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엔 디나모 경기장에서 광복절 축제가 열렸다. 러시아 극동군 취주악단의 연주 선도를 따라가니 낡은 운동장이 나왔다. 북측 총영사관 사람들도 참석하여 민족화합을 과시했다.[책과 인생, 2005, 10.]
"과연 그 의사는 명의였어. 어쨌든 나는 그 의사가 청구한 진료비와 약값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으니까…….…."줄 것은 잊어버리고 받을 것만을 기막히게 기억하고 있는 우리들보다는 매우 도덕적인 ‘증세‘ 다. 육신의 건강에유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음이 먼저 늙어가는 것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정신적인 조로 현상이야말로 인간을나약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우선 마음의 젊음을 잃지 말아야겠다.
‘칠순’ 이니 ‘고희니 하는 이름이 붙는 ‘잔치’ 를 나는 단호히 거부했다. 삶의 노화를 시인하고 싶지 않았고,노인 대접 받는 것도 싫었기 때문이다.본시 ‘고희‘ 란 말은 중국의 시인 두보I>에 나오는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다고 한다. 그때 사람들의 평균수명은 50세 전후였다니까,70은 그야말로 고래희였을 것이다. 실제로 두보가 그시를 쓸 때의 나이도 47세였다고 한다.<곡강이수의유래했에서
20년 전쯤 전 어느 신문 기자가 찾아와 인터뷰를 청하길래, "괄호 안에 나이를 만으로 쳐서 ‘49세‘ 라고 써주면인터뷰에 응할 것이고, 50세라고 쓴다면 안 하겠다"고 배짱을(?) 부렸다. 그 인터뷰 기사의 내 이름 아래 괄호 안에는 약속대로 (49)라고 적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