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는 양처럼 순한 사람이 운전대만 잡으면 갑자기 성격이 조급해지면서 다른 차가 끼어들거나 보행자가 진로를 방해할 경우 클랙션을 거칠게 두드려대는가 하면 쌍욕까지 불사하는 경우를 우리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운전자들이 길거리에 차를 세워놓고 드잡이를 할 때도 그 이유가 정작은 교통사고가 아닌 경우도 많다. 운전심리학자라는 독특한 직함을갖고 있는 미국의 리언 제임스Leon James 박사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운전석에 앉으면 거의 모든사람이 정서적으로 미치광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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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정의는 "통치조직을 가지고 일정한 영토에 정주하는 다수인으로 이루어진 단체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가 하나의 ‘단체‘만 선택해야 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이중국적은 절대 악이다? 이것이 아직도 대한민국에서 허용되어야 할 절대명제인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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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치료에 도움이 된다면 현실적으로 인정할 필요도 있겠다. 하지만그것이 끔찍한 범죄의 책임을 모면하는 도구로 악용된다면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비안치 사건은 프라이멀 피어 Primal Fear, 1996>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영화 속의 에드워드 노튼은 섬뜩할 정도로 완벽한 다중인격 연기로 결국 법망을 빠져나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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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럼 마녀재판의 광기를 생생히 묘사한 아서 밀러ArthurMiller의 희곡 (시련The Crucible)은 미국이 한창 매카시즘의 광풍으로 들끓던 1953년에 발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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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두 구호의 교집합인 ‘원칙‘ 은 어떤가? 적어도 ‘원칙‘이라는 말이가지는 함의는 두 정권에게 동일한 것일까? 정부가 거듭 ‘원칙이 통하는 사회‘를 강조하는 것은 분명 사회적 안정에 대한 희구를 의미한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사회와 국민이 동의하고 합의한 원칙이 항상 관철되는 사회, 즉 변칙과 술수가 통하지 않는 사회라는 것이 그동안 우리에게 얼마나 멀리 있었던것인지를 알게 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법‘과 ‘상식‘에 대해서도마찬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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