는 나의 말에 한 언니가 추천해준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이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어렵기만 했던 페미니즘이 내가 살아가는 삶 속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도였음을 처음으로 또렷하게 느꼈던 기억이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생존 그 자체를 좌지우지한다. 그런 점에서 생계수단으로서의 '임금노동'을 통해 한국 사회의 성차별을 짚어낸 이 책은 출간된 지 근 10년이 다 되어가지만 여전히 유효하다.
극심해지고 있는 불평등 문제는 재분배의 문제로도 접근해야 하지만, 삶을 위해 노동 하고, 임금을 받기 위해 준비하는 그 시기부터 바뀌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차별은 불평등을 낳고, 그 불평등은 사회적으로 편중된 빈곤을 만들어낸다. 이것이 하나의 구조로 작동하고 있다면, 이것을 구조적 차별이라고 부르지 않고 무엇이라 해야 할까.
성평등 임금 공시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대선 후보의 공약이기도 했고, 여러 정당에서도 이야기 되고 있다. 임금의 투명한 공개는 성별 임금 격차 해소의 시작점이 될 것이기에 하루라도 빨리 하지만 보여주기식은 아닌 진정한 '성평등 임금 공시제'가 도입 되길.
🔖삶의 갖가지 국면에 숨어든 성차별이 여성의 경제력을 전 생애에 걸쳐 뭉텅뭉텅 덜어내고 야금야금 깎아낸다.
🔖차별은 '여자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누군가가 증명해낼 때가 아니라, 이 말이 '남자라도 할 수 있다'만큼 우습게 드릴 때 사라진다.
🔖고정관념은 우리가 고를 수 있는 옷의 종류 같은 수평적인 폭뿐 아니라 직장에서 점할 것으로 기대되는 수직적인 지위에까지 포괄적이고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오로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성취가 그늘에 가려지는 현상, 마틸다 효과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 같은 층에서 자신이 잃어버린 임금만큼은 금세 찾아낼 수 있다. 다양한 나라에서 임금공시제와 같은 제도를 추진하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더욱 더, 우리는 답을 구할 수 없는 조건 속에서도 이 문제에 끈질기게 매달려야 한다. 답에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거듭한다면 여성은 지금껏 모르고 지나쳤던 임금 차별의 국면들을 보다 세세히 포착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진작 거머쥐었어야 할 임금을 얻어내서 생활 여건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순간을 현실로 불러들이게 될 것이다.
🔖역사적으로 여성들은 영영 드러나지 않을 줄만 알았던 것을 기어코 드러나게 하는데 탁월한 소질이 있었다. 드러난 이상 시간이 얼마나 걸렸든 반드시 바뀌었음은 물론이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을 겪고 각자의 자리를 지킨 모두에게 빠짐없이 경의를 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