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역과 병력 면에서도 양한 사이의 편차는 크지 않다. 한무제가 한반도에 한사군을 설치할 당시의 위세는 후한시대에도 대체로 유지됐다. 교지가 반란을 일으키자 마이 평정했으며, 한무제는 온 힘을 다해 흉노를 정벌했다. 이 유목민족은 왕망 시대 이후 영원히 남북으로 분리됐다. 후한시대 때 두헌은 흉노를 상대로 큰 전과를 올렸다. 서기 89년 북방정벌에 나선 그는 요새 밖 3,000리까지 진격했는데, 각 부에서 항복한 사람만 20만 명이었다. 그의 부하들은 5,000리를 더 추격해서, 북 선우를 자신이 어디까지 도망했는지 알지 못하는 지경에 빠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